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촉발한 '관세전쟁'에 안전자산이 사라졌다. 대표적인 안전자산으로 각광 받으며 연일 최고가를 새로 쓰던 금값이 꺾였고, 달러 가치도 급락했다. 국채시장에도 많은 돈이 몰리면서 이점이 사라졌다는 평가다.
7일 한국금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4일 온스당 3137달러까지 올랐던 금값이 이날 한때 2972달러까지 내려왔다. 지난달 17일 종가로 3000달러를 넘어선 뒤 한 달여 만에 약세로 돌아섰다. 금은 지난해부터 안정적인 투자자산으로 주목받으며 가격이 급등해 왔다. 1년 전 2250달러에서 꾸준히 우상향했다.
특히 통화정책 불확실성과 트럼프 대통령 취임 등 경제변수가 확대될수록 더 각광받으며 국내에서는 품귀현상이 빚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시장의 불확실성이 극대화되자 오히려 매물이 출회한 것으로 풀이된다. '포스트 금'으로 꼽히며 함께 가격이 올랐던 은과 구리도 일제히 가격이 떨어졌다.
한 시장 전문가는 "달러 강세와 자산시장 패닉셀 여파에 금값도 하락 전환했다"며 "미국 증시 부진에 따른 마진콜 대응을 위한 매물 출회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짚었다.
지난해 11월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후 이어졌던 '강달러'도 막을 내렸다. 미국의 관세정책이 오히려 미국 내수 물가를 높이고, 미국 기업의 실적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전망에 달러가 약세로 돌아섰다.
세계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미국 달러의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지수는 지난 1월 109.96까지 치솟은 뒤 지속 하락했다. 특히 미국이 관세부과를 처음 발표한 2월을 기점으로 급락하며 이날 102까지 내려앉았다.
달러 가치가 내려가면서 오히려 엔화 가치가 상승했다. 지난달 말 151엔을 넘어섰던 달러·엔 환율은 이날 145엔까지 내려왔다. 일본과 뉴욕의 증시가 모두 급락세를 보이고 있지만, 외환시장 참여자들은 달러보다 엔화 가치를 더 높게 평가하고 있는 셈이다.
시장에서는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와 중국과 유럽연합(EU), 캐나다 등 주요 국들의 보복관세로 '관세전쟁'이 격화하면서 불확실성이 커진 여파로 해석하고 있다.
통상 불확실성이 커질 경우 안전자산으로 자금이 집중되지만, 주가가 과도하게 빠지고 관세 전쟁 이후 여파를 확신할 수 없는 만큼 투자자들이 특정 자산에 돈을 모두 넣기 부담스러워한다는 것이다. 특히 미국 연방준비제도를 비롯해 전 세계 국가들이 어떤 방식으로 관세에 대응할지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위험자산을 기피하면서도 원자재와 외환 등 투자자산 중에서 안전한 자산을 꼽기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과도한 안전자산 쏠림 현상으로 투자 가치를 잃고 있는 상품도 있다. 안전자산 선호 심리에 국고채 시장으로 돈이 몰리면서 국고채 금리 하락세가 이어지고 있다.
이날 오후 채권시장에서 한국 국채 10년물 금리는 2.6560%로 전장 대비 8.4bp(1bp=0.01%포인트) 하락했다. 3년물과 5년물도 각각 6.9bp, 5.7bp 낮아졌다.
주식시장을 중심으로 위험자산 기피 현상이 커지자 미국 국채 금리가 먼저 급락하고,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의 '매파'(통화 긴축 선호)적 발언이 더해진 영향으로 풀이된다.
이날 미국 10년물 국채 금리는 3.951%로, 지난달 말 4.36%와 비교하면 40bp 가까이 낮아졌다. 3년물과 5년물도 비슷한 낙폭을 보였다.
채권 금리가 낮아지면 채권 가격이 높아진다. 안전자산인 채권의 매수세가 커지자 가격이 오르고 수익률이 낮아진 것이다. 앞서 외국인 투자자는 지난 4일 3년 국채 선물을 4만2353계약 순매수하며 역대급 매수세를 보였고, 4월 첫째 주 10년 선물을 5만9000계약 순매수했다.
시장에서는 채권 수익률이 떨어질 만큼, 투자자들의 관심도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또 통화정책 불확실성이 높은 만큼 매력도 떨어질 수 있다. 서상영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투자자들이 굳이 이 시점에 채권시장에 진입할 유인책이 없다"고 말했다. 김남석기자 kns@dt.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