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파면 전후, 대통령 권한대행 지위 달라
전시 상황 국군 통수권자는 당연히 한덕수
대통령 지위로 트럼프와 '한미정상' 통화
권한대행도 엄연히 대통령 권한 사용 가능
한덕수 국무총리 및 대통령 권한대행이 오는 18일 퇴임하는 문형배·이미선 헌법재판관 후임으로 이완규 법제처장과 함상훈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전격적으로 지명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대통령 권한대행'의 권한이 어디까지냐를 놓고 갑론을박이다. 명확한 규정이 없는 탓이다.
미국은 대통령과 부통령제를 채택했다. 대통령이 궐위가 되면 부통령이 대통령직을 승계한다. 우리나라처럼 권한대행이 아니다. 이원집정부제가 아닌 순수 의원내각제 국가에서는 총리가 내각 수반을 맡아 대통령과 같은 지위를 갖는다. 우리나라 국무총리는 대통령제 국가의 부통령과도 비슷하고, 의원내각제의 총리와도 비슷한 지위를 갖는다.
문제는 우리나라 국무총리가 대통령제 국가의 부통령도 아니고, 의원내각제의 총리도 아니라는 점이다. 이 자체로 국무총리 제도의 심각한 결함을 드러내고 있다. 한 권한대행의 신임 헌법재판관 지명이 월권 논란, 위헌 논란에 휩싸이는 이유다.
진영 논리를 벗어나 현실적으로 보자.
헌법재판소가 한 권한대행 탄핵심판 사건 당시 탄핵 의결정족수를 151석, 즉 과반 의결로 탄핵이 가능하다고 결정을 내린 이유도 '대통령'에 방점을 찍지 않고 '국무총리'에 방점을 찍었기 때문이다. 이 논리에 의하면 한 권한대행의 신임 헌법재판관 지명은 월권이라고 볼 여지가 있다.
하지만 이런 해석은 중대한 문제를 야기한다. 지난 8일 북한군 10여명이 휴전선을 침범했다가 우리 군의 경고사격을 받고 퇴각하는 일이 발생했다. 만약 북한군이 국지전이든 전면전이든 남침을 한 경우 '국군 통수권자'는 누구인가? 헌재 결정처럼 한 권한대행의 지위와 권한을 소극적으로 해석하면 국군 통수권자는 존재하지 않게 된다. 대통령으로서 결단을 내리고 전쟁에 대처할 군 통수권자가 없는 상황이 생긴다. 전쟁이 발발하면 대통령은 비상계엄도 선포할 수 있는데 한 권한대행의 지위와 권한을 소극적으로 해석하는 입장에서는 비상계엄은 아마 말도 안된다고 펄쩍 뛸 것이다. 어떤 권한은 되고, 어떤 권한은 안된다는 기준은 그 어디에도 없다. 다들 자기 입맛대로, 자기가 지지하는 진영의 이익 관점에서 내놓은 일관성 없는 해석밖에 없다.
한 권한대행은 8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전화통화를 했다. 이 전화통화는 '국무총리 한덕수'가 아니라 '대통령 한덕수'의 자격으로 이뤄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국무총리 한덕수와 통화할리는 없잖은가 말이다. 거의 모든 언론이 두 사람의 통화를 '한미정상 간 통화'라고 표현한 이유다. 이 전화통화는 월권인가? 아닌가? 정직하게 자문자답해 볼 일이다.
더구나 한 권한대행과 트럼프 간의 통화 내용은 대통령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 담겼다. 한미동맹 강화, 무역균형 등 경제협력, 북핵 문제 등에 대해 협의하면서 트럼프는 우리나라를 우선협상국으로 지정했다. 향후 협상을 통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출구가 생긴 것이다. 이 내용은 대통령이라는 지위가 아니면 협의할 수 없다.
그렇다. 전쟁이 발발했을 경우 한 권한대행이 국군 통수권자다. 트럼프의 관세폭탄과 같은 '경제전쟁'에 있어서도 한 권한대행은 대통령으로서의 지위와 권한을 갖고 협상할 수 있는 '경제 통수권자'다. 소극적 권한만 행사할 수 있다면 새 대통령이 선출되는 6월3일까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이날 국회에서 민주당 의원들은 "일본은 총리가 나서고 기업도 나서는데 우리나라는 뒤늦게 나서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 많다"고 정부를 비판했다. 지난해 12월 윤 전 대통령과 한 권한대행이 탄핵되어 직무가 정지된 사실은 빼먹은 주장이다. 최상목 경제부총리를 흔들고, 내각은 줄탄핵되어 사실상 마비된 상황이었다. 누가, 어떤 권한을 갖고 트럼프의 관세전쟁에 대비할 수 있다는 것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헌법재판소법 제6조 ③항은 '재판관의 임기가 만료되거나 정년이 도래하는 경우에는 임기만료일 또는 정년도래일까지 후임자를 임명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문형배·이미선 재판관의 임기는 오는 18일 만료된다. 서둘러서 신임 재판관을 임명해야 한다.
지난해 10월 3명의 재판관 퇴임으로 헌법재판소가 사실상 정지상태에 들어갔는데도 재판관 추천을 미적거려 헌재를 마비시켰던 민주당이, 예상치못한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과 탄핵으로 부랴부랴 정계선·조한창·마은혁 재판관 임명을 서둘렀던 민주당이, 이제는 헌법과 법률에 따라 한 권한대행이 신임 재판관을 지명하자 월권 운운하고 있다. 그러면서 한 권한대행의 지위와 권한을 둘러싼 논란이 개헌이 필요한 이유를 증명하고 있는데 정작 개헌을 미루고 있다. 아무런 기준도, 논리의 일관성도 없다.
한 권한대행이 대통령의 권한을 소극적으로 행사해야 한다는 윤 전 대통령이 직무정지 상태일 때는 가능하다. 지금은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되고 대통령이 없어진 상황이다. 당연히 한 권한대행이 대통령직을 수행한다고 해석해야 논리적이다.
물론 해석론으로 한 권한대행의 신임 재판관이 지명이 부적절하다는 비판은 가능하다. 마찬가지로 민주당의 줄탄핵, 예산안 난도질, 입법폭주도 합법적이었지만 적절하지 않았다는 비판도 가능하다. 헌재가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인용하면서 과도한 입법권 남용을 지적한 이유다.
적법하다고 모든 게 옳을 수 없다. 헌법이 규정한 '적법절차의 원칙'은 단순히 합법이면 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적정의 원칙'을 포함한 원칙이다. 한 권한대행의 재판관 지명이 위헌이라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마찬가지로 민주당의 줄탄핵, 예산안 난도질, 입법폭주의 적정의 원칙을 위배한 위헌적 행위라는 비판이 가능하다. 논리의 일관성을 지킨다면 그렇다.
한 권한대행의 지위와 권한을 둘러싼 논란은 왜 헌법 개정이 시급한지도 증명했다. 권한대행의 지위와 권한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어서 생긴 논란이다. 단순히 법해석으로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명백한 입법공백이고 헌법의 결함이다.
그런데 '대선·개헌 동시투표론'을 제기했던 우원식 국회의장이 9일 개헌론을 철회했다. 사흘만이다. 개헌의 키를 쥐고 있는 이재명 대표가 차기 대통령 임기 중에 개헌을 하자고 선언하자 낼름 개헌론을 철회한 것이다. 짜고 치는 것도 정도가 있어야 한다. 국회의장의 중립의 의무는 논외로 치자. 우 의장의 행태는 국회의장의 품위조차 지켜내지 못한 진영주의에 찌든 행태다. 마땅히 부끄러워해야 한다.
장담컨대 우리나라는 2040년이 오기 전에는 개헌이 불가능할 것이다. 2040년이 되어도 개헌이 가능할지나 모르겠다. "지금은 개헌을 할 때가 아니다"는 논리는 그 어느 시점에서도 유효한 논리이기 때문이다.
한 권한대행의 신임 헌법재판관 지명을 둘러싼 논쟁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진영주의에 찌들었는지를 웅변하고 있다. '망국적 지역주의'에 한탄하던 대한민국이 '망국적 진영주의'로 '망국의 길'을 걷고 있다. 40대 이상의 기성세대들은 미래세대에게 씻을 수 없는 죄를 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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