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익 STEPI 부연구위원, 우리만의 전략카드 강구해야
美 반도체 생산물량 및 대미 투자 확대, 반도체 등 공략
美 반도체 생산물량 및 대미 투자 확대, 반도체 등 공략
이현익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R&D혁신연구단 부연구위원은 조만간 진행될 미국과의 관세협상 테이블에 올릴 수 있는 전략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이 박사는 지난해 11월 6일 미국 대통령으로 트럼프가 당선된 직후 대외기술 전략 관점에서 우리나라가 2기 트럼프 행정부에 대응할 수 있는 전략적 방안을 담은 보고서를 처음으로 펴내 과학기술 정책 분야에서 주목을 받았다. 그는 세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는 우리의 반도체 제조 기술을 무너져 내린 미국의 반도체 제조 생태계 부활에 '생존기술'로 쓰자는 주장을 제시해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트럼프 대통령의 상호 관세 부과에 대해 이 박사는 "익히 알려진대로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를 해소하고, 부족한 재정을 확보하기 위한 차원"이라며 "대미 무역수지가 많은 국가에 상호관세를 더 많이 부과하는 트럼프식의 합리적 방법으로 계산한 듯 하다"고 말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전략이 1971년 닉슨 대통령이 달러 약화와 국가 재정 악화를 막기 위해 썼던 10% 보편관세 부과와 유사한 전략이라고 봤다. 이 박사는 "닉슨이 관세부과 이후 금 보유 감소와 무역적자 등을 부작용으로 브레턴우즈 체제를 철회했던 것처럼, 트럼프 역시 상호관세 부과 이후 주요국과 협상을 통해 관세를 철회해 주거나, 낮춰주는 전략으로 대응해 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9일(현지시간) 중국을 제외한 모든 나라에 관세를 90일간 유예하겠다고 전격 발표했다. 요동치는 미국 국채와 주식시장을 잠시 안정화시키고, 주요국과의 관세협상 시간을 벌어 보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국가별 맞춤형 관세협상 입장도 내비쳤다.
지난해 기준 한국은 미국 무역수지 적자액의 5.7%를 차지하는 9번째 주요 무역 적자국이라는 점을 거론하며 그는 "미국 내 우리의 반도체 생산 물량을 늘려 반도체 수출에 따른 미국 무역 적자를 해소하기 위한 중장기 로드맵을 미국 측에 제시하는 전략을 고려해 볼 만 하다"고 주장했다.
현대자동차의 미국 내 31조원 투자 발표처럼 국내 기업 주도의 대미 투자 증대도 관세협상의 좋은 카드가 될 것으로 봤다. 2023년 기준 한국의 대미 투자액은 782억 달러로 10위권에 속하지만, 우리의 경제규모 등을 감안할 때 상당히 낮은 수준이다. 미국에 가장 많은 투자를 한 일본의 투자액이 7833억 달러임을 고려할 때 우리는 10분의 1 수준이고, 우리보다 경제 규모가 낮은 아일랜드(5514억 달러)보다도 한참 적게 투자했다.
이 박사는 "경제규모 10위권 내 속하는 다른 나라에 비해 우리의 대미 투자 비중은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이 점을 트럼프가 교묘하게 공략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이어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에 비해 미국으로부터 반도체 보조금 등의 명목으로 많은 지원을 받아온 만큼 미국에 1100억 달러 가량 투자하는 호주와 비슷한 수준까지 투자 비중을 중장기적으로 늘리겠다는 카드는 미국 입장에서 매우 솔깃한 제안이 될 것"이라고 피력했다.
연방 정부의 R&D 예산을 축소하는 상황에서 미국에 첨단분야 R&D 협력 제안하는 것도 실효성 있는 카드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우리나라는 1966년 미국 원조를 받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을 설립해 과학기술 발전을 이뤄왔다"며 "미국의 첨단 제조 생태계 복원에 기여하기 위해 우리의 강점 분야인 반도체, 조선, 배터리 관련 R&D 공동연구소 설립을 정부 차원에서 제안한 방안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중국이나 유럽 등에 있는 국내 기업의 해외 생산기지를 미국으로 이전 또는 신규 건설하는 계획 역시 미국으로부터 환영받는 제안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준기기자 bongchu@dt.co.kr
[ 저작권자 ⓒ디지털타임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