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한국인공지능법학회가 개최한 'AI 현안 좌담회'에 참석한 AI 업계와 학계 관계자들은 불확실성과 중복규제를 최소화하고 AI전환(AX) 생태계를 마련해야 한다는 데 한 목소리를 냈다. 자국우선주의와 보호무역기조가 확산되는 가운데 미국 중심으로 AI 진흥에 무게를 싣고 있고 유럽연합(EU)마저 규제 최소화를 선언, 우리도 AI 법·제도에 더욱 신중을 기해야할 상황이다.
먼저, AI기본법 제정 단계에서부터 논란이 됐던 고영향AI는 여전히 그 정의와 범위에 대해 모호함이 남아있다. 이날 좌담회에서 한 법조계 관계자는 "고영향AI에 쓰인 중대한 영향이란 기준은 다른 법리에서도 계속 쟁점이 돼온 불확정 개념이다. 지속적인 해석을 통해 구체화할 수밖에 없다"며 "AI개발사, AI이용사, 최종사용자 등에 대한 구분도 모호한 점이 있어 향후 책임 귀속과 면책에 따른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한 제조업계 관계자는 "AI기본법을 살펴보면 적잖은 내용에 대해 법관이 취지보다 확대 해석해 규제범위가 넓어질 여지가 크게 돼있다. 하위법령과 가이드라인을 통해 이를 보완하지 않으면 행정적 판단과 사법적 판단이 크게 벌어질 수 있다"면서 "인사AI나 금융AI 관련해서도 이대로면 범위가 넓어지고, 오픈모델을 갖고 응용하는 개발자도 그 수준의 규제 대상이 될 수 있다. 규제를 좀 더 세분화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AI 관련 업계·학계에는 중복규제에 대한 우려가 높다. 이미 각 영역별 법·제도에 따라 이뤄지는 규제에 더해 부처·기관별로 AI 관련 법령이나 가이드라인 등도 제각기 내놓거나 준비하는 상황이다. AI 생성물에 대한 표시 등이 그 대표적인 예다.
한 글로벌 빅테크 관계자는 "AI 관련해 자신이 해당할 수 있는 법제도를 파악할 수 있는 AI규제허브 같은 게 있으면 좋겠다"면서 "AI규제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최소화하려면 범부처 차원의 거버넌스 및 주요국과의 상호운용성을 확보하는 게 관건"이라고 짚었다.
다른 글로벌 플랫폼 관계자는 "기술중립성이란 측면을 고려하면 생성형AI 등 AI모델이 곧 고영향AI로 분류될 필요는 없다고 본다. AI 관련 책임도 개발사나 이용자가 아니라 배포사가 주로 지는 게 맞을 것"이라며 "EU에서 일반개인정보보호법(GDPR)과 함께 AI법도 수술대에 올라갈 수 있어, 포괄적 AI법의 실질적 시행은 그 어느 곳보다 한국이 훨씬 먼저 할지 모를 상황이다. 그만큼 신중하게, 멋지게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근본적인 AX 생태계 활성화가 이뤄져야 AI 법·제도의 취지를 살릴 수 있다는 목소리도 이어졌다. 한 통신업계 관계자는 "국내는 인프라, 모델, 애플리케이션 등 세 가지 영역 모두 아직 생태계가 태동조차 못했다고 본다. 정부와 정치권 및 민간이 모두 힘을 합쳐서 선순환구조를 만들어야 하고, 이를 위해선 먼저 집중지원이 이뤄져야 할 영역을 파악하고 실행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 같은 맥락에서 재도전이 가능한 생태계가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힘을 얻었다.
한 스타트업 관계자는 "글로벌 경쟁에서 데이터와 자본의 규모 차이로 인한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이를 도우려면 어느 정도의 좌충우돌은 용인할 수 있는 유연성을 요청하고 싶다"고 했다.
또 한 학계 관계자는 "연구개발(R&D)을 지금처럼 성과만 바라보고 하는 구조에서 벗어나 실패를 경험으로 쌓아가며 성장을 돕는 형태로 감사제도 등까지 전면 개편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날 좌담회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개인정보보호위원회, 국가AI위원회 등의 고위공직자들이 참석, 다양한 의견을 경청하면서 AI 법·제도 정비 과정에 반영할 것을 약속했다. 최경진 한국인공지능법학회장은 "AI 기술 발전에 따라 그 범위가 확대될 수밖에 없는 고영향AI에 대한 판단을 비롯해 우리 AI분야가 풀어나가야 할 숙제가 많다. 이에 대해 지속적으로 대화하며 함께 고민하면 불필요한 오해도 풀고 논의도 발전적으로 진전될 수 있을 것"이라 강조했다.
글·사진=팽동현기자 dhp@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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