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는 보복적 상호관세를 발효한 지 겨우 수시간 만에 중국을 제외한 나라에 대해서는 90일 유예한다며 후퇴했습니다.
전방위적인 관세 폭탄이 펭귄 서식지인 무인도에까지 떨어졌다 수습되는 동안 세계 주식 시장은 폭락과 폭등을 거듭했습니다.
미국은 신뢰를 잃고 동맹국과의 관계는 위기에 처했습니다. 동시에 미국민들은 그토록 끈끈하게 달라붙었던 최악의 인플레이션과 다시 마주해야 했습니다.
미국 기업이 받는 차별을 해소한다는 명목으로 상호관세를 내린다지만, 결국 미국 내에서도 수입품 가격 인상으로 이어지는 것이고 미국 소비자에게 타격을 줄 수 밖에 없죠.
경제학에서는 상품마다 관세의 부담주체가 다르겠지만, 대략 80%를 소비자가 부담하게 된다고 하죠. 소비 위축으로 인한 리세션(경기 침체)이 나타날지도 모릅니다.
이젠 인플레이션은 무섭지만 리세션 우려가 더 커지기 전에 연방준비제도(Fed)가 기준금리 인하를 서둘러야 한다는 말까지 나옵니다. 연준은 지난해 9월부터 3차례 기준금리를 인하한 이후론 2회 연속 금리를 동결하고 있습니다.
트럼프는 제롬 파월 연준 의장에게 기준금리를 인하하라고 직접 압박하기도 합니다. 트럼프는 자신의 SNS를 통해 "유가가 내려가고 있어 인플레이션은 전혀 없다"면서 "언제나 느리게 움직이는 연준이 금리를 인하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파월 연준 의장은 지난 주말 한 콘퍼런스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인상이 예상을 뛰어넘고 있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대통령의 관세 정책으로 인플레이션과 성장의 둔화가 나타날 것"이라고 하면서도 금리 경로에 대해서는 "오늘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다. 우리는 서두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신중한 태도를 견지했습니다.
원래도 트럼프는 중앙은행인 연준의 독립성을 인정하지 않았고, 언론과 전문가들은 이를 경계해왔지만 이번엔 분위기가 좀 다른 것 같습니다. 파월이 신용을 잃었는지 취임 석달차인 트럼프의 구상을 지지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미국 내 여론이 미묘하게 달라졌습니다. 연준의 의무이자 존재 이유는 미국 국민의 최대 고용과 안정적인 물가이거든요.
월스트리트저널(WSJ)는 "연준의 의무인 물가 안정과 고용 안정이 트럼프의 관세 전쟁으로 인해 심각한 위기에 처한 것이 40년 만의 일"이라면서 "상호관세로 인한 불확실성이 고용과 지출을 약화시켜 경기침체에 빠뜨릴 수 있기에 금리 인하가 필요하다. 또한 관세 인상으로 인해 미국 제조업체가 사용하는 자재 등 물가가 크게 상승할 가능성도 있어 금리를 인상하기도 어렵다"고 전했습니다.
연준이 결국 인플레이션과 일자리 감소 중 어느 쪽이든 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상호 관세 정책 발표 이후 연내 연준의 금리 인하 시기가 빨라지리란 예측이 커졌습니다.
9일(현지 시간)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5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인하할 가능성을 본 시장 참여자 비율이 18.4%로 나타났습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5월에 금리 인하가 이뤄질 것이란 참여자들이 절반가량인 44.5%였는데요. 이들 중 다수가 트럼프의 관세 유예 발표로 6월로 인하시기 예상을 미룬 것 같습니다. 6월엔 63% 이상이 기준금리 인하를 예상하고 있습니다.
한숨 돌린 연준은 당분간 정부의 기조와 경기 상황을 더 관망할 것 같습니다. 모르죠. 어쩌면 코로나 때의 긴급 통화결정회의가 다시 돌아올지도. 트럼프의 변덕은 오늘 밤 당장 어디로 튈지 예측하기 어려운 것 같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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