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관세 인상과 전략 자원 비축이라는 이중 압박으로 배터리 공급망 패권 경쟁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미국 주도의 체제 재편의 일환이지만, 배터리 핵심소재 대부분이 중국 공급망에 깊이 연결돼 있어 한국 기업들은 공급망 다변화라는 구조적 과제에 직면해 있다.
13일 파이낸셜타임스 등 외신에 따르면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태평양 등 심해저에 있는 광물자원인 '망가니즈단괴'를 국가전략물자로 비축토록 하는 행정명령 초안을 마련 중이다. 광물 채굴권과 정련시설 마련을 촉진하기 위한 것으로 중국의 광물 공급망에 반격하는 조치다. 망가니즈단괴는 바닷물에 녹아 있던 금속 성분들이 심해저에서 수백만년 이상 고압을 받아 둥근 덩어리로 뭉쳐진 흑갈색 광물이다. 망간, 니켈, 코발트, 구리 등 이차전지 핵심 소재가 다량 포함돼 있다.
미국의 망가니즈단괴 전략비축 추진과 대중 배터리 관세 인상은 중국 중심의 배터리 공급망을 해체하고 미국 중심의 공급망을 구축하려는 하나의 패키지 전략으로 풀이된다. 미국의 현재 기준 대중 누적 관세율은 145%이며, 중국 역시 125%의 고율 관세로 맞받아친 상황이다.
문제는 중국이 배터리 핵심소재 공급망을 사실상 장악하고 있어 한국이 그 여파를 비켜가기 어렵다는 점이다. 미국 내 생산거점을 구축했어도 미국에서 만든 배터리 제품에도 관세가 부과되는 핵심소재가 있어 결국은 원가 상승이 불가피한 수순이다.
음극재 소재인 흑연이나 전해액 원료인 육불화인산리튬 등 핵심 소재들은 한국의 중국의존도가 매우 높은 품목이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기준 광물별 중국 수입 의존도는 황산코발트가 99.4%, 흑연 87%, 수산화리튬 83.40%, 희토류 82.5%에 달한다.
국내 배터리업계는 중국산 소재 의존도를 줄이기 위한 움직임에 속도를 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최근 LG에너지솔루션이 중국 업체로부터 조달하던 배터리 분리막 일부를 SK아이이테크놀로지로부터 공급받기로 한 것은 중국산 의존도를 낮추는 공급망 재편 사례로 평가된다.
더욱이 배터리업계는 미국이 스마트폰, 반도체 등 핵심 정보통신품목을 관세 제외 품목으로 추가한 것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 내부 산업 반응 등 시장과 정치 반응에 따라 관세 조치가 선택적으로 뒤집힐 수 있음이 확인된 사례이기 때문이다.
미국마저도 대부분의 리튬이온배터리를 수입하고 있다. 이 중 70%를 중국에서 수입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정부가 자국 배터리 공급망 자립을 외치고 있지만 정작 현실에서는 중국산 배터리에 대한 의존을 쉽게 끊지 못하고 있어 정책 불확실성이 높다는 것이다.
박철완 서정대학교 자동차학과 교수는 "향후 관세정책의 세부 조정 여부가 국내 배터리 업계의 원가 구조와 공급망 전략에 중대한 변수로 작용할 것"이라며 "현재 기준으로 에너지저장장치용 배터리는 저가형이 많아 중국산 소재 사용 비중이 높은데 미중 관세가 높아지면 원가 경쟁력에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박한나기자 park27@dt.co.kr
지난 8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열린 행사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행정명령에 서명한 뒤 미소 짓고 있다. 연합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