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가 가장 큰 시장인 미국에서 관세로 인한 불확실성이 커지자 글로벌 판매 전략을 수정하고 있다. 글로벌 전체 판매량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미국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선, 다른 시장에서의 판매량을 늘려야 하는 것이 최대 과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의 관세 장벽에 막힌 중국의 밀어내기 공세에 버틸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당장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현대차·기아와 유럽 완성차 브랜드가 떠난 러시아 완성차 시장에서 중국 브랜드는 절반 이상의 점유율을 차지하며 시장을 장악했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송호성 기아 사장은 지난 9일 2025 CEO 인베스터데이에서 러시아 재진출과 중국 시장 전략에 대해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기아는 중국 시장에서 판매량이 예상만큼 올라오지 않는 상황이다. 작년에는 전년 대비 5.2% 감소한 7만9603대 판매에 그쳤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보복조치 등으로 판매량이 떨어진 이후, 현지 전략 차종을 발표하는 등 회복에 힘썼으나 현지 업체들의 성장으로 경쟁이 심화되고 있다.
이에 기아는 중국 판매목표 현실화에 따라 2030년 판매목표를 기존 발표한 430만대에서 11만대 하향한 419만대로 재조정했다.
이대로 현지 공장을 놀릴 수 없었던 기아는 중국 공장의 활성화와 수익성 제고를 위해 수출기지의 역할을 부여했다. 올해 8만대 내수 판매를 유지하고, 해외 수출은 전년 대비 7% 늘어난 18만대로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기아 중국법인은 2022년 수출을 강화하는 전략을 발표하며 9억달러를 투자해 수출 기반을 구축했다. 수출 강화 전략이 일부 통하며 작년 기아 중국법인의 수출·판매량은 2023년 대비 49.2% 증가한 24만8259대를 기록했다.
기아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판매를 중단했던 러시아 시장 재진출 의지도 시사했다. CEO 인베스터데이에서 발표한 2030년 판매목표 419만대 중 5만대가 러시아 몫으로 언급됐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로 2023년 12월 현대차그룹은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장을 포함한 러시아 지분 100%를 1만루블(당시 14만원 상당)에 매각한 바 있다. 다만 2년 내 공장을 되살 수 있는 바이백 옵션이 들어가 업계에서는 올 하반기 기아의 재진입을 예상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유럽 업체들의 경우 유럽연합(EU)이 러시아에 제재를 가9하고 있는 상황이기에 재진출에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보인다"며 "기아가 이틈을 공략하면 판매목표는 조기에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중국의 물량 밀어내기가 미국을 제외한 세계 전역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점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대부분의 글로벌 완성차 업체가 철수한 반면, 러·중 간 전방위적 전략 공조 방침에 따라 중국 완성차 업체들의 판매량은 늘어났다.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KAMA)에 따르면 중국의 대(對)러시아 자동차 수출은 2022년 15만4000대에서 지난해 117만대로 2년 새 7.6배 급증했다. 러시아 승용차 시장에서 중국계 브랜드 점유율도 2021년 8%에서 2024년 60.4%로 확대됐다.
기아는 철수 전 러시아에서 22만대가량을 판매해 점유율 12%대로 현지 판매 2위 업체였다. 유럽 업체들이 다시 들어오는 데 시간이 걸리더라도 저가 공세를 펼치는 중국 업체과의 경쟁은 불가피하다.
KAMA는 "중국을 비롯한 우호국 중심으로 재편된 공급망과 시장 구도를 고려할 때 재진입이 어려울 것이라는 시각도 존재한다. 재진출 시 비용, 정책변화, 시장 점유율 등을 고려한 신중한 진입 전략 수립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