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기야 금융당국이 기업대출 위험가중자산(RWA) 가중치 하향조정 등 자본보강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미국의 상호관세 부과로 인해 국내 기업들에 가해질 충격을 줄이고자 정부가 방파제 마련에 나서는 것이다.
13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당국은 조만간 금융권 기업대출에 대한 RWA 규제 완화 방안을 내놓을 방침이다. 금융위원회는 5대금융지주(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와 정책금융기관 5곳 실무진이 참여하는 관세 충격 대책반을 구성했다. 향후 정례 회의를 통해 미국 관세정책에 따른 충격과 금융시장 상황을 분석하고 이에 대응하기 위한 민간 금융기관과 정책금융기관의 대응 조처를 검토할 계획이다.
금융감독원도 5개반(총괄반·시장점검반·산업분석1반·산업분석2반·권역별대응반)을 구성해 매주 이복현 원장 주재로 상호관세 관련 회의를 하고 관련 실무작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지난달 5대은행의 기업대출 잔액은 825조2094억원으로 전월 대비 2조4936억원 감소했다. 지난 1월 5조1003억원, 2월 1조9802억원 증가했다가 석 달 만에 감소세로 전환하며 기업대출이 쪼그라들었다.
5대은행뿐만 아니라 은행권 전체 기업대출이 줄었다. 한국은행의 '3월 금융시장 동향'에 따르면 은행권 전체 기업대출 잔액은 1324조3000억원으로 약 2조1000억원 감소했다. 3월 기준 기업대출이 줄어든 것은 2005년 3월(1조2000억원 감소) 이후 처음이다. 대기업 대출은 7000억원, 중소기업 대출은 1조4000억원 줄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관세정책이 본격 추진되면서 기업들이 투자를 유보하고 있는데다, 은행들도 신용 리스크 관리에 적극 나서면서 대출이 감소한 것으로 풀이된다.
기업들은 연말 재무제표 관리를 위해 대출을 줄이고 연초 신규대출을 늘리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기업대출이 줄어든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이 나온다.
그동안 은행권에선 제조업 등 산업생산 부문 및 성장성 있는 기술력을 가진 중소기업 대출에 대한 위험가중치를 하향하거나 은행에 대한 요구자본 수준을 하향해 줄 것을 건의해왔다. 취약기업에 대한 원활한 자금 공급을 위해 기업대출에 적용하는 위험가중치를 하향 조정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기업대출은 가계대출보다 위험가중치가 높아 은행들이 이를 많이 취급할수록 자본비율 관리는 더 어려워진다. 은행이 신용등급 'BB'이하인 기업에 대출하면 대출액의 150%가 RWA에 포함된다. 비상장주식의 경우 200%, 벤처투자는 400%까지 가중치가 붙는다.
현재 은행들의 보통주자본비율(CET1)은 지난해 말 기준 13.07%로 전분기 대비 0.26%포인트(p) 하락한 상황이다. CET1을 일정 수준(13%)으로 관리하려면 RWA를 낮게 관리하는 게 유리할 수 밖에 없다.
은행들은 기업대출을 확대하기보다 건전성 관리에 무게를 두는 분위기다. 금융권 관계자는 "기업대출은 경기 사이클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며 "최근 경기 악화로 중소기업 연체율이 높아지면서 은행권이 중소기업 대출을 줄이고 대기업 대출에 힘을 주는 식으로 건전성 강화에 힘을 쏟고 있다"고 말했다.
주형연기자 jhy@dt.co.kr
[ 저작권자 ⓒ디지털타임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