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호 과학기술정책연구원 혁신성장실장
![[국가혁신 과기정책을 말한다] 기술안보 시대, 규제혁신이 승부처다](http://contents.dt.co.kr/images/202504/2025041402102369058003[1].jpg "[국가혁신 과기정책을 말한다] 기술안보 시대, 규제혁신이 승부처다")
더구나 국내 규제문제를 해소하기에도 벅찬 상황에서 기술안보 시대가 도래함에 따라 글로벌 규제환경에 큰 변화가 발생하고 있어, 이에 대한 체계적 대응이 절실하다.
미중 기술패권 경쟁은 한동안 자유무역 기조 하에 팽창하던 국제 통상을 다시 보호무역주의로 회귀시키고 있다. 기술패권 경쟁에서 핵심이 되는 것은 AI, 양자, 바이오 등 첨단기술로,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도 첨단기술 관련 기술안보를 강화하는 추세이다. 기술안보의 급부상은 과거 분절적으로 형성되었던 외교, 통상, 글로벌 공급망, R&D 등이 첨단기술을 중심으로 재편되는 계기를 제공한다.
이에 따라 국제관계도 기존 다자협의체 보다는 첨단기술 관련 이해관계에 따라 재편되는 경향을 보인다. 올해는 세계 곳곳의 분쟁과 함께 제2기 트럼프 정부 출발에 따라 국제 경제사회의 불확실성이 한층 더 높아지고 있다. 트럼프 정부의 공공연한 보호무역 강화 기조는 다양한 형태의 규제, 특히 첨단기술 관련 규제 강화로 이어질 것이다. 한국의 대표 수출 상품인 반도체와 이차전지에 대한 미국의 글로벌 공급망 관련 규제가 한층 더 강화되고, 자동차와 바이오에 대한 신규 규제도 현실화될 가능성이 크다.
첨단기술을 둘러싼 기술패권 경쟁이 격화됨에 따라 세계 주요국은 기술안보에 필수적인 기술을 국가전략기술로 지정하고 정부 차원의 전략적 육성과 보호를 추진하고 있다. 국가별로 처한 환경이나 역량이 다르기 때문에 전략기술에 대한 개념과 정의는 다르지만, 미래 시장의 '게임 체인저'(game changer)라 불리는 AI, 양자, 바이오 등이 포함된 점은 공통적이다.
미국 국가과학기술위원회(NSTC)가 2024년에 선정한 국가전략기술을 살펴보면, 이러한 첨단기술과 함께 민·군 겸용기술이 대거 포함되어 있어 기술패권과 군사패권을 동시에 추구하는 특징이 나타난다. 또한 국가전략기술 중 대부분이 기술거래통제 대상으로 지정되어, 첨단기술 유출 방지를 위한 규제와 연계되어 있다.
우리나라도 이러한 국제 동향에 대응하기 위해 2023년 '국가전략기술 육성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하여, 현재 AI, 양자, 반도체 등 12대 분야 50개 기술을 국가전략기술로 선정하였다. 하지만 동법의 내용을 보면 주로 육성 조항 위주로 되어 있고 보호 정책에서는 정보 보안만 언급되어 있다. 즉, 국가전략기술 육성에 필요한 규제혁신 방법과 기술보호에 필요한 규제 사항이 구체적으로 제시되지 않아 이전 성장동력 정책과의 차별점이 명확하지 않다. 또한 유일한 기술보호법인 '산업기술의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과의 연계성도 부족한 상황이다.
최근 국제 규제동향에서 가장 큰 의제는 AI, 데이터 등 디지털전환과 탄소중립이다. EU가 세계 최초로 제정한 AI 규제법, 국경 간 데이터 이동을 규제하는 통상규범, RE100과 탄소국경조정 등은 이제 현실 문제로 다가오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국가전략기술과 같은 첨단기술 분야에서 규제혁신을 통한 전략적 육성과 기술보호를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
즉, 분야별 세부 규제개선에만 머무르지 말고 기술보호를 위한 규제정립도 요구되며, 분절적으로 추진되던 혁신정책과 규제정책을 연계하는 것도 필수적이다. 무엇보다도 규제혁신 자체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표준·시험인증, DB 등과 관련한 규제인프라 고도화, 규제혁신 로드맵과 같은 신규 방법론 개발, 현재 시행 중인 규제 샌드박스와 같은 규제혁신 시스템의 개선, 이해관계자 갈등 완화를 위한 협의 조정 기구의 활성화 등 규제혁신을 뒷받침하는 기반을 강건하게 구축할 필요가 있다.
[ 저작권자 ⓒ디지털타임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