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학년도 의대 정원이 증원 이전 규모로 돌아가면서, 그동안 깊게 갈라졌던 의료계와 정부 간 갈등이 다소 누그러질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정부가 3058명 확정을 전제 조건으로 내세운 '정상수업이 가능한 수준'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의료계의 주장을 수용하면서 대치 국면에 숨통이 트일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정부, 전공의, 의대생 등 서로 상처만 남은 싸움으로 끝나면서, 의료 정상화까지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지적도 나온다.
교육부는 17일, 지난해 2월 의대 정원을 5058명으로 대폭 늘린 지 1년여 만에 내년도 의대 모집인원을 2024학년도와 같은 수준인 3058명으로 조정하며 한발 물러섰다. 그동안 의료계의 여러 단체가 강조해 온 3058명을 정부가 수용하면서 의정 협의 테이블이 차려질 가능성이 커졌다.
이 부총리는 브리핑에서 "이번 발표를 계기로 복귀한 학생들이 학업에 전념하고, 추가적인 복귀가 활발하게 이뤄지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김성근 의협 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정부가 내년 의대 모집인원을 되돌린 것에 대해 "만시지탄이나 이제라도 정상으로 돌아가는 한 걸음을 내디딘 것으로 평가한다"고 밝히며, 무리한 증원 정책은 잘못된 것이었다고 밝혔다.
의료계의 거센 반발에 정부가 사실상 백기를 들면서 얼어붙었던 의정 갈등도 해빙기에 들어설 조짐이 보이고 있다. 의료계 관계자는 "서로 상처만 남은 이 사태는 하루빨리 봉합이 돼야 한다"며 "학생들이 이걸 계기로 다시 정상적으로 수업에 들어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 16일 기준 전국 의대의 평균 수업 참여율은 25.9%에 그쳤다. 예과생은 22.2%, 본과는 29% 수준이었다.정부가 의대 정원을 증원 이전 규모로 되돌린 배경에는 2026학년도 입시에 차질이 생기지 않도록 하려는 현실적 고려가 깔려 있다.
정부가 내년도 의대 모집인원을 결정해 발표하면, 각 대학은 이달 말까지 한국대학교육협의회에 이를 반영한 대입전형 시행계획 변경 사항을 제출해야 한다. 현실적으로 의대생의 수업참여를 설득할 방안은 마땅치 않고, 입시에 혼선을 줄이기 위한 판단으로 풀이된다.
다만, 이러한 정부의 정책 후퇴에 보건의료 시민단체는 즉각 반발하며 정부를 즉각 규탄했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은 이날 성명서를 내고 "2026년 의대 모집인원에 대해 보건의료인력 수급추계위원회법 심의 중 사회적 논의 없이 기습적이고 일방적인 동결 방침을 발표했다"며 "의사 인력 확충을 위한 국민의 사회적 요구가 우선되어야 하고 이에 따라 2026년 의대 정원도 국민이 수용할 수 있어야 하며 사회적 이해와 양해 속에 이루어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의료계에선 정부의 의대 모집인원 동결을 두고 갈등의 골이 깊어진 상황에서 당장 해법을 단정 짓기 어렵다며, 정부·전공의·의대생·의료계 각 당사자 간의 책임 정리와 신뢰 회복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는 신중론도 나온다.
김정구 가톨릭대 의학과 교수는 "전공의는 수련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고, 학생들 역시 정상적인 수업을 듣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예전에는 유기적으로 돌아가던 관계가 지금은 서로 간 감정의 골이 깊어졌다"고 말했다. 이어 "4월을 기점으로 유급생이 더 늘어날 수 있는데, 그렇게 되면 현실적으로 수업 진행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 교수는 "가장 큰 피해자는 국민"이라며 "전공의, 의대생, 교수 등 모두 피해를 봤지만, 남은 건 상처뿐이고 갈등 역시 쉽게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세종=강승구기자 kang@dt.co.kr
질문에 답하는 이주호 부총리 [연합뉴스]
정부가 의대생들이 3월 내에 전원 복귀한다는 조건으로 2026학년도 의과대학 모집인원을 증원 이전 수준인 3058명으로 되돌리는 방안을 수용하기로 했다. 사진은 지난 10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의과대학의 모습. [연합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