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서의 글로벌 아이] 트럼프는 왜 ‘관세 전쟁’에 집착하나](http://contents.dt.co.kr/images/202504/2025041802109969061001[1].jpg "[박영서의 글로벌 아이] 트럼프는 왜 ‘관세 전쟁’에 집착하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전쟁'이 전 세계 경제와 정치를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 글로벌 시장은 트럼프의 '오락가락' 관세 정책에 그야말로 우왕좌왕이다. 그렇다면 왜 트럼프는 이처럼 고비용의 무역전쟁을 반복적으로 선택하는가. 표면적으로는 제조업 회귀와 무역적자 해소를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국내 지지층 결집 등 복합적 의도가 얽혀 있다. 그러나 경제적 현실과 정치적 이상 사이의 괴리가 심각해지고 있다. 트럼프가 택한 이 '위험한 길'에 대한 경계와 대비가 시급하다.
◆정치적·경제적 의도, 그리고 지정학적 계산
트럼프가 '관세 전쟁'을 밀어붙이는 첫 번째 이유는 국내 정치, 특히 정치적 기반을 공고히 하기 위한 것이다. 러스트벨트(쇠락한 제조업 지역)의 백인 노동자층은 트럼프 지지세력의 핵심이다. 이들은 오바마 시대의 자유무역이 자신들의 일자리를 빼앗아갔다고 믿는다. 트럼프는 이들에게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다"고 약속했고, 그 약속의 실체는 곧 '보호 무역'이다.
두 번째 동기는 미국 중심의 공급망 재편에 있다. 트럼프는 단순히 수입품에 세금을 매기는 것을 넘어, 글로벌 가치사슬을 미국 본토로 끌어들이고자 한다. 중국, 한국, 유럽연합(EU) 등 주요 교역국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면, 다국적 기업들이 관세를 피하기 위해 미국 현지에 생산거점을 세우게 된다는 계산이다. 중장기적으로 제조업을 복원하려는 것이다.
세 번째 축은 중국 견제다. 트럼프는 군사·기술·경제 전 분야에서 대중 압박을 강화하고 있다. 관세는 그중에서도 '경제 전쟁'의 일환이다. 이는 단순한 무역 갈등을 넘어, 미국과 중국이 오랜 시간에 걸쳐 구축해온 상호의존적 무역 시스템을 해체하려는 시도다. 나아가 트럼프는 EU, 한국, 일본 등 전통적 동맹국들도 압박하면서 '미국의 동맹이라도 이제 공짜는 없다'는 신호를 던지고 있다. 이를 통해 미국 중심의 '양자적 거래 질서'를 구축하려고 한다.
◆제조업 회귀 외치지만, 막상 일할 사람이 없다
미 국내에선 제조업 귀환을 외치는 목소리가 뜨겁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한 가지 불편한 역설이 존재한다. 21세기 미국에서 과연 '공장 노동'을 기꺼이 감수할 사람들이 존재하는지에 대한 의문이다.
트럼프를 열렬히 지지하는 계층에는 불만을 품고 일하는 현역 서비스 업종 노동자들, 그리고 과거 제조업 전성기때 일하고 은퇴한 연금 세대가 함께 뒤섞여 있다. 이들은 한때 번성했던 공장들이 문을 닫으며 일자리가 사라진 현실을 지켜보며, 자신들의 삶이 부정당했다는 피해의식을 품고 있다. 제조업이 성황을 이뤘던 과거를 '황금 시대'로 회상하며, 그 시절이 다시 돌아오기를 바라는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연금 세대가 다시 공장으로 돌아가 노동력을 제공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현역 세대의 상황은 더 복잡하다. 오랜 시간 서비스 산업에서만 일해온 이들에게 제조업은 매력적인 일자리가 될 수 없다. 오늘날의 공장은 과거처럼 단순한 육체노동을 요구하지 않는다. 첨단 로봇과 자동화 설비를 관리할 수 있는 기술과 전문성을 필요로 한다. 서비스 산업에서 저임금과 낮은 기술 수준의 업무에 익숙해진 현역 세대가 이런 복잡한 신기술 환경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가뜩이나 인건비와 생산성 문제로 인해 국제경쟁력이 없는 상황이다. 제조업 부활을 외치는 정치적 구호가 현실의 노동시장과 맞물리지 못한다면, 제조업 회귀는 결국 실체 없는 환상으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경제 망쳐도 지지층이 우선
그럼에도 트럼프 정권은 '관세 전쟁'이라는 위험한 길로 돌진하고 있다. 이는 현실 경제에 상당한 충격을 줄 수 밖에 없다. 만약 주식 대폭락이나 심각한 경기침체로 이어진다면 공화당은 내년 중간선거에서 참패할 가능성이 높다.
이처럼 커다란 정치적 위험에도 불구하고 정권이 관세 강행 노선을 쉽게 포기하지 못하는 배경에는 '제조업 부활'을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제조업 노동력이 될 수 없는 '역설적 계층'의 존재가 자리잡고 있다. 이 계층은 자신들이 배제된 경제 발전 과정에서 느끼는 '절망과 분노'를 트럼프 정권에 대한 '정치적 지지'로 전환하고 있다. 따라서 이들의 요구에 반하거나 이들의 감정적 에너지를 외면하는 것은 현 정권 입장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이러한 정치적 역학 관계를 더욱 복잡하게 만드는 요인은 정권 핵심 지지층인 '연금 세대'의 존재다. 이들은 이미 공적연금이나 개인연금 등 고정된 소득원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에 주가 폭락이나 불황에 상대적으로 둔감하다. 이로 인해 경제 위기의 심각성을 크게 느끼지 못하고, 오히려 감정적이고 이상적인 요구를 더욱 강하게 표출하는 경향이 강하다. 결과적으로 이들의 경제적 무관심은 정권의 합리적 정책 결정을 어렵게 만들고, 감정적 정치에 휘둘리게 하는 부작용을 초래한다.
상황을 한층 어렵게 만드는 것은 기업인들과 민주당 지지층의 태도 변화다. 8년 전 트럼프의 첫 집권 당시 이들은 정권의 경제 정책을 직설적이고 적극적으로 비판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이들도 트럼프 지지층이 가진 경제적 박탈감과 분노의 배경을 일정 부분 이해하기 시작했고, 이는 정권에 대한 직접적 비판을 꺼리게 만들고 있다. 이런 '자기검열적 태도'는 결과적으로 트럼프의 무모한 관세 정책에 대한 견제와 비판의 목소리를 약화시키고 있다.
◆현실과 이상 사이의 딜레마
트럼프 정권의 '관세 전쟁'은 표면적으로 제조업 회귀라는 정치적 명분과 지지층의 감정적 에너지를 활용한 전략이다. 그러나 이는 실물경제에 상당한 위험을 초래할 뿐 아니라, 장기적으로 정권 안정성까지 위협할 수 있는 양날의 검이다. 여기에 연금 세대의 경제적 무관심과 기업 및 야권의 소극적 태도가 더해져 상황은 복잡해졌다.
트럼프 정권이 현실적 위험과 정치적 이상 사이에서 균형을 찾지 못한다면, 결국 자신들이 만든 '관세 전쟁'이라는 함정에 스스로 빠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정치적 이상만을 고집하다 현실 경제의 냉혹한 심판대에 올라 자멸의 길을 걷게 되는 것, 그것이 바로 트럼프 '관세 전쟁'이 피할 수 없는 운명적 결말일지 모른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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