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그룹과 포스코그룹이 미국의 철강 관세 장벽을 넘기 위해 전례 없는 공조에 나섰다. 포스코와 현대제철 등 철강 1·2위를 다퉈온 두 기업이 손을 맞잡았다는 점에서 이번 협약은 단순한 협력이상의 글로벌 통상 위기에 직면한 한국 제조업의 생존 전략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철강 1·2위, 강철 전선(戰線) 구축
양사는 21일 서울 강남 현대자동차 사옥에서 '철강 및 이차전지 분야 상호협력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하고,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미국 보호무역주의 강화에 공동 대응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철강은 반도체와 더불어 대한민국 제조업의 근간을 이루는 전략 산업이다. 흔히 '산업의 쌀'이라 불릴 정도로 모든 산업의 기초가 되는 핵심 소재인 만큼, 철강 산업을 이끈 포스코와 현대제철은 수십 년간 기술, 시장, 품질 경쟁에서 치열하게 맞붙어 왔다.
이렇다 보니 이번 협력은 전략적 전환점으로 평가받는다. 수익보다 생존을 위한 연대, 국가 단위 공급망 재편의 필요성이 이들의 경쟁 구도를 뛰어넘게 한 것으로 풀이된다. 또 미국의 관세 장벽이 국내 철강업계에 얼마나 중대한 위협인지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로 언급된다.
이번 MOU의 핵심은 미국 철강시장 공략이다. 포스코는 현대차그룹과 손잡고 미국 루이지애나 제철소 투자에 참여한다. 해당 합작투자는 미국 고율 철강 관세를 우회하기 위한 '현지 생산 거점 확보' 전략의 핵심 수단이다.
루이지애나 제철소가 가동되면 포스코는 현지에서 직접 철강을 생산해 완성차 제조사에 납품할 수 있어, 미국 정부의 보호무역 조치에서 자유로워질 전망이다. 이는 포스코가 지난 10여 년간 북미 시장 진출에 있어 가장 큰 걸림돌이었던 '무역 장벽'이라는 제도적 장애물을 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될 전망이다.
현대차그룹 차원에선 안정적인 고급 소재를 현지에서 직접 조달해 미국 내 전기차 생산을 강화하고, IRA(인플레이션 감축법) 대응에도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게 된다.
이번 협력은 미국 시장 대응을 넘어 글로벌 전역으로의 사업 확대 가능성까지 시사한다. 포스코는 이미 멕시코(Posco-Mexico), 인도, 유럽, 동남아 등에 현지 가공과 판매 거점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번 북미 합작투자를 계기로 '글로벌 완결형 공급체계'를 더욱 강화하게 된다.
특히 전 세계적으로 철강 수요는 친환경차, 신재생에너지, 인프라 개발 확대와 함께 고부가가치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는 상황이다. 포스코와 현대제철이 공동으로 고급 철강 생산 및 가공 역량을 확보하면, 단순한 원자재 수출국이 아닌 '첨단 소재 제공자'로서의 위상 강화도 기대된다.
◇이차전지 소재 공조, EV 대응 가속
양사는 철강에 그치지 않고 이차전지 소재 부문에서도 전략적 협력을 강화한다. 포스코가 보유한 리튬, 니켈 등 핵심 광물과 양극재·음극재 생산능력을 바탕으로 현대차그룹의 친환경차 기술을 통해 글로벌 전기차(EV) 시장의 공급망 안정화와 경쟁력 확보가 가능해 질 전망이다. '캐즘(chasm)' 이후 본격화되는 전기차 대중화 흐름 속에서, 양사는 차세대 전지소재 개발, 배터리 리사이클링 기술, 친환경 인증체계 기반 공동 개발 등에서 협력해 지속가능한 미래 모빌리티 시장의 선두주자로 도약하겠다는 전략이다.
일각에선 향후 통상환경 변화에 대비해 이러한 기업 간 전략적 연대를 정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지원할 필요가 있다는 언급도 나온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포스코그룹과의 업무 협약을 통해 미국 등 글로벌 시장에서의 사업 기회를 확대하고, 미래 모빌리티 분야에서의 지속가능한 성장 및 전동화 리더십 확보의 토대를 더욱 공고히 할 것"이라고 밝혔다.
양호연기자 hyy@dt.co.kr
(왼쪽부터) 한석원 현대차그룹 기획조정본부장 부사장과 이주태 포스코홀딩스 미래전략본부장 사장이 21일 현대차 강남대로 사옥에서 '철강 및 이차전지 분야의 상호 협력을 위한 업무협약서'를 체결하고 있다. 포스코홀딩스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