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벌었을뿐 결정된 것 없어
방위비 별도 협상 등 과제 산적
"시간 지날수록 급한 것은 미국
韓, 중요한 파트너 각인 시켜야"
한미 양국이 관세 폐지를 목표로 2+2 통상 협의에 나섰지만 이제 시작일뿐 상호관세, 자동차 등 품목별 관세와 비관세 장벽 등 협상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번 협의에서 양측의 요구 사항과 양보 사안이 무엇인지는 공개되지 않아서다. 미국이 향후 실무 협의 과정에서 방위비 분담금,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참여 등의 사안을 들고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단지, 미국의 90일 상호관세 유예가 종료되기 전인 7월 8일까지 시간을 벌었을 뿐 결정된 것 하나 없는 안갯속 상황이라 협상을 서둘러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27일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 등에 따르면 한미 양국은 지난 25일 미국 워싱턴 DC에서 상호관세와 자동차·철강 등 품목별 관세를 폐지하는 내용을 담은 소위 '7월 패키지'(July Package)를 목표로 협의하기로 했다.
다만, 이번 협의에서 유예된 25% 상호관세를 두고 양측이 무엇을 주고 받을 지, 또 품목별 관세를 얼마나 낮출 지 등은 확인된 게 없다.
우리나라의 주력 수출품목인 자동차 관련 관세만 봐도 예단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실제로 자동차 품목 관세를 어떻게 할 지는 트럼프 대통령이 결정해야 할 문제"라고 밝혔다. 공식 협상 의제 외에도 방위비 증액 문제, 30개월 미만 소고기 수입 제한 등 비관세 장벽도 거론되지 않았다. 앞으로 미국이 관세를 빌미로 방위비 분담금, 전기차 또는 반도체 등에서 보조금 지급 등을 추가로 요구할 가능성도 크다.
정규철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전망실장은 "이번 협의에서 우리 측 우려 사항을 전달하고, 미국 측의 신속한 협상 의지를 확인했으니 양측이 의중을 알아본 뒤 협상을 시작해나갈 것"이라며 "협상 과정에서 미국이 추가 양보를 요구할 가능성에 대비하되 우리나라가 중요한 협력 파트너임을 각인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의 요구 사안이 구체적이지 않은 상황에서 관세 유예가 종료되는 7월 초까지 이어질 불확실성은 우리 경제에 악영향을 줄 것이란 우려도 크다. 25% 상호관세만 유예됐을 뿐 자동차·철강 등 품목별 관세 25%, 보편관세 10%는 이미 발효됐다. 관세란 불확실성이 여전한 상황에서 시장 예측이 어려워진 우리 기업으로서는 신규 투자, 신규 고용 등 의사결정을 하기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더구나, 장기화된 내수 침체에 수출 둔화세까지 겹쳐 경기 부진의 골은 더 깊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 지표만 봐도 1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0.2%로 3분기 만에 역성장했다. 민간소비는 0.1%, 건설·설비투자는 각각 3.2%와 2.1% 증가하는 데 그쳤다. 올해 초까지 증가세를 이어가던 수출마저 1.1% 감소했다.
전문가들은 미국발 관세가 실물 경제에 직접적으로 미치는 영향이 이제부터 본격화될 것으로 내다봤다. 미국이 관세를 빌미로 어떤 것을 요구할지 모르는 상황인만큼 서두르지 말고, 최종 타결까지 늦추는 것이 유리하다는 데 한목소리를 냈다. 특히, 조선업 등 미국이 요구하는 분야를 협상카드로 잘 활용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기업들의 불확실성이 너무 오래 가기 전에 협상을 통해 최소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다만,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에서는 협상에 한계가 있어 지금 정부에서 결정하면 안 되고, 최대한 협상을 미루는 것이 유리하다"고 말했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도 "미국에서조차 관세 정책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면서 트럼프 정부가 관세 수위를 조절하는 상황이라 시간이 지날수록 급한 것은 미국 측이 될 수 있다"며 "미국이 원하는 조선업 협력, 알래스카 LNG 참여 등 사업성을 잘 판단해 협상에 나서되 모든 고려사항을 검토하는 식의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