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중국의 과학굴기를 보면 빠른 발전 속도에 감탄하게 된다. AI 분야에서 독주하던 미국은 딥시크 충격에 스푸트니크 모멘트를 맞이하며 트럼프 대통령이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집중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미 중국은 자연과학 분야에서 미국을 넘어섰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바이오에서도 중국의 빠른 발전 속도에 놀란 미국은 생물보안법 등을 통해 중국의 신약 개발·생산 기업들을 견제하려 하고 있다. 이러한 글로벌 경쟁 속에서 우리나라도 신약 개발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최근 AI·빅데이터를 활용한 디지털 신약 개발 기술과 새로운 모달리티를 갖는 치료제들이 주목을 받고 있다. 한국연구재단과 생명공학정책연구센터는 산학연 전문가로 구성된 '혁신신약 정책 플랫폼' 회의에서 미래 신약 개발의 핵심 전략으로 '첨단신약'을 제시하였다. 첨단신약이란 디지털 혁신 기술과 새로운 모달리티를 융합해 개발하는 차세대 맞춤형 의약품을 일컫는다. 여기서 새로운 모달리티란 프로탁(PROTAC)과 같은 표적단백질 분해제, CAR-T 면역세포 치료제, ADC (항체-약물 결합체) 등의 혁신적인 치료제를 말한다.
이처럼 첨단신약 개념이 주목받는 이유는 기존 신약 개발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서다. 전통적인 신약 개발은 평균 10년 이상의 시간과 막대한 비용이 들지만 성공 확률은 매우 낮다. 반면 AI 등의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면 신약 후보물질을 더 빠르고 정확하게 찾아 실패 위험을 줄일 수 있다.
이 때문에 글로벌 제약사들이 AI를 활용한 가상 스크리닝과 빅데이터 분석 등으로 신약 탐색의 성공률을 높이려 하고 있다. 또한, 프로탁(PROTAC), CAR-T, ADC 같은 첨단 치료법은 기존 약물로는 공략하기 어려웠던 난치병 치료에 새로운 희망을 줄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아직 AI·빅데이터 기술 기반의 첨단신약을 만들 핵심 기반이 부족한 실정이다. 첨단신약 개발에 필요한 AI 모델, 방대한 바이오 빅데이터, 유망 표적 발굴 기술 등 기초 연구 인프라를 다져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더 이상 바이오시밀러와 개량 신약 위주의 '빠른 추격자(fast follower)' 전략만으로는 글로벌 시장에서 승기를 잡기 어렵다.
이제 '선도적 개척자(first mover)'로 도약하기 위해서 기초원천 연구에 대한 전략적 투자와 신약 개발 생태계의 체질 개선이 절실하다. 무엇보다도 신약 개발의 기본 역량에 해당하는 원천기술과 다양한 후보물질 파이프라인 구축이 선행되어야 한다. 예컨대, 질병의 새로운 표적을 찾아내고 검증하는 기술, AI와 빅데이터로 유망 신약 후보를 발굴하는 플랫폼, mRNA 백신이나 PROTAC처럼 획기적인 신규 모달리티 치료제 개발 등이 모두 해당된다.
이런 분야는 당장 성과가 나기까지 시간이 걸리지만, 장기적으로 첨단신약 탄생의 토양이 되어 준다. 변화의 조짐도 보인다. 정부는 첨단바이오를 국가 12대 전략기술 중의 하나로 선정해 첨단바이오 기술 규제 혁파와 인프라 조성에 나섰다.
코로나19 팬데믹 때 우리나라가 신속 정확한 진단 기술로 'K-진단'이라는 명성을 얻은 것도 신종플루·메르스 사태를 거치며 축적한 기술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핵심 기술에 꾸준히 투자하고 축적한 결과가 나중에 감염병 위기에서 빛을 발한 것이다.
신약 분야에서도 지금부터 첨단신약의 핵심 기술을 탄탄히 준비한다면 머지않아 세계가 주목하는 글로벌 블록버스터 신약을 국내에서 탄생시킬 수 있을 것이다. 세계를 선도하는 'K-신약'의 꿈도 이러한 기반 위에서 실현될 수 있다.
궁극적으로 첨단신약 기초·원천기술의 축적은 국내 신약 개발 역량을 강화하고 글로벌 경쟁력을 키우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선제적이고 전략적인 투자로 기초부터 튼튼한 첨단신약 개발 생태계를 구축해 대한민국이 글로벌 신약 강국으로 도약할 발판을 마련할 적기다. <오두병 한국연구재단 신약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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