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수입 자동차와 부품에 부과하기로 했던 관세를 완화하기로 하면서 자동차 업계에선 안도의 한숨이 새어 나왔다. 현지 투자를 유도했던 자동차 관세에 오히려 미국 완성차 빅3 등 현지 기업이 타격받는 꼴이 되자 일보 후퇴한 것으로 풀이된다. 취임 후 첫 100일을 앞두고 나온 이 같은 소식에 굳건했던 관세 정책이 차츰 유연해질 것이란 기대감도 나오고 있다.
28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 로이터 통신 등의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완성차 관세가 다른 관세와 중복되지 않도록 하는 조치를 발표할 예정이다. 또 미국 내 자동차 제조에 사용되는 수입 부품에 대해서도 일부 관세를 완화할 방침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100일인 29일 미국 자동차 산업 중심지인 미시간주를 방문하기에 앞서 이러한 조치를 발표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완성차 업체들은 관세 충격을 일부 완화할 수 있을 전망이다. 특히 이 조치는 소급 적용될 예정이기에 미국 정부에 환급 신청을 할 시 이미 납부한 관세의 일부를 돌려받을 수 있게 된다. 1년간은 미국산 자동차 가격에 3.75%를, 두 번째 해에는 2.5%만큼 각각 부품 관세가 환급된 뒤 폐지된다고 WSJ는 전했다.
이번 조치는 해외 기업의 현지 투자를 유도하기 위해 시행된 고율 관세에 오히려 미국 현지 업체들의 타격이 심해지며 불만이 터져 나오자 트럼프 대통령이 사실상 일보 후퇴하기로 한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 주요 완성차 업체를 대표하는 '자동차혁신연합'(AAI)과 드트로이트 3대 완성차 업체인 GM, 포드, 크라이슬러가 주축인 '자동차정책위원회'(AAPC) 등은 지난 22일 서한을 통해 "자동차 부품에 대한 관세는 글로벌 자동차 공급망을 혼란에 빠트릴 것"이라며 "소비자 자동차 가격 상승 및 딜러십 판매 감소와 차량 유지·수리비를 더욱 인상하고 예측 가능성을 낮추는 등의 도미노 효과를 일으킬 것"이라고 경고의 목소리를 낸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발 물러서며 국내 완성차 및 부품 업계도 숨통을 트이게 됐다. 한 부품 업계 관계자는 "관세 영향이 광범위하고, 정책이 불확실해 어디까지,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막막했는데, 이번 조치로 관세 영향 축소를 기대해 볼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이번 조치는 자동차와 부품 관세를 예정보다 떨어뜨리겠다는 움직임"이라며 "아직 명확한 건 없지만 전체적인 뉘앙스는 자동차와 부품 관세를 완화하면서 전반적인 분위기를 끌어올리겠다는 것이기에 국내 완성차 및 부품 업체들에게도 긍정적인 효과가 예상된다"고 전했다.
다만 미국을 중심으로 한 공급망 재편과 현지 생산 확대 움직임은 이어질 전망이다. 현대차는 지난 24일 2025년 1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 공급망 안정과 부품 관세에 대응하고자 현지 공급 업체 발굴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또 기아 멕시코 공장에서 생산되던 미국향 투싼을 미국 앨라배마 공장으로 돌리는 등 효율적인 생산공장 운영도 이미 실행한 상태다.
한편 업계에서는 고율 관세로 현지 투자를 성공적으로 얻어낸 트럼프 행정부가 관세 완화를 통해 민심도 붙잡을 것이란 의견도 나오고 있다. 최근 관세 전쟁으로 인한 경제 불확실성 심화로 지지율이 하락한 가운데 자동차 관세 완화 발표와 관세 정책을 통한 투자 성과를 홍보하며 여론 반전을 이끌어낸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동차 관세 완화를 발표할 취임 100일 다음 날인 오는 30일, 백악관에서 대미 투자를 약속한 기업들을 초청해 100일 동안 거둔 광범위한 투자 성과에 대해 홍보할 계획이다. 이 자리에는 4년간 210억달러(약 30조원) 규모의 투자를 약속한 현대자동차그룹의 고위 임원도 참석할 예정이라고 블룸버그·로이터 통신은 보도했다.
산업계 관계자는 "트럼프는 정치인이기에 앞서 사업가"라며 "바이든 전 행정부 때보다 더 많은 미국 투자를 이끌어냈다는 성과를 거둔 만큼 여론을 진정시키기 위해 이를 선전하고, 관세에 대해서도 선심을 쓰는 그림을 가져가며 두 마리 토끼를 잡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임주희기자 ju2@dt.co.kr
정의선(왼쪽 2번째) 현대차그룹 회장이 지난 3월 24일(현지시간) 백악관 루즈벨트룸에서 도널드 트럼프(왼쪽 3번째) 대통령이 주재한 발표 행사에서 미국에 210억달러 규모의 투자를 집행할 것을 발표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