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훈 경희대 경영학과 교수
세계적으로 인플레이션에 대응하는 것이 최우선 경제 정책이 될 정도로, 말 그대로 월급 빼고 모든 것이 다 오르고 있다. 원·달러 환율은 13년 4개월 만에, 물가는 24년 만에 최고점을 찍었다는 뉴스를 접하면서 추석 차례상 장보기를 앞둔 아내도 걱정이 크다.

이런 상황에서 통신요금은 전반적으로 하향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통계청 기준 가구당 월별 통신비 지출 금액과 비중도 완만하게 줄어드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7년간 꾸준히 오른 소비자물가지수 바스켓에서도 통신서비스만 유일하게 감소했다. 이는 우리나라를 제외한 주요 글로벌 통신사들의 움직임과는 반대 방향이다.

유례없는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미국 버라이즌과 AT&T 및 유럽연합(EU) 주요 통신사들은 통신요금을 인상하는 중이다. 영국 네덜란드 포르투갈 벨기에 오스트리아에서는 물가에 연동되는 요금 인상이 약관에 명시된 경우도 있다. 네트워크 품질과 안정성 및 보안 유지를 위해 지속적인 투자가 필수적인 상황을 감안해서 인플레에 따른 요금 인상을 허용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통신사들도 매년 수조 원대의 투자를 하고 있다. 작금의 5G 고도화 시기에는 당연히 더 큰 투자비를 지출한다. 5G 도입 이후 3년 동안 85개 도시로 커버리지를 넓혔으며, 점차 전국 곳곳으로 확대될 것이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지난 3월 오픈시그널의 5G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5G 품질은 다운로드 속도, 가용성(5G 연결 활성화 비율), 도달 범위(임의 지점에서 5G 연결의 점수화) 등 6개 핵심 항목에서 1위를 차지했다. 이는 국제적 비교에서 우리나라 5G 품질의 독보적 위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노력과 실질적 성과에도 불구하고 5G 품질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존재하고 세간의 인식이 호의적이지 않은 것은 5G를 포함한 통신서비스에 대한 기대 수준이 매우 높다는 것을 방증한다. 멀게는 90년대 말~2000년대 초의 초고속 인터넷부터, 가깝게는 5G에 이르기까지 사회 일각에서 신기술로의 전환 국면을 과도하게 이용하면서 사용자에게 기대치와 환상을 너무 높였던 측면도 있다.

그런데 최근 정책당국의 자율규제 기조에 호응해 통신사들이 새로운 융합형 서비스와 요금제를 과감히 시도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정부의 민생안정과 보조를 맞추어 기존 5G 요금제에는 없었던 중간요금제를 출시한 것이 그 한 예다. SKT에서 월 5만9000원에 24GB를 제공하는 5G 중간요금제를 처음 선보인 이후, KT는 6만1000원에 30GB를, LGU+는 6만1000원에 31GB의 데이터를 제공하는 중간요금제를 출시하였다.

앞으로 5G 시장이 더욱 성숙함에 따라 통신사들은 5G 중간요금제뿐만 아니라 자사의 전략적 고객 세그먼트를 중심으로 요금과 품질 경쟁을 벌일 것이다. 여전히 일각에서는 5G 중간요금제의 데이터 제공량이 충분하지 못하다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지만, 과기정통부의 '무선데이터 트래픽 통계'에 따르면 그렇다고 볼 수는 없다. 2022년 6월 기준 5G 이용자의 월평균 데이터 사용량은 26.8GB이며, 상위 5% 헤비유저를 제외하면 평균 사용량은 19.3GB로 대폭 떨어진다. 따라서 이번 중간요금제는 대다수 사용자에게 충분한 데이터를 제공할 것이다. 10GB대와 100GB대 이상으로 양분되었던 선택지에 중간 옵션을 추가하여 선택권을 넓혔다는 점만으로도 소비자 후생의 증가를 기대할 수 있다.

5G 가입자가 이제 50%에 육박하였기에 조만간 일반화될 것이며, 이는 전 세계에 우리나라의 첨단 'K-넷' 환경을 또 한 번 각인시키는 자랑스러운 국가 자산이다. 오르기만 하는 물가 속에서 민생을 챙기려는 정부와 민간 통신사가 한마음으로 만들어 낸 성과로도 볼 수 있다. 디지털 대전환에 따른 뉴노멀 시대에 5G와 같은 첨단 인프라는 단순히 물리적 연결의 수단을 넘어서 경제 성장은 물론 팬데믹과 같은 위기 극복과 디지털 복지의 핵심적인 기반이 된다.

우리나라가 디지털 대전환과 뉴노멀 시대를 선도하는 벤치마킹 국가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 ICT정책도 기존의 인위적인 요금 규제와 같은 방향이 아니라 민간 스스로 투자와 서비스 활성화에 앞장서도록 만드는 진흥 중심으로 과감히 전환돼야 한다. 통신사와 플랫폼과 같이 ICT 생태계의 큰 고래를 넛지하여 생태계는 물론 사회·경제가 선순환하도록 밀어주는 것이 진정한 플랫폼 정부의 모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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