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물이 더 빨리 어는 자연현상
초보수준 과학적 원인 아직도 못밝혀
초보수준 과학적 원인 아직도 못밝혀
냉장고에 따뜻한 물을 넣어두면 차가운 물보다 더 빨리 어는 경우가 있다. 일반 상식과는 도대체 맞지 않는 일이지만 얼음을 얼릴 수 있는 냉장고만 있으면 누구나 쉽게 관찰할 수 있는 분명한 자연 현상이다. 음펨바는 1969년에 그런 현상을 처음 물리학계에 알려준 탄자니아의 고등학생 이름이다. 자연 현상에 학생의 이름이 붙여진 드문 경우인 셈이다.
물론 펄펄 끓는 물이 얼음처럼 차가운 물보다 빨리 어는 것은 아니다. 섭씨 35도 정도의 따뜻한 물과 섭씨 5도 정도의 시원한 물을 비교해보면 그렇다는 뜻이다. 물론 물을 담는 그릇의 재질이나 모양, 그리고 물의 양이 같아야 한다. 음펨바 효과가 순수한 물에서만 나타나는 것도 아니다. 음펨바가 처음 관찰했듯이 설탕을 녹인 우유에서도 나타난다.
그런데도 음펨바 효과는 우리에게 매우 낯설고 생소한 현상이다. 음펨바 효과를 소개한 교과서는 찾아보기 어렵고, 과학 상식으로 소개되는 경우도 드물다. 사실 1963년에 교실에서 아이스크림을 만드는 실험을 하던 중에 우연히 관찰하게 된 현상에 대해 끈질기게 질문을 던졌던 에라스토 음펨바가 최초의 발견자도 아니었다.
아리스토텔레스도 음펨바 효과를 알고 있었고, 그럴듯한 방법으로 설명도 했다. 어떤 성질이 주변의 성질과 반대가 되면 그 성질이 더욱 강화된다는 소위 `반(反)주변성'(antiperitasis) 때문이라고 했다. 바싹 마른 옷은 습한 곳에서 쉽게 축축해지고, 추운 겨울에 우물물이 따뜻하게 느껴지는 것과 같은 이유 때문이라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천둥과 번개도 반주변성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물론 현대 과학의 입장에서는 말도 안 되는 엉터리 설명이었다.
13세기의 철학자 로저 베이컨도 그런 사실을 알고 있었고, 근대 철학의 아버지로 알려진 17세기의 르네 데카르트도 그 이유를 궁금하게 여겼다. 음펨바 효과는 자연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철학자들이 적어도 2000년 이상 이유를 알고 싶어했던 문제 중 하나였던 셈이다. 다만 철학자들이 드러내놓고 논의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을 뿐이다. 현실적으로 쓸모가 있는 자연 현상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1969년에 학술 논문을 통해 공식적으로 음펨바 효과가 알려진 후에도 상황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음펨바 효과에 대한 현대 과학적 연구는 아직도 초보적인 수준에 머물고 있다. 증발, 대류, 열전도 등 여러 가지 열역학적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추정을 하고 있을 뿐 속 시원한 설명은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 물에 녹아있는 질소나 이산화탄소 등의 기체 불순물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실험적으로 분명하게 확인하지는 못했다.
음펨바 효과는 물이 얼어서 얼음이 되는 것처럼 일상적인 현상이 사실은 이론적으로 얼마나 어렵고 힘든 문제인지를 확인시켜주는 예가 되고 있다. 액체의 물이 어디에서나 균일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문제다. 온도, 밀도, 열전도도를 비롯한 평균값을 이용한 방법으로는 만족스러운 답을 얻을 수 없다. 물이 어는 것처럼 단순한 자연 현상에도 놀라운 수준의 복잡성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 오늘날 우리가 현대 과학을 통해 얻는 새로운 깨달음이다.
음펨바 효과가 세상에 다시 모습을 드러내게 된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도 있다. 음펨바에게 과학을 가르치던 교사는 음펨바의 관찰을 그저 `착각' 때문이었다고 하찮게 여겨 버렸다. 그러나 음펨바는 포기하지 않았다. 훗날 자신의 학교를 찾아온 데니스 오스본이라는 물리학자에게 자신의 경험을 설명하고 이유를 물었던 끈기 덕분에 자신의 이름을 남길 수 있었다. 그렇다고 모든 학생들에게 음펨바를 본받으라고 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를 본받는다고 과학자가 되는 것도 아니고, 모두가 과학자가 돼야 할 이유도 없다.
이덕환(서강대 과학커뮤니케이션)
물론 펄펄 끓는 물이 얼음처럼 차가운 물보다 빨리 어는 것은 아니다. 섭씨 35도 정도의 따뜻한 물과 섭씨 5도 정도의 시원한 물을 비교해보면 그렇다는 뜻이다. 물론 물을 담는 그릇의 재질이나 모양, 그리고 물의 양이 같아야 한다. 음펨바 효과가 순수한 물에서만 나타나는 것도 아니다. 음펨바가 처음 관찰했듯이 설탕을 녹인 우유에서도 나타난다.
그런데도 음펨바 효과는 우리에게 매우 낯설고 생소한 현상이다. 음펨바 효과를 소개한 교과서는 찾아보기 어렵고, 과학 상식으로 소개되는 경우도 드물다. 사실 1963년에 교실에서 아이스크림을 만드는 실험을 하던 중에 우연히 관찰하게 된 현상에 대해 끈질기게 질문을 던졌던 에라스토 음펨바가 최초의 발견자도 아니었다.
아리스토텔레스도 음펨바 효과를 알고 있었고, 그럴듯한 방법으로 설명도 했다. 어떤 성질이 주변의 성질과 반대가 되면 그 성질이 더욱 강화된다는 소위 `반(反)주변성'(antiperitasis) 때문이라고 했다. 바싹 마른 옷은 습한 곳에서 쉽게 축축해지고, 추운 겨울에 우물물이 따뜻하게 느껴지는 것과 같은 이유 때문이라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천둥과 번개도 반주변성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물론 현대 과학의 입장에서는 말도 안 되는 엉터리 설명이었다.
13세기의 철학자 로저 베이컨도 그런 사실을 알고 있었고, 근대 철학의 아버지로 알려진 17세기의 르네 데카르트도 그 이유를 궁금하게 여겼다. 음펨바 효과는 자연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철학자들이 적어도 2000년 이상 이유를 알고 싶어했던 문제 중 하나였던 셈이다. 다만 철학자들이 드러내놓고 논의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을 뿐이다. 현실적으로 쓸모가 있는 자연 현상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1969년에 학술 논문을 통해 공식적으로 음펨바 효과가 알려진 후에도 상황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음펨바 효과에 대한 현대 과학적 연구는 아직도 초보적인 수준에 머물고 있다. 증발, 대류, 열전도 등 여러 가지 열역학적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추정을 하고 있을 뿐 속 시원한 설명은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 물에 녹아있는 질소나 이산화탄소 등의 기체 불순물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실험적으로 분명하게 확인하지는 못했다.
음펨바 효과는 물이 얼어서 얼음이 되는 것처럼 일상적인 현상이 사실은 이론적으로 얼마나 어렵고 힘든 문제인지를 확인시켜주는 예가 되고 있다. 액체의 물이 어디에서나 균일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문제다. 온도, 밀도, 열전도도를 비롯한 평균값을 이용한 방법으로는 만족스러운 답을 얻을 수 없다. 물이 어는 것처럼 단순한 자연 현상에도 놀라운 수준의 복잡성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 오늘날 우리가 현대 과학을 통해 얻는 새로운 깨달음이다.
음펨바 효과가 세상에 다시 모습을 드러내게 된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도 있다. 음펨바에게 과학을 가르치던 교사는 음펨바의 관찰을 그저 `착각' 때문이었다고 하찮게 여겨 버렸다. 그러나 음펨바는 포기하지 않았다. 훗날 자신의 학교를 찾아온 데니스 오스본이라는 물리학자에게 자신의 경험을 설명하고 이유를 물었던 끈기 덕분에 자신의 이름을 남길 수 있었다. 그렇다고 모든 학생들에게 음펨바를 본받으라고 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를 본받는다고 과학자가 되는 것도 아니고, 모두가 과학자가 돼야 할 이유도 없다.
이덕환(서강대 과학커뮤니케이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