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들 벽 허물고 대화… 팀 구성 유기적 협력
허혈ㆍ골다공증 등 치료물질 발굴 기술이전 성과
허혈ㆍ골다공증 등 치료물질 발굴 기술이전 성과
■ 21세기 프론티어사업 R&D 새 지평 열다
⑻ 생체기능조절물질개발사업단
반도체와 휴대폰, 중공업 등에서 세계 선두를 달리는 우리나라가 선진국에 비해 경쟁력이 한참 떨어지는 게 바로 제약분야다. 기술과 산업, R&D시스템, 투자 등 전체적인 사이클이 아직 세계적 신약을 내놓을 정도로 갖춰지지 못 했다. 이런 가운데 단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혁신적 신약 개발'의 꿈을 위해 2001년 출범한 것이 생체기능조절물질개발사업단(단장 유성은, 이하 생체기능사업단)이다.
10년간 허혈, 골다공증, 황반변증, 당뇨병 등에서 우수한 후보물질을 여러 개 발굴하고 기술이전도 여러 건 이뤄냈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큰 의미는 화학, 생물, 약물, 독성 등 연구분야별로 높은 담에 둘러싸여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던 과학자들이 실험실 `벽'을 허물고 함께 기술흐름을 논의하고 이웃 분야의 연구흐름을 자신의 연구에 접목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또 이미징, 바이오마커, 분자설계 등 최신 기술을 신약개발에 적용하는 순발력을 터득했다. 신약개발의 불모지에서 터를 닦고 씨앗을 뿌리고 묘목까지 키워내는 일은 과학자들의 열정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과학자들, 실험실 벽 허물고 대화하다
사업단을 이끄는 유성은 단장(사진)은 "신약 개발에 왕도는 없다"고 잘라 말한다. 반짝 하는 아이디어나 운으로 헤쳐나갈 수 없는 험난한 과정이라는 것이다. 유 단장은 "끊임없는 연구와 옆을 돌아보는 시야, 첨단 신기술 도입이 모두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좋게 보면 흥미진진하지만 달리 말하면 다른 어떤 연구분야보다 실패 가능성이 높은 영역이다. 생명을 다루는 분야인 만큼 학문적으로 아직 규명되지 않은 부분이 많고 우리나라의 기술, 시스템적 한계가 발목을 잡기도 한다.
가장 먼저 한 것은 연구자들을 대화시키는 것이었다. 신약개발은 화학, 생물학, 독성학, 약리학, 약학 등 여러 학문이 연계돼야 하는 전형적인 다학제적 분야인 만큼 연구자들이 이웃 연구분야를 돌아보고 그 흐름을 자신의 연구에 반영시키는 습관을 들이는 게 필수적이다. 유 단장은 각 연구팀 구성단계부터 이를 감안했다. 당뇨병 치료제를 개발하려면 의약화학과 약리학, 분자생물학, 독성연구가 필수적으로 필요한 만큼 이들 연구자가 팀을 이루도록 했다. 분야가 다른 연구자들끼리 서로 1년에 최소 4번은 공식 토론을 하도록 했고, 필요한 경우 매달 또는 매주 하도록 했다. 유 단장은 "서로 다른 영역의 연구자들이 대화를 하면서 엄청난 시너지를 체감한다"며 "생물학 연구자가 화학분야의 연구흐름을 알고 활용하게 되면 연구범위와 깊이가 훨씬 깊어질 수 있다. 도움되는 정보를 많이 갖고 있을수록 과학자는 창조적이고 경쟁력이 높아진다"고 말한다. 연구과정에서 대부분의 돌파구(breakthrough)는 남의 분야에서 오는 경우가 많다는 것
◇기초연구 결과를 신약개발로
사업단의 궁극적 목표는 기초연구를 통해 세계 처음으로 밝혀낸 원리를 약으로까지 개발하는 것이다. 그러나 단계적 전략을 취했다. 초기에는 신규성은 적지만 남이 한 연구결과를 활용하는 연구부터 시작했다. 인체의 원리는 알아냈지만 이를 조절하는 약이 아직 개발되지 않은 분야가 대표적이다. 리스크를 줄이는 차원에서 효과적인 접근방법이다. 2단계부터는 기초연구부터 시작했다. 이를 위해 첨단기술 도입이 필수적이었다. 도입한 대표적인 기술이 이미징 기술이다. 몸 속 물질을 분자 차원에서 볼 수 있는 자기공명분광법(MRS)을 적용, 후보물질의 약효를 개발단계부터 쉽게 파악하도록 했다. 이 기술은 사업단의 주요 연구성과 중 하나인 허혈치료제에 이용됐다.
또한 신약연구에 공통적으로 필요한 분자설계, 동물모델, 의약화학, 조합화학, 약동역학, 안전성평가 등 인프라 기술 연구를 병행해 이들 연구팀을 개별 신약연구팀과 유기적으로 협력시켰다. 유 단장은 "군대에 사령부와 일선 전투부대가 있듯이 신약개발을 하는 전투부대를 지원하는 사령부 격으로 플랫폼 기술 연구팀을 구성, 부족한 인프라기술을 가장 효과적으로 보강해 전투부대에 효율적으로 제공할 수 있게 했다"고 말한다. 인프라기술의 진보는 신약개발의 어려운 과정을 훨씬 쉽게 풀 수 있는 지원자 역할을 한다.
플랫폼 기술 연구팀은 대부분이 연구소, 대학 중심지만 신약개발팀은 가능한 한 산학연으로 구성해 연구성과가 산업화로 이어질 수 있게 구성했다. LG생명과학, 크리스탈지노믹스 등이 연구에 참여하고 있다.
◇허혈ㆍ골다공증 치료물질 등 성과
10년간의 연구로 유망한 신약후보물질도 여럿 발굴했다.
유 단장은 특히 허혈, 골다공증, 황반부종치료제에 기대를 많이 걸고 있다. "연구를 하다 보면 육감이 들 때가 있는데, 파프원(FAF-1)이라는 허헐치료제 물질이 동물실험에서도 아주 좋은 연구결과를 얻어 느낌이 좋다"고 말한다.한국화학연구원 연구팀이 주도하는 골다공증치료제는 줄기세포가 골세포로 분화하는 과정에서 관여하는 특정 단백질을 발굴해 이를 치료제로 개발하고 있다. 기존 치료제는 골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는 기능에 그친다면 이 물질은 새로운 골 형성을 촉진하는 기능도 동시에 한다.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남성 골다공증 치료에도 효과적일 것으로 기대된다. 이 물질은 현재 전임상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노인실명의 가장 큰 원인인 황반부변증 치료제는 현재 전임상 직전단계인데 효능이 우수해 기대를 모으고 있다. 지금까지는 이 병은 안구에 주사바늘을 찔러넣는 주사치료만 가능했는데 이 물질이 개발되면 먹는 약으로 치료가 가능하다.
사업단은 10년간 국내 56건, 국외 269건 등 총 325건의 논문을 발표하고, 250건의 특허를 출원했으며 98건의 특허를 등록했다. 또 부작용이 적은 새로운 당뇨병치료제 후보물질이 95억원에 기술 이전되는 등 총 9건, 130억원 이상의 기술이전을 이뤄냈다.
◇"대형 기술이전 사례 발굴하겠다"
유 단장은 올해와 내년 부지런히 해외출장을 계획하고 있다. 지금까지 이뤄낸 연구성과를 기술이전하기 위해서다. 다국적기업들은 초기 기술보다는 임상2상 정도까지 진행된 기술을 원하기 때문에 후보물질 단계에서 이전을 이뤄내는 게 쉽지는 않다. 그러나 국내에서 임상2상까지 할 제약회사를 찾는 게 어렵다. 신약연구 과정에서 겪는 구조적 딜레마다.
유 단장은 "신약개발은 네 사람이 함께 뛰는 릴레이와 같은 데 우리나라는 주자가 다 갖춰지지 못한 상황"이라고 말한다. △원리를 찾는 기초연구 △후보물질 설계ㆍ개발 △약효와 안전성을 검증하는 전임상 △임상연구하는 제약사 등 네 단계가 필요한데, 후보물질 개발 후 전임상과 초기임상을 하는 단계에 빈 구멍이 있다는 것. 미국에서는 연구결과를 검증해 다국적기업에 이전하는 3단계 역할에 특화된 기업들이 있다. 국내에서는 대부분의 국가사업은 2단계에서 끝나고 그 결과를 받아 전임상과 임상을 진행할 기업이 부족하다.
유 단장은 "임상2상은 묘목에 열매가 1개 정도 달린 상태라면 우리는 아직 묘목(후보물질) 단계여서 이전에 어려움이 많다"고 말한다. 그러나 세계 수준에서 받아들여지는 연구결과를 만들면 가장 파급효과가 크기 때문에 거기에 기대를 걸고 있다.
그는 "신약개발은 일당백이라는 마음가짐이나 정신력만으로 통하는 분야가 아니다"라며 "그 속성을 이해하고 걸맞은 지원과 평가시스템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사업단이 종료하더라도 연구결과와 노하우, 시스템은 어떤 식으로든 활용되도록 정책적 안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안경애기자 naturean@
프론티어연구성과지원센터ㆍ디지털타임스 공동기획
⑻ 생체기능조절물질개발사업단
반도체와 휴대폰, 중공업 등에서 세계 선두를 달리는 우리나라가 선진국에 비해 경쟁력이 한참 떨어지는 게 바로 제약분야다. 기술과 산업, R&D시스템, 투자 등 전체적인 사이클이 아직 세계적 신약을 내놓을 정도로 갖춰지지 못 했다. 이런 가운데 단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혁신적 신약 개발'의 꿈을 위해 2001년 출범한 것이 생체기능조절물질개발사업단(단장 유성은, 이하 생체기능사업단)이다.
10년간 허혈, 골다공증, 황반변증, 당뇨병 등에서 우수한 후보물질을 여러 개 발굴하고 기술이전도 여러 건 이뤄냈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큰 의미는 화학, 생물, 약물, 독성 등 연구분야별로 높은 담에 둘러싸여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던 과학자들이 실험실 `벽'을 허물고 함께 기술흐름을 논의하고 이웃 분야의 연구흐름을 자신의 연구에 접목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또 이미징, 바이오마커, 분자설계 등 최신 기술을 신약개발에 적용하는 순발력을 터득했다. 신약개발의 불모지에서 터를 닦고 씨앗을 뿌리고 묘목까지 키워내는 일은 과학자들의 열정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과학자들, 실험실 벽 허물고 대화하다
사업단을 이끄는 유성은 단장(사진)은 "신약 개발에 왕도는 없다"고 잘라 말한다. 반짝 하는 아이디어나 운으로 헤쳐나갈 수 없는 험난한 과정이라는 것이다. 유 단장은 "끊임없는 연구와 옆을 돌아보는 시야, 첨단 신기술 도입이 모두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좋게 보면 흥미진진하지만 달리 말하면 다른 어떤 연구분야보다 실패 가능성이 높은 영역이다. 생명을 다루는 분야인 만큼 학문적으로 아직 규명되지 않은 부분이 많고 우리나라의 기술, 시스템적 한계가 발목을 잡기도 한다.
가장 먼저 한 것은 연구자들을 대화시키는 것이었다. 신약개발은 화학, 생물학, 독성학, 약리학, 약학 등 여러 학문이 연계돼야 하는 전형적인 다학제적 분야인 만큼 연구자들이 이웃 연구분야를 돌아보고 그 흐름을 자신의 연구에 반영시키는 습관을 들이는 게 필수적이다. 유 단장은 각 연구팀 구성단계부터 이를 감안했다. 당뇨병 치료제를 개발하려면 의약화학과 약리학, 분자생물학, 독성연구가 필수적으로 필요한 만큼 이들 연구자가 팀을 이루도록 했다. 분야가 다른 연구자들끼리 서로 1년에 최소 4번은 공식 토론을 하도록 했고, 필요한 경우 매달 또는 매주 하도록 했다. 유 단장은 "서로 다른 영역의 연구자들이 대화를 하면서 엄청난 시너지를 체감한다"며 "생물학 연구자가 화학분야의 연구흐름을 알고 활용하게 되면 연구범위와 깊이가 훨씬 깊어질 수 있다. 도움되는 정보를 많이 갖고 있을수록 과학자는 창조적이고 경쟁력이 높아진다"고 말한다. 연구과정에서 대부분의 돌파구(breakthrough)는 남의 분야에서 오는 경우가 많다는 것
◇기초연구 결과를 신약개발로
사업단의 궁극적 목표는 기초연구를 통해 세계 처음으로 밝혀낸 원리를 약으로까지 개발하는 것이다. 그러나 단계적 전략을 취했다. 초기에는 신규성은 적지만 남이 한 연구결과를 활용하는 연구부터 시작했다. 인체의 원리는 알아냈지만 이를 조절하는 약이 아직 개발되지 않은 분야가 대표적이다. 리스크를 줄이는 차원에서 효과적인 접근방법이다. 2단계부터는 기초연구부터 시작했다. 이를 위해 첨단기술 도입이 필수적이었다. 도입한 대표적인 기술이 이미징 기술이다. 몸 속 물질을 분자 차원에서 볼 수 있는 자기공명분광법(MRS)을 적용, 후보물질의 약효를 개발단계부터 쉽게 파악하도록 했다. 이 기술은 사업단의 주요 연구성과 중 하나인 허혈치료제에 이용됐다.
또한 신약연구에 공통적으로 필요한 분자설계, 동물모델, 의약화학, 조합화학, 약동역학, 안전성평가 등 인프라 기술 연구를 병행해 이들 연구팀을 개별 신약연구팀과 유기적으로 협력시켰다. 유 단장은 "군대에 사령부와 일선 전투부대가 있듯이 신약개발을 하는 전투부대를 지원하는 사령부 격으로 플랫폼 기술 연구팀을 구성, 부족한 인프라기술을 가장 효과적으로 보강해 전투부대에 효율적으로 제공할 수 있게 했다"고 말한다. 인프라기술의 진보는 신약개발의 어려운 과정을 훨씬 쉽게 풀 수 있는 지원자 역할을 한다.
플랫폼 기술 연구팀은 대부분이 연구소, 대학 중심지만 신약개발팀은 가능한 한 산학연으로 구성해 연구성과가 산업화로 이어질 수 있게 구성했다. LG생명과학, 크리스탈지노믹스 등이 연구에 참여하고 있다.
◇허혈ㆍ골다공증 치료물질 등 성과
10년간의 연구로 유망한 신약후보물질도 여럿 발굴했다.
유 단장은 특히 허혈, 골다공증, 황반부종치료제에 기대를 많이 걸고 있다. "연구를 하다 보면 육감이 들 때가 있는데, 파프원(FAF-1)이라는 허헐치료제 물질이 동물실험에서도 아주 좋은 연구결과를 얻어 느낌이 좋다"고 말한다.한국화학연구원 연구팀이 주도하는 골다공증치료제는 줄기세포가 골세포로 분화하는 과정에서 관여하는 특정 단백질을 발굴해 이를 치료제로 개발하고 있다. 기존 치료제는 골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는 기능에 그친다면 이 물질은 새로운 골 형성을 촉진하는 기능도 동시에 한다.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남성 골다공증 치료에도 효과적일 것으로 기대된다. 이 물질은 현재 전임상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노인실명의 가장 큰 원인인 황반부변증 치료제는 현재 전임상 직전단계인데 효능이 우수해 기대를 모으고 있다. 지금까지는 이 병은 안구에 주사바늘을 찔러넣는 주사치료만 가능했는데 이 물질이 개발되면 먹는 약으로 치료가 가능하다.
사업단은 10년간 국내 56건, 국외 269건 등 총 325건의 논문을 발표하고, 250건의 특허를 출원했으며 98건의 특허를 등록했다. 또 부작용이 적은 새로운 당뇨병치료제 후보물질이 95억원에 기술 이전되는 등 총 9건, 130억원 이상의 기술이전을 이뤄냈다.
◇"대형 기술이전 사례 발굴하겠다"
유 단장은 올해와 내년 부지런히 해외출장을 계획하고 있다. 지금까지 이뤄낸 연구성과를 기술이전하기 위해서다. 다국적기업들은 초기 기술보다는 임상2상 정도까지 진행된 기술을 원하기 때문에 후보물질 단계에서 이전을 이뤄내는 게 쉽지는 않다. 그러나 국내에서 임상2상까지 할 제약회사를 찾는 게 어렵다. 신약연구 과정에서 겪는 구조적 딜레마다.
유 단장은 "신약개발은 네 사람이 함께 뛰는 릴레이와 같은 데 우리나라는 주자가 다 갖춰지지 못한 상황"이라고 말한다. △원리를 찾는 기초연구 △후보물질 설계ㆍ개발 △약효와 안전성을 검증하는 전임상 △임상연구하는 제약사 등 네 단계가 필요한데, 후보물질 개발 후 전임상과 초기임상을 하는 단계에 빈 구멍이 있다는 것. 미국에서는 연구결과를 검증해 다국적기업에 이전하는 3단계 역할에 특화된 기업들이 있다. 국내에서는 대부분의 국가사업은 2단계에서 끝나고 그 결과를 받아 전임상과 임상을 진행할 기업이 부족하다.
유 단장은 "임상2상은 묘목에 열매가 1개 정도 달린 상태라면 우리는 아직 묘목(후보물질) 단계여서 이전에 어려움이 많다"고 말한다. 그러나 세계 수준에서 받아들여지는 연구결과를 만들면 가장 파급효과가 크기 때문에 거기에 기대를 걸고 있다.
그는 "신약개발은 일당백이라는 마음가짐이나 정신력만으로 통하는 분야가 아니다"라며 "그 속성을 이해하고 걸맞은 지원과 평가시스템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사업단이 종료하더라도 연구결과와 노하우, 시스템은 어떤 식으로든 활용되도록 정책적 안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안경애기자 naturean@
프론티어연구성과지원센터ㆍ디지털타임스 공동기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