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은 고사하고 신문조차 없었던 시절, 위정자들은 무엇으로 민심을 파악했을까? 겉으론 `민본(民本)`이니 `여민동락(與民同樂)`이니 했지만, 왕정시대인 만큼 민심에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던 것일까?
유가의 핵심 경전인 <춘추좌전>을 보면, 백성은 임금을 섬기고 임금은 하늘을 섬기며 하늘은 백성을 섬긴다는 말이 나온다. 임금과 백성 양자 사이만 놓고 보면 임금에게 백성은 일방적으로 부려도 되는 존재처럼 보이지만, 실은 하늘을 매개로 임금과 백성은 서로가 서로를 섬기는 관계라는 것이다.
여기서 하늘은 자연을 내포한다. 인간은 자연을 통해 하늘의 뜻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오늘날 `스마트'해진 기계가 아무리 인간의 노동과 지능을 대신한다고 해도, 또 과학기술이 인간의 생명까지 공학적으로 처리하게 됐다고 해도, 인간의 삶은 하늘로 대변되는 자연을 떠나 영위될 수 없다. 그러니 하늘을 매개로 임금과 백성의 관계를 사유한 것은 탁견이라기보다는 지당하기 그지없는 기본이었다. 위정자들이 그저 시늉만 낸 게 아니라 열심을 내어 민심 파악에 나섰던 것도 같은 맥락에서 너무나도 당연한 기본이었다. 그런데 그들은 무엇으로 민심을 읽어냈던 것일까?
가장 널리 또 오랫동안 활용됐던 민심 파악 도구는 다름 아닌 민요였다. 기록에 의하면 지금부터 3천여 년 전인 서주시대에 이미 전담 관청을 두어 체계적으로 민요를 수집하여 민심의 동향을 파악했고, 이를 통해 정사의 잘잘못을 바로잡았다고 한다. 그들에겐 민요가 여론이었던 셈이다.
어떤 노래든 민초들의 입을 타고 민간에서 울려 퍼지면 민요로 거듭난다. 녹음기도 없던 시절, 한 곡의 노래가 사람에게서 사람으로 전해지기 위해선 몸과 마음이 그 노래와 공명해야 가능했다. 사람은, 예나 지금이나 참되다고 느껴지는 것에 마음을 열고 함께 진동한다. 하여 민요에는 참됨이 오롯이 담겨 있다. 때론 가사에 때론 곡조에 빼곡히 녹아든 진정은 삶에 지친 민초에 절로 스며들어 그들의 목소리가 된다. 그런 소리가 민간에 가득할 때 민요는 바람같이 일어 천지간에 유행한다. 그래서 민요는 풍요(風謠)라고도 불린다.
하늘은 백성을 섬기기에 바람에 민요를 실어 구중궁궐 저 깊숙한 데까지 흘러들어가 백성의 실정과 민심을 전한다. 위정자는 그렇게 바람결에 묻어오는 백성의 목소리를 듣고 정치의 잘잘못을 파악하였다. 그 소리에서 평안과 즐거움이 느껴지면 그들은 정치가 조화롭게 펼쳐졌다고 여겼다. 반면에 원망과 분노가 느껴지면 정치가 백성의 실정과 괴리되었다고 판단했으며, 애절하고 사무친 그리움이 느껴지면 백성이 더없는 곤궁함에 처했다고 보았다. <시경> 서문에 실려 있는 `치세의 소리', `난세의 소리', `망국의 소리'에 대한 설명이다.
세월호 참사로 인해 온 나라가 슬픔에 젖어 있다. 곳곳서 터져 나온 끊이지 않는 울음엔 어느덧 원망과 분노의 소리가 담기기 시작했고, 애절하고 사무친 그리움도 뚝뚝 묻어나고 있다. <시경> 서문의 작자가 들었다면, 그는 무엇을 읽어냈을까? 그런데 여기서 결코 망각해선 안 될 것이 있다. 우리는 왕조시대가 아니라 모든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민주주의시대에 살고 있다는 엄연한 사실이다. 무능하고 무책임한 정부나 정치인을 보면 온 강토에 가득한 소리에서 난세나 망국의 조짐마저 읽어낼 수도 있겠지만, 주권의 원천인 국민을 본다면 결코 그렇지만은 않다는 점이다.
그래서 우리는 억장이 무너지는 슬픔 속에서도 깨어 있어야 한다. 공자는 "슬퍼하되 몸과 맘이 상해서는 안 된다[哀而不傷]"고 경계했다. 슬픔만으로는 썩은 환부를 말끔히 도려내고 건강한 새살을 돋우기 어렵기 때문이다. 지금은 그렇게 정신 똑똑히 차리고 슬퍼해야 할 때인 것이다.
김월회 서울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유가의 핵심 경전인 <춘추좌전>을 보면, 백성은 임금을 섬기고 임금은 하늘을 섬기며 하늘은 백성을 섬긴다는 말이 나온다. 임금과 백성 양자 사이만 놓고 보면 임금에게 백성은 일방적으로 부려도 되는 존재처럼 보이지만, 실은 하늘을 매개로 임금과 백성은 서로가 서로를 섬기는 관계라는 것이다.
여기서 하늘은 자연을 내포한다. 인간은 자연을 통해 하늘의 뜻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오늘날 `스마트'해진 기계가 아무리 인간의 노동과 지능을 대신한다고 해도, 또 과학기술이 인간의 생명까지 공학적으로 처리하게 됐다고 해도, 인간의 삶은 하늘로 대변되는 자연을 떠나 영위될 수 없다. 그러니 하늘을 매개로 임금과 백성의 관계를 사유한 것은 탁견이라기보다는 지당하기 그지없는 기본이었다. 위정자들이 그저 시늉만 낸 게 아니라 열심을 내어 민심 파악에 나섰던 것도 같은 맥락에서 너무나도 당연한 기본이었다. 그런데 그들은 무엇으로 민심을 읽어냈던 것일까?
가장 널리 또 오랫동안 활용됐던 민심 파악 도구는 다름 아닌 민요였다. 기록에 의하면 지금부터 3천여 년 전인 서주시대에 이미 전담 관청을 두어 체계적으로 민요를 수집하여 민심의 동향을 파악했고, 이를 통해 정사의 잘잘못을 바로잡았다고 한다. 그들에겐 민요가 여론이었던 셈이다.
어떤 노래든 민초들의 입을 타고 민간에서 울려 퍼지면 민요로 거듭난다. 녹음기도 없던 시절, 한 곡의 노래가 사람에게서 사람으로 전해지기 위해선 몸과 마음이 그 노래와 공명해야 가능했다. 사람은, 예나 지금이나 참되다고 느껴지는 것에 마음을 열고 함께 진동한다. 하여 민요에는 참됨이 오롯이 담겨 있다. 때론 가사에 때론 곡조에 빼곡히 녹아든 진정은 삶에 지친 민초에 절로 스며들어 그들의 목소리가 된다. 그런 소리가 민간에 가득할 때 민요는 바람같이 일어 천지간에 유행한다. 그래서 민요는 풍요(風謠)라고도 불린다.
하늘은 백성을 섬기기에 바람에 민요를 실어 구중궁궐 저 깊숙한 데까지 흘러들어가 백성의 실정과 민심을 전한다. 위정자는 그렇게 바람결에 묻어오는 백성의 목소리를 듣고 정치의 잘잘못을 파악하였다. 그 소리에서 평안과 즐거움이 느껴지면 그들은 정치가 조화롭게 펼쳐졌다고 여겼다. 반면에 원망과 분노가 느껴지면 정치가 백성의 실정과 괴리되었다고 판단했으며, 애절하고 사무친 그리움이 느껴지면 백성이 더없는 곤궁함에 처했다고 보았다. <시경> 서문에 실려 있는 `치세의 소리', `난세의 소리', `망국의 소리'에 대한 설명이다.
세월호 참사로 인해 온 나라가 슬픔에 젖어 있다. 곳곳서 터져 나온 끊이지 않는 울음엔 어느덧 원망과 분노의 소리가 담기기 시작했고, 애절하고 사무친 그리움도 뚝뚝 묻어나고 있다. <시경> 서문의 작자가 들었다면, 그는 무엇을 읽어냈을까? 그런데 여기서 결코 망각해선 안 될 것이 있다. 우리는 왕조시대가 아니라 모든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민주주의시대에 살고 있다는 엄연한 사실이다. 무능하고 무책임한 정부나 정치인을 보면 온 강토에 가득한 소리에서 난세나 망국의 조짐마저 읽어낼 수도 있겠지만, 주권의 원천인 국민을 본다면 결코 그렇지만은 않다는 점이다.
그래서 우리는 억장이 무너지는 슬픔 속에서도 깨어 있어야 한다. 공자는 "슬퍼하되 몸과 맘이 상해서는 안 된다[哀而不傷]"고 경계했다. 슬픔만으로는 썩은 환부를 말끔히 도려내고 건강한 새살을 돋우기 어렵기 때문이다. 지금은 그렇게 정신 똑똑히 차리고 슬퍼해야 할 때인 것이다.
김월회 서울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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