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도 먼저 맞는 놈이 낫다'는 속담이 있다. 이왕 할 일을 먼저 하면 여유도 생기고 보기에도 좋다는 얘기다. 실제 일상에서 매를 먼저 맞는 것이 좋은 경우가 많다. 하지만 때론 최대한 미루는 것이 이득이 될 때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다. 내년 1월 제도 시행을 앞두고 정부와 기업계의 의견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정부는 국제 사회와 약속한 것이라며 제도를 밀어붙이고 있다. 기업은 굳이 먼저 시행할 이유가 없으니 시기를 미루자는 입장이다.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는 지구온난화의 주범인 온실가스를 배출할 수 있는 권리를 사고파는 제도다. 협약에 가입한 국가들이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의무적으로 줄여야 하고 이를 이행하지 못하면 탄소배출권을 사야 한다. 제조 시설이 많은 우리 입장에서는 온실가스 배출권을 사와야 공장을 가동할 수 있는 상황이 된다. 우리 기업들은 27조원어치를 사야 한다고 울상이다.
이 제도는 환경 문제의 주범인 이산화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공장을 억제하자는 지구촌 차원의 대비책이다. 하지만 유럽연합이 미국, 일본, 중국 등을 견제하기 위한 속내가 숨어 있다. 제조업의 경쟁력이 약해진 유럽은 미국이나 중국 등에 밀리자 일찌감치 친환경에서 생존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
물론 우리처럼 유럽 수출 비중이 높은 국가들은 수출을 위해 친환경 규제를 강화하는 것이 옳지만 이 제도는 수출과 직접적인 상관이 없다. RoHS(전기전자제품 유해물질 사용제한 지침)이나 REACH(신화학물질관리제도) 같이 유럽지역 수출을 위해 도입한 제도와 달리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는 오히려 수출경쟁력의 약화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RoHS 등은 원가에 부담은 되지만 수출 경쟁력은 높아진다. 반면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는 기업들의 부담만 키워 상품 경쟁력을 떨어뜨린다.
우리 경제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40%에 달한다. 기업들의 수출 경쟁력이 위축되면 경제의 활기를 떨어지고 국가 전체가 위기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우리처럼 제조업 비중이 높은 미국이나 중국, 일본이 이 제도 도입에 주저하거나 반대하는 이유다.
전 정권은 녹색성장이라는 국가 아젠더를 앞세우면서 경쟁국도 꺼리는 이 제도의 도입을 약속했다. 현 정부가 국제사회와의 약속을 저버리기 어려워하는 점은 이해된다.
하지만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온실가스 감축에 앞장서온 유럽연합에서는 경제위기로 인해 제도의 후퇴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세계 1위 온실가스 배출국인 중국은 겉으로만 감축에 나서고, 미국은 셰일가스 붐으로 배출가스를 줄일 수 있는 신재생에너지 투자를 축소하고 있다. 최근에는 이 제도의 태생인 교토의정서 체제가 흔들리며 2020년 이후 새롭게 제도를 논의하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우리 정부도 기업들의 반대에 직면하며 다소 완화된 자세를 보이고 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보완책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피력한 것이 대표적이다.
국내 기업들은 최근 원화 강세로 인한 수출경쟁력 약화와 신흥국 경기 침체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 상황에서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마저 강행된다면 타격을 받을 게 뻔하다. 전 정권에서 짠 틀을 고수할 것이 아니라 세계정세에 맞춰 유연한 자세를 가져야 한다. 정부는 이 제도를 밀어붙이기 전에 득실을 정확히 따져 봐야 한다. 때론 매도 나중에 맞는 것이 낫다.
이근형 산업부장
대표적인 것이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다. 내년 1월 제도 시행을 앞두고 정부와 기업계의 의견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정부는 국제 사회와 약속한 것이라며 제도를 밀어붙이고 있다. 기업은 굳이 먼저 시행할 이유가 없으니 시기를 미루자는 입장이다.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는 지구온난화의 주범인 온실가스를 배출할 수 있는 권리를 사고파는 제도다. 협약에 가입한 국가들이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의무적으로 줄여야 하고 이를 이행하지 못하면 탄소배출권을 사야 한다. 제조 시설이 많은 우리 입장에서는 온실가스 배출권을 사와야 공장을 가동할 수 있는 상황이 된다. 우리 기업들은 27조원어치를 사야 한다고 울상이다.
이 제도는 환경 문제의 주범인 이산화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공장을 억제하자는 지구촌 차원의 대비책이다. 하지만 유럽연합이 미국, 일본, 중국 등을 견제하기 위한 속내가 숨어 있다. 제조업의 경쟁력이 약해진 유럽은 미국이나 중국 등에 밀리자 일찌감치 친환경에서 생존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
물론 우리처럼 유럽 수출 비중이 높은 국가들은 수출을 위해 친환경 규제를 강화하는 것이 옳지만 이 제도는 수출과 직접적인 상관이 없다. RoHS(전기전자제품 유해물질 사용제한 지침)이나 REACH(신화학물질관리제도) 같이 유럽지역 수출을 위해 도입한 제도와 달리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는 오히려 수출경쟁력의 약화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RoHS 등은 원가에 부담은 되지만 수출 경쟁력은 높아진다. 반면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는 기업들의 부담만 키워 상품 경쟁력을 떨어뜨린다.
우리 경제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40%에 달한다. 기업들의 수출 경쟁력이 위축되면 경제의 활기를 떨어지고 국가 전체가 위기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우리처럼 제조업 비중이 높은 미국이나 중국, 일본이 이 제도 도입에 주저하거나 반대하는 이유다.
전 정권은 녹색성장이라는 국가 아젠더를 앞세우면서 경쟁국도 꺼리는 이 제도의 도입을 약속했다. 현 정부가 국제사회와의 약속을 저버리기 어려워하는 점은 이해된다.
하지만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온실가스 감축에 앞장서온 유럽연합에서는 경제위기로 인해 제도의 후퇴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세계 1위 온실가스 배출국인 중국은 겉으로만 감축에 나서고, 미국은 셰일가스 붐으로 배출가스를 줄일 수 있는 신재생에너지 투자를 축소하고 있다. 최근에는 이 제도의 태생인 교토의정서 체제가 흔들리며 2020년 이후 새롭게 제도를 논의하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우리 정부도 기업들의 반대에 직면하며 다소 완화된 자세를 보이고 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보완책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피력한 것이 대표적이다.
국내 기업들은 최근 원화 강세로 인한 수출경쟁력 약화와 신흥국 경기 침체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 상황에서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마저 강행된다면 타격을 받을 게 뻔하다. 전 정권에서 짠 틀을 고수할 것이 아니라 세계정세에 맞춰 유연한 자세를 가져야 한다. 정부는 이 제도를 밀어붙이기 전에 득실을 정확히 따져 봐야 한다. 때론 매도 나중에 맞는 것이 낫다.
이근형 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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