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정보 병원서만 취급" … 전자처방전 전송서비스 세계 추세
43억건, 4399만명분의 의료정보가 한낱 의료업체의 이익활동을 위해 불법 거래된 정황이 검찰 조사에 의해 드러나면서 국민의 정보 불안감이 높아가고 있다. 이런 정보유출 및 불법 거래는 의료정보보호에 대한 제도 개선을 외면하고 낡은 제도를 고수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26일 의료계와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번 정보유출 사태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낙후된 의료법과 제도다. 현행 의료법과 약사법상 환자정보의 외부유출은 엄격히 금지돼 있다. 의료법 제 19조, 약사법 제 87조에 따라 의료인이 진료 등 업무상 알게 된 환자의 비밀을 누설하게 해서는 안되며 의료법 제 21조에 따라 환자 기록을 제3자에게 열람하게 하거나 내용을 확인할 수 있게 해서는 안된다는 규정이 그것이다. 환자 정보의 민감성을 고려할 때 이는 당연한 조치로 여겨진다. 문제는 이 규정이 과거 의사가 '종이 차트'에 환자 정보를 기록하고, 약국에 종이 처방전을 반드시 들고가야만 했던 시절에 마련된 규정 그대로라는 점이다.
병원의 전자의무기록(EMR) 시스템 도입 등으로 병원 정보가 디지털화 됐고, 환자 정보 역시 생성, 수집, 관리가 모두 디지털화 된 지 오래다. 하지만 유독 정보의 유통만은 아날로그를 고집하는 것이 현행 법규다. 환자 정보를 필요로 하는 수요는 늘어나는데 낡은 법규가 이를 수용하지 않다보니 오히려 불법 유출과 거래를 조장한다는 것이다.
환자 정보를 차단하기만 하고 공유하지 않아 전 국민이 큰 불편을 겪고 국가 경제에도 심각한 타격을 미친 사례가 바로 지난 6월 벌어졌던 메르스 사태다. 한 의료계 전문가는 "의료기관 간 환자 정보가 공유되지 않아 메르스 감염 환자의 '의료 쇼핑'에 무방비로 당할 수 밖에 없었다"고 지적했다.
43억건 의료정보 유출 사고 역시 같은 맥락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김경환 법무법인 민후 대표변호사는 "혐의업체가 의료 정보를 불법적으로 수집, 판매한 것은 분명 죄질이 나쁘고 엄격한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하는 문제"라면서도 "의료정보 보호에 관한 정확한 규범이 없다보니 관련 업체들이 정보를 빼내 음성적으로 거래하고, 국내 제약사나 의료연구 기관은 이를 구입해 연구나 마케팅에 활용하는 '의료정보 그레이 마켓'이 오히려 조장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변호사는 "현재 의료정보에 대한 관리는 의료법 및 검역법,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보건의료기본법 등 개별 법률에서 정보 관리에 관한 규제가 일부 존재하는 수준"이라며 "디지털화 된 의료정보 공유 수요와 특수성을 반영할 수 있는 통합 의료정보보호 관련 규범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의료업계의 낡은 관행을 개선할 수 있는 다양한 ICT 융합기술이 개발됐지만 '불법'의 누명을 쓰고 사장된 사업도 많다. 대표적인 것이 이번 검찰 수사에서 '처방전 정보 불법 유출'로 기소된 SK텔레콤의 사례다. 이 회사의 전자처방전 전송 서비스는 환자가 처방전을 약국에 직접 들고 갈 필요없이 원하는 약국에 암호화된 전자문서로 전송해 곧바로 처방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한 서비스다. 회사 측은 처방전 분실로 인한 개인정보 유출 방지, 조제 받은 내역 누적 관리, 복용 약품의 복약안내와 상세정보 쉽게 확인, 궁금한 의약품 정보 검색 등을 장점으로 소개하고 있다. 하지만 의료법에선 이를 '정보 유출'로 규정한다. 환자 정보를 병원 내에서만 관리하도록 한 점, 환자의 동의를 받도록 한 점을 어겼다는 것이 정보유출 혐의의 근거다. LG유플러스가 2012년 개발했던 클라우드 HIS(병원정보시스템)도 마찬가지다. 이 서비스는 IDC(인터넷데이터센터) 중앙데이터 서버에 의료 시스템을 위탁 운영토록 한 서비스로 서버 등 장비구매 비용이 들지 않고 병원 내에 별도의 유지 보수 인력을 두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HIS 구축과 운영에 부담을 느끼는 중소병원에게 유용할 것으로 예상됐으나 역시 의료법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정보유출'이라는 유권해석을 받아 서비스를 잠정 중단한 상태다.
김 변호사는 "의료정보보호에 관한 규정은 비단 의료 정보에 대한 엄격한 통제와 관리 책임을 적시하는 것뿐 아니라 의료 정보의 효율적 활용을 위한 일종의 기준을 제시할 수 있다"면서 "의료정보의 디지털화를 통해 클라우드나 빅데이터 등을 활용한 혁신적인 의료 연구가 전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음에도 낡은 의료법으로 이를 모두 통제하기만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강은성·남도영기자 esther@
26일 의료계와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번 정보유출 사태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낙후된 의료법과 제도다. 현행 의료법과 약사법상 환자정보의 외부유출은 엄격히 금지돼 있다. 의료법 제 19조, 약사법 제 87조에 따라 의료인이 진료 등 업무상 알게 된 환자의 비밀을 누설하게 해서는 안되며 의료법 제 21조에 따라 환자 기록을 제3자에게 열람하게 하거나 내용을 확인할 수 있게 해서는 안된다는 규정이 그것이다. 환자 정보의 민감성을 고려할 때 이는 당연한 조치로 여겨진다. 문제는 이 규정이 과거 의사가 '종이 차트'에 환자 정보를 기록하고, 약국에 종이 처방전을 반드시 들고가야만 했던 시절에 마련된 규정 그대로라는 점이다.
병원의 전자의무기록(EMR) 시스템 도입 등으로 병원 정보가 디지털화 됐고, 환자 정보 역시 생성, 수집, 관리가 모두 디지털화 된 지 오래다. 하지만 유독 정보의 유통만은 아날로그를 고집하는 것이 현행 법규다. 환자 정보를 필요로 하는 수요는 늘어나는데 낡은 법규가 이를 수용하지 않다보니 오히려 불법 유출과 거래를 조장한다는 것이다.
환자 정보를 차단하기만 하고 공유하지 않아 전 국민이 큰 불편을 겪고 국가 경제에도 심각한 타격을 미친 사례가 바로 지난 6월 벌어졌던 메르스 사태다. 한 의료계 전문가는 "의료기관 간 환자 정보가 공유되지 않아 메르스 감염 환자의 '의료 쇼핑'에 무방비로 당할 수 밖에 없었다"고 지적했다.
43억건 의료정보 유출 사고 역시 같은 맥락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김경환 법무법인 민후 대표변호사는 "혐의업체가 의료 정보를 불법적으로 수집, 판매한 것은 분명 죄질이 나쁘고 엄격한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하는 문제"라면서도 "의료정보 보호에 관한 정확한 규범이 없다보니 관련 업체들이 정보를 빼내 음성적으로 거래하고, 국내 제약사나 의료연구 기관은 이를 구입해 연구나 마케팅에 활용하는 '의료정보 그레이 마켓'이 오히려 조장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변호사는 "현재 의료정보에 대한 관리는 의료법 및 검역법,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보건의료기본법 등 개별 법률에서 정보 관리에 관한 규제가 일부 존재하는 수준"이라며 "디지털화 된 의료정보 공유 수요와 특수성을 반영할 수 있는 통합 의료정보보호 관련 규범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의료업계의 낡은 관행을 개선할 수 있는 다양한 ICT 융합기술이 개발됐지만 '불법'의 누명을 쓰고 사장된 사업도 많다. 대표적인 것이 이번 검찰 수사에서 '처방전 정보 불법 유출'로 기소된 SK텔레콤의 사례다. 이 회사의 전자처방전 전송 서비스는 환자가 처방전을 약국에 직접 들고 갈 필요없이 원하는 약국에 암호화된 전자문서로 전송해 곧바로 처방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한 서비스다. 회사 측은 처방전 분실로 인한 개인정보 유출 방지, 조제 받은 내역 누적 관리, 복용 약품의 복약안내와 상세정보 쉽게 확인, 궁금한 의약품 정보 검색 등을 장점으로 소개하고 있다. 하지만 의료법에선 이를 '정보 유출'로 규정한다. 환자 정보를 병원 내에서만 관리하도록 한 점, 환자의 동의를 받도록 한 점을 어겼다는 것이 정보유출 혐의의 근거다. LG유플러스가 2012년 개발했던 클라우드 HIS(병원정보시스템)도 마찬가지다. 이 서비스는 IDC(인터넷데이터센터) 중앙데이터 서버에 의료 시스템을 위탁 운영토록 한 서비스로 서버 등 장비구매 비용이 들지 않고 병원 내에 별도의 유지 보수 인력을 두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HIS 구축과 운영에 부담을 느끼는 중소병원에게 유용할 것으로 예상됐으나 역시 의료법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정보유출'이라는 유권해석을 받아 서비스를 잠정 중단한 상태다.
김 변호사는 "의료정보보호에 관한 규정은 비단 의료 정보에 대한 엄격한 통제와 관리 책임을 적시하는 것뿐 아니라 의료 정보의 효율적 활용을 위한 일종의 기준을 제시할 수 있다"면서 "의료정보의 디지털화를 통해 클라우드나 빅데이터 등을 활용한 혁신적인 의료 연구가 전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음에도 낡은 의료법으로 이를 모두 통제하기만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강은성·남도영기자 esther@
[ 저작권자 ⓒ디지털타임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