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성물질 오염 '톈진항' 지역에 국한
다른 물질과 반응… 피해 범위 감소
다른 물질과 반응… 피해 범위 감소
![[이덕환의 과학세상] (527) 시안화 나트륨](http://contents.dt.co.kr/images/201508/2015082802101676650001[1].jpg "[이덕환의 과학세상] (527) 시안화 나트륨")
중국 톈진항의 참혹한 폭발 사고로 시안화나트륨(NaCN)에 대한 관심이 증폭됐다. 물류창고에 보관 중이던 700톤의 시안화나트륨 중 550톤이 환경으로 유출됐다. 사고현장에서 시안화나트륨이나 시안화수소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어설픈 물류창고에 보관 중이던 질산암모늄·질산칼륨·칼슘카바이드를 비롯한 40여 종의 독극물 3000여 톤이 모두 사고현장을 심각하게 오염시켰기 때문이다.
시안화나트륨은 과거 일본식으로 청산소다 또는 청화소다라고 불렀고, 대한화학회의 새로운 명명법으로는 사이안화소듐이라고 부르는 흰색 분말이다. 화학적으로는 식용 소금과 마찬가지로 물에 잘 녹는 이온성 염(鹽)이다. 독성과 부식성은 강하지만 인화성이나 폭발성은 없어서 화재·폭발의 원인이 될 수는 없는 물질이다.
시안화나트륨은 특히 산소 호흡을 하는 생물에게 강한 독성을 나타낸다. 이온성인 시안화나트륨이 물에 녹으면서 생기는 시안화 음이온이 화학적으로 맹독성인 일산화탄소와 비슷하고, 금속과 단단하게 결합해서 착이온을 만들기 때문이다. 미토콘드리아라는 세포기관에서 산소 호흡을 가능하게 해주는 사이토크롬 산화효소처럼 금속이 포함된 효소에 강하게 결합해서 기능을 마비시켜 버린다. 특히 중추신경계와 심장의 세포에 치명적인 독성을 나타낸다. 200밀리그램 정도만 섭취하면 순간적으로 사망에 이르게 된다.
시안화나트륨이 물에 녹으면 시안화수소가 만들어지지만 그 양은 많지 않다. 그러나 산성 물질이 투입되면 시안화수소 발생량이 크게 늘어나서 훨씬 더 심각한 문제가 된다. 시안화수소는 나치가 독가스로 사용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시안화나트륨과 시안화칼륨의 독성도 만만치 않다.
시안화나트륨·시안화칼륨·시안화수소는 모두 인체와 환경에 맹독성이지만 산업적으로는 매우 유용한 물질이다. 전 세계적으로 매년 50만톤 이상이 생산돼 산업용으로 소비된다. 금광석에서 금과 은을 회수하는 데 쓰고, 금속 도금 공정에도 사용한다. 의약품·농약·플라스틱을 생산하는 화학산업의 원료로도 다양하게 활용된다.
인간만 맹독성의 시안화 이온을 이용하는 것은 아니다. 박테리아·곰팡이·조류(藻類)도 생존과 번식을 위해 독성인 시안화 이온을 이용한다. 시안화 이온의 독성을 이용하는 식물도 있다. 매실·살구·사과·복숭아의 씨앗에는 상당한 양의 시안화 이온이 들어있어서 미생물에 의한 부패를 막아준다. 식용 녹말 생산에 사용하는 카사바에도 살균·살충을 위한 독성 시안화 당류가 들어있다.
멜라민이나 아크릴로나이트릴 같은 플라스틱과 의약품을 맹독성의 시안화 이온으로 만든다고 겁낼 이유는 없다. 시안화 이온이 금속이나 다른 분자와 화학적으로 결합하면 안정화돼 독성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한 번 사용해버린 총알은 살상력을 잃는 것과 마찬가지다.
톈진항 사고로 토양·지하수·대기는 물론 사고현장에 인접한 화이허강과 톈진항의 바닷물은 심각하게 오염되었기 때문에 보호 장비를 갖추지 않은 사람은 현장에 함부로 접근할 수 없을 것이 분명하다. 생화학 부대를 동원해서 사고현장을 수습하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다행히 사고현장이 화이허강 하류에 위치해 상류의 오염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
일반적으로 독성물질에 의한 오염은 사고현장에 가까운 지역에 한정적으로 나타난다. 시간이 지나면 확산에 의한 희석과 다른 물질과의 반응에 의해 자연적으로 독성이 제거되기 때문이다. 더욱이 독성이 강할수록 다른 물질과 쉽게 반응해서 안정화되기 때문에 피해 범위는 오히려 줄어들게 된다. 중금속이나 방사성 오염물질의 경우와는 사정이 다르다.
톈진에서 870킬로미터나 떨어진 우리가 폭발 사고로 유출된 독성물질에 의한 직접 피해를 걱정할 이유는 없다. 톈진에서 바람이 직접 불어오더라도 공기 중의 수분이나 먼지에 의해 안정화될 것이다. 사고현장 근처에는 오염을 걱정해야 할 농수산물도 없다. 사고 규모가 큰 것은 사실이지만 화산 폭발이나 산성비 같은 자연재해와는 비교할 수가 없다.
이덕환 서강대 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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