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형 산업부장
![[이근형 칼럼] 말뫼의 눈물과 송양지인](http://contents.dt.co.kr/images/201606/2016061302102232661001[1].jpg "[이근형 칼럼] 말뫼의 눈물과 송양지인")
어리석은 지도자를 꼽을 때 중국 춘추시대 송나라의 제후 양공을 든다. 제나라에 이어 패권을 쥘 기회를 잡은 양공은 초나라와의 싸움에서 강을 건너는 적군을 공격하는 것은 인의에 어긋난다며 뒤로 물러났다. 결국, 강을 무사히 건너온 적과 맞선 싸움에서 지고 상처까지 입은 양공은 이듬해 죽었다. 송나라는 춘추오패에 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날렸다. 여기에서 과도한 인정을 베풀어 스스로 큰 손해를 본다는 의미의 '송양지인(宋襄之仁)'이라는 사자성어가 나왔다.
2002년 스웨덴 국영방송은 단돈 1달러에 현대중공업에 팔려 바다로 멀리 사라지는 크레인의 모습을 장송곡과 함께 내보냈다. 한때 세계 최고의 조선 강국 스웨덴과 조선 도시 말뫼의 비참함을 보여준다. 조선업 구조 개편에 실패한 스웨덴은 이후 조선 산업에서 후진국으로 떨어졌다. 이 모습을 '말뫼의 눈물'로 표현하며 반면교사의 사례로 삼고 있다.
스웨덴으로부터 바통을 넘겨받은 한국 조선산업은 이후 10년 넘게 세계 최강으로 군림했다. 하지만 현재의 한국 조선업은 한국판 '말뫼의 눈물'에 직면해 있다.
중국에 쫓기고 일본에 밀리고 사면초가의 상태다. 시황도 좋지 않아 다시는 과거와 같은 전성기는 없을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는 생존 자체가 불가능하다. 조선 세계 1위 한국의 위상은 온데간데없고 생존의 갈림길에 서 있다.
조선업만이 아니다. 철강, 화학, 정유, 반도체, 디스플레이, 휴대전화 어느 하나 안심할 만한 산업이 없다. 산업 구조개편이니 구조조정이니 하는 말이 끊임없이 나오는 이유다.
다소 늦었다는 지적이 있지만, 정부와 채권단을 중심으로 산업 구조개편 논의가 한창이다. 시장보다는 정치논리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는 이들의 산업 개편방향에 대해서는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시장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는지조차 의심이 든다. 원인 진단은 제대로 하지 않고 치료만 하겠다고 덤비니 미덥지 않다.
특히 조선업 구조개편의 과정을 보면 답답할 수밖에 없다. 분식회계 의혹과 부실 대출 지적을 받고 있는 대우조선해양과 현대중공업·삼성중공업을 같은 잣대에서 평가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올바른 해법이 나올 수 없는 전제를 갖고 출발했기에 답도 틀리게 나올 가능성이 크다.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 부은 부실 덩어리에 다시 수조원을 쏟아 붇겠다니 '밑 빠진 독에 불 붓기'가 될지 걱정이다. 그것으로 끝나면 다행인데, 다른 기업들에까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우려도 있다.
전문가들은 한국의 대형 조선사 3곳이 살아남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고 진단하고 있다. 더구나 조선업 구조조정이 앞으로 있을 다른 산업 구조조정의 시금석이 된다는 점에서 확고한 자세가 필요하다.
발가락 끝 종기는 작지만 도려내야 한다. 시기를 놓치면 다리를 잘라야 할 수 있다. 생명을 잃을 수도 있다.
송 양공은 이길 기회가 있었지만 '측은지심' 때문에 스스로 기회를 차버렸다. 아프지만 기왕에 칼을 들었으면 확실하게 종기를 도려내야 한다. 그것이 더 많은 사람과 국가 경제를 위해서도 좋다. 구조조정 대상이 되면 피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들을 살리자고 모두를 벼랑 끝으로 내몰아서는 안 된다. 잘라버릴 것과 살릴 것을 구분해 때론 '냉정하게' 대처해야 우리나라가 '제2의 말뫼'로 전락해 피눈물을 흘리는 일을 막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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