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희동 이화여대 경영대학 교수
![[디지털 산책] 최순실 사태와 `이화여대 10월19일`](http://contents.dt.co.kr/images/201611/2016110902102251607002[1].jpg "[디지털 산책] 최순실 사태와 `이화여대 10월19일`")
이화여대 130년 역사상 최초의 사건이 발생했다. 10월 19일 2:00PM 최경희 전 총장이 임기 종료전사임을 발표한다. 당시 3:30PM 교수들의 첫 집회가 예정되어 있던 터라, 집회 참가를 위해 본부 건물 주변을 배회하던 본인은 200며명의 동료들과 행진을 하면서도 기쁨보다는 착잡함과 무거움으로 발걸음을 디디게 됐다. 과연 앞으로 이 사건은 어느 방향으로 진행될 것인가. 역사적인 혁명이나 전쟁이 우연한 작은 사건에서 비롯되어 전혀 뜻밖의 방향으로 튄 경우가 많듯이, 이 사건도 7월 30일 1600명 경찰의 교내 진입으로 촉발됐다. 지금까지 이 사건의 가장 중요한 전환 시점은 9월 12일 학생들의 지난 2년간 이화여대 집행부의 1939건 의혹 사건에 대한 민원 제기였다. 9월 11일 재단이사장의 총장 지지 성명 이후, 학생들이 다른 차원의 전략을 강구할 것이라는 선언과 더불어 지난 2년 동안의 의혹들을 정리하여 외부에 알린 것이다. 이 계기를 통해 최순실 모녀의 존재와 영향력이 비로소 사실로서 알려지게 되고, 10월 25일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에 까지 이른다. 7월 한 여름 학생들과의 대치 상황에서 추스리지 못한 순간의 판단 착오가 본인의 퇴진은 물론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에 이를 것이라고 누가 예상이나 했겠는가.
일단 탄력이 붙은 변화와 혁명의 요구는 또 다른 사건과 줄을 닿아 그 동안 쌓였던 분노가 한꺼번에 터지게 되어있다. 이제는 왜 이 지경까지 이르게 됐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어떻게 이 분노를 수습하고 어떤 결론이 미래를 위해 바람직한지에 대한 빠른 판단과 그를 실천할 용기가 필요할 뿐이다. 과거에 대한 집착과 사건의 발단에 대한 뒤 늦은 후회나 타성에 젖은 수습은 더욱 커다란 시련만을 초래할 뿐이다. 이 사건의 향후전개 방향은 속단하기는 어려우나, 그리 빠르게 정리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새 총장의 선출과 현 재단의 지배구조 개선은 지금까지 없던 첨예한 정치적 이해관계의 충돌로 상당 기간 우여곡절을 겪게 될 것이다.
이 사건은 역사적으로 상당히 중요한 의미와 영향을 남기게 될 것이다. 우선, 사회 곳곳에서 기존 권위에 대항하는 민주주의 열망을 자극할 수 있다. 지금까지 민주주의라는 용어는 중앙정부에 대해서나 쓰는 정치적 구호로 여겨졌으나, 오랜 권위를 지켜온 조직 및 집단 단위의 지배구조 개선 차원에서 민주주의 움직임이 본격화될 수 있다. 대학, 문화, 법조계 등 오랜 전통을 고수하던 집단의 모든 관습과 전통 하나하나가 시대적인 적절성에 대한 도전을 받게 될 것이다. 특히, 절대적 권력(Absolute Power)에 대한 견제 세력은 의도적으로라도 갖추려는 노력이 증가할 것이다. 둘째, 현대적 리더십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현 사회적 지도층에 포진되어 있는 베이이부머 세대는 권위적인 리더십을 보고 자랐고 그렇게 교육 받아왔다. 의사소통, 배려, 권한 위양, 서번트 리더십 등의 미사여구는 머리로만 이해했지 실천하기는 여전히 어려워한다. 리더는 항상 더 똑똑하고, 옳고, 정열적이고, 도덕적인가. 자신보다 다른 구성원이 더 똑똑할 수 있고, 자신이 틀릴 수도 있으며, 스스로 매너리즘에 빠질 수 있음을 시인하고 다른 구성원들의 도움을 청하고, 구성원들의 머리를 빌리는 것이 리더들에겐 그렇게 두려운 일인가. 셋째, 투명성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 됐다는 점이다. 투명성 저해의 가장 큰 원인은 주변 측근 몇 명만으로 주요 의사결정을 내리려는 비밀 주의와 특권 의식이다. 사방에 깔려있는 IT 기술과 서비스는 더 이상 그 누구도 비밀을 보장해주지 않는다. 설마라는 가정은 이제 사라지게 된다. 모든 조직의 건강도는 투명도가 좌우하게 될 것이다. 이제는 그 누구에게도 절대적인 권력은 허용되지 않을 것이며, 견제 시스템을 통한 투명성 확보 및 제고에 모든 조직이 심혈을 기울일 것이다. 그리고, 만약 잘못이나 오류가 발생 했을 경우, 신속하게 사과하고 수습하는 진정성이 필요하다. 넷째, 대학의 경쟁력에 이제는 지배구조(가버넌스)의 건전성이 중요한 요소로 평가 받아야 한다. 주요 언론의 대학 순위나 정부 기관의 대학 인증 제도에서 과연 대학의 지배구조 건전성을 평가 항목으로 포함하는지 의문이다. 지배구조가 건전하지 못한 대학은 결국 구성원의 자괴감과 패배의식으로 이어져, 스스로의 잠재력을 잠식할 뿐이다. 대학 지배구조 건전성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고, 이를 적극적으로 대학에 반영하려는 노력 또한 병행돼야 할 것이다.
결국 현 세대는 후배들을 육성해 더 나은 미래를 준비시키는 관리자일 뿐이라는 자각이 필요하다. 내 세대에 최고의 영광과 성과를 내려는 욕심은 오히려 후배들의 희생이나 복종을 요구할 뿐이다. 나에게 주어진 권한으로 어떻게 후배들을 지원하고 역량을 쌓도록 배려해야 하는지가 각자의 조직, 사회, 그리고 우리 국가를 재대로 관리하는 마음 가짐이 아닐까.이화여대의 10월 19일은 우리나라 현대사의 아주 중요한 사건으로 기억되기 바란다. 해방 이후 선진국으로 도입하는 이 시점에서 우리 사회의 모든 면을 되돌아 보게하는 아주 중요한 사건으로 기억되어야 한다. 이 교훈을 아직도 깨닫지 못한다면, 또 다른 이화여대는 사회 도처에서 스스로의 10월 19일을 맞이하게 될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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