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관 성균관대 철학과 교수
![[디지털인문학] VR과 광화문의 `실존현실`](http://contents.dt.co.kr/images/201611/2016111102102251607001[1].jpg "[디지털인문학] VR과 광화문의 `실존현실`")
최근 곳곳에서 가상현실(VR)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가상현실은 천문학적 시장가치를 생산해낼 차세대 혁신기술이 될 것이라는 기대 아래 세계적인 기업들의 전폭적인 투자를 유인하면서 빠른 속도로 개발되고 있다.
특히 페이스북은 개인들이 가상현실에서 일종의 공동체를 형성하여 그들의 사회적 삶을 가상현실 속으로 이주시킬 수 있는 소셜 가상현실 플랫폼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이로써 늘 가상현실의 문제점으로 지적되어온 가상현실 사용자의 사회적 고립 위험이 극복되고 새로운 사회적 참여가 가능해 진다고 한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여기서 마이클 소킨의 말을 경청할 필요가 있다. 그는 디즈니랜드를 도시적 분위기를 자아내지만 도시가 아닌 도시의 모사물이라고 묘사하고 있다. 거기에는 수천만의 방문객이 있지만 거주자는 없다는 것이다. 가상 현실 공동체도 같은 관점에서 조명될 수 있다. 가상현실 공동체에는 네트워크 접속을 통해 수시로 드나드는 무수한 방문객은 있지만 아무도 살지 않는다. 가상현실은 언제든지 우리가 원하면 떠날 수 있는 곳이다. 우리는 선택의 여지없이 이미 운명적으로 현실 속으로 태어나 거기서 살고 있지만 가상현실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우리는 가상현실에 여러 가지 장치를 통해 스스로 들어갔다가 언제든지 나올 수 있다. 여기서 가상 현실공동체가 갖고 있는 공동체성의 치명적 기만성이 노출된다. 그것은 바로 방문객만 있는 가상현실 공동체에는 같은 배를 탄 거주자의 공동 운명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가상공동체는 요컨대 운명공동체가 아니며 때문에 거기에서 공동의 역사가 있을 수 없다. 따라서 가상현실 공동체에서는 단지 실재 세계의 연대와 공동체성이 그 외적 이미지에 있어서만 모사(simulate)되고 있을 뿐 실현(realize)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가상현실은 사회 형성의 핵심인 운명공동체성과 역사성이 증발한 진공상태이다. 그리하여 결국 가상현실 공동체는 또 다른 사회, 즉 대안적인 사회(alternative society)가 아니라 사회 자체를 실종시킬 위험이 있다.
이러한 위험을 고려하면서 가상현실의 열렬한 옹호자였던 자론 래니어의 고백에 귀 기우릴 필요가 있다. 그는 왜 가상현실에 몰두했느냐는 질문에 자신이 처한 비참하고 우울한 현실을 잊기 위해서라고 답했다고 한다. 래니어의 고백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현재 우리 사회는 치열한 경쟁, 청년실업, 고령층 빈곤화, 계층 양극화, 자살률 1위 등으로 점철된 대단히 우울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청년들은 그들이 처한 이러한 현실을 헬조선이라고 비관하고 있다. 물론 여러 가지 계량적 경제지표를 근거로 우리 사회 현실은 헬조선이 아니라는 반박도 가능하다. 그러나 심각한 것은 현재의 우리 사회 현실이 청년들을 심리적 절망감 속에 몰아넣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가상현실 기술은 제론 래니어의 경우처럼 사용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가상현실 기술이 청년들에게 환영을 제공함으로써 현실의 우울감을 마비시키는 효과적 수단으로 그 시장가치를 발휘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 이는 마약이 진통제로 선용될 수도 있지만 현실의 문제로부터 도피하는 환각제로 악용되는 것과 유사한 상황이 아닐까. 물론 일부의 철학자들은 현실과 가상현실의 경계가 없다고 주장하며, 가상현실로 몰입해가는 삶을 정당화하기도 한다.
그러나 가상현실은 인간의 탄생과 죽음이 일어나는 실존적 삶의 현장이 아니다. 인간이 삶을 사는 실존적 공간은 니체 식으로 표현하면 인간이 피와 살로 살고 또 죽는 그 현실이다. 그리고 이러한 실존적 현실에서 인간들은 서로 관계하며 서로에게 책임을 지며 사회를 형성한다. 따라서 이러한 실존적 사회현실이 모순과 비리로 가득차고, 그러나 사회구성 하는 인간들이 이를 현실적으로 개선할 의지를 포기한 채 가상현실로 도피한다면, 인간이 몸으로 태어나 살고 죽는 이 실존적 현실은 더욱더 비극적으로 방치될 수밖에 없다. 이 비극이 혹시 가상현실 기술의 개발에 집중 투자하는 헬조선에서 우리 청년들에게 다가올 미래가 아닐까.
그러나 다행히도 지난 토요일 우리의 청년들은 가상현실이 아니라 그들이 살과 피로 살고 있는 그 실존적 현실로 나왔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들은 실존적 현실의 역사에 참여하며 역사가 새로운 가치를 담고 미래로 향할 수 있는 행동을 실천하기 시작한 것이다. 광화문 광장, 그곳은 아직 가상현실로 도피하지 않은 우리 미래세대가 공동의 역사적 운명을 지닌 이 사회의 일원으로서 몸과 행동으로 자신을 확인한 실존적 현실이 되었다. 거기서 그들은 게이머나 유저가 아니라 서로 결속하며 서로에 대해 책임지는 실존적 사회인이 되었다. 광화문 광장으로 돌아온 우리 청년들, 그들 때문에 헬조선에 희망의 빛이 보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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