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주 리 인터내셔널 로펌 변호사·변리사
![[디지털산책] `바이오 연구` 법제 정비 서둘러야](http://contents.dt.co.kr/images/201612/2016120702102251607001[1].jpg "[디지털산책] `바이오 연구` 법제 정비 서둘러야")
영화 '007 어나더 데이'에는 북한인 문대령이 아이슬란드 재벌인 구스타프 글레이브스를 납치하고 최첨단 의료기술인 유전자 기술을 이용해 인종까지 바꾸는 시술을 받아 구스타프 글레이브스로 살아가는 장면이 나온다. 2002년 개봉 당시에는 유전자 시술을 통해 인종까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는 설정은 두말할 여지 없는 사이언스 픽션이었고, 구스타프 글레이브스의 어설픈 북한말 구사가 그 픽션성 및 비현실성을 더욱 강조하는 듯이 보여, 007영화로서는 드물게 한국에서 그다지 흥행도 하지 못하고 내려진 영화로 기록됐다. 그런데 그 영화를 보는 도중 인상 깊었던 것은 유전자 시술설비를 갖추고 시술을 한 장소로 쿠바가 선택된 점이었다. 막연히 쿠바의 인간 대상 유전자 시술 관련 규제가 없거나 약하기 때문에 그렇게 설정됐나 보다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최근 개발된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CRISPER/CAS9) 기술은 종전의 세균, 식물, 동물에서의 유전자 수정뿐 아니라 인간 유전자의 수정을 혁명적으로 효율화, 간편화하는 데 성공했다는 점에서 '007 어나더 데이'의 설정이 현실화되는 듯한 느낌을 갖게 한다.
종전에 수천개의 새로운 인공유전자로 적절한 단백질을 만들어야 했던 징크핑거(Zinc Finger), 탈렌(Tallen) 기술과 달리 단백질보다 훨씬 작은 RNA가 정찰병 역할을 하고, 환자의 몸에서 면역세포를 체취한 뒤 이 면역세포의 유전자를 수정하고 다시 주입하는 방식으로 정확한 타게팅(Targetting)이 가능한 유전자 가위(CRISPER/CAS9) 기술은 그 실용성에 있어서 종전의 기술과 비교할 바 못되는 것으로 여겨진다. 두말할 것도 없이 전세계에서 수많은 관련 논문과 특허들이 쏟아지고 있다. 그 중 핵심적인 논문 및 특허들의 일부가 한국의 연구진에 의한 것이라는 것은 매우 고무적이고 자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분야에서 우리나라 연구진들이 미국의 최고 대학과 수위를 겨루는 연구성과 및 특허를 내고, 이에 더해 세포의 손상 없이 세포 밖에서 만들어진 크리스퍼를 세포 안으로 주입하는 거대분자 세포 이동에 관한 기술도 보유하고 있다고 하니, 당연히 미래 먹거리 중 하나인 바이오 산업의 미래에 대해 큰 기대를 가질만하다고 여겨진다.
그런데 문제는 우수한 연구진들이 세계가 인정하는 우수한 연구성과를 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법제 및 국민정서 환경이 우수 연구인력들이 마음껏 연구하고 연구성과를 비즈니스화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고 있지 못하다는 데 있다.
우선 유전자 가위기술의 인간 생체 적용 치료기술 측면에서 보면 중국에서는 이미 작년에 크리스퍼를 활용한 인간 수정란 유전체 편집결과를 발표했다는 보도가 있었으나, 우리나라는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에 의해 인간 생식세포에 대한 유전자 조작이 아예 법으로 금지돼 있어 연구조차도 불가능한 실정이다. 물론 유전자 조작, 특히 인간생체와 관련된 유전자 조작은 양날의 칼로서 아주 조심스럽게 다뤄져야 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한편으로는 유전자 치료를 통해 대에 대를 거듭해 고통스럽게 자손에게 유전되는 유전병을 치료할 수 있어 인류복지에 지대한 기여를 할 수 있음이 사실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사고나 예측하지 못한 결과로 인해 의도하지 않은 변형유전자가 영구히 유전되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양날의 칼인 유전자 가위 기술의 연구 및 응용을 어떤 절차를 통해 어떻게 통제해야 하는지에 관해 정확히 정립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통제방식의 정립을 위한 연구가 허용돼야 한다. 연구하지 않고는 어떻게 통제해야 하는지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 법제가 이러한 연구를 허용하지 않는다면 애써 개발한 바이오 관련 최첨단 기술뿐 아니라 우수한 인력들 자체도 모조리 외국에 빼앗겨 버리는 악순환이 반복될 것이다.
유전자 가위기술의 인간생체 적용과 별도로 GMO 적용 측면에서 볼 때, 미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들은 기존의 GMO 관련 규제가 적용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선언하고 있다. 유전자 가위기술에 있어서는 외부 유전자의 삽입이 없으며, 정확한 타게팅을 통한 유전자 수정으로 기존의 GMO 및 심지어 육종에 비해서도 훨씬 안전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신속히 간소화된 규제방안을 법제화하여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식품시장의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말할 것도 없이 이는 몇 안되는 미래 먹거리 시장이기 때문이다.
혁신은 기술의 혁신만에 의해 이뤄지지 않는다. 국민정서의 혁신 및 법제의 혁신이 동반돼야 한다. 그런데 국민정서의 혁신은 올바른 정보제공 및 커뮤니케이션에 의해 이뤄진다. 정부뿐 아니라 학계, 언론의 협력에 의해 우리나라처럼 교육수준이 높고 현명한 국민들에게 올바른 정보제공 및 커뮤니케이션이 이뤄진다면 국민정서는 발전적으로 형성될 수 있을 것이며, 이에 따라 시의에 맞는 합리적인 법제가 완비될 수 있을 것이다. '어나더 데이'에서 본 쿠바에서의 무시무시한 남용 사태를 막기 위해서라도 한국과 같은 바이오 연구 국가들의 선도적 연구 및 이를 위한 합리적이고 시의성 있는 법제 정비가 필요한 것이다.
[ 저작권자 ⓒ디지털타임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