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근 연세대 경영대학 교수
![[시론] `AI의사` 협진체계가 관건이다](http://contents.dt.co.kr/images/201701/2017012502102351607002[1].jpg "[시론] `AI의사` 협진체계가 관건이다")
새해 벽두부터 인공지능 의사에 대한 얘기로 의료계가 긴장하고 있다. 인천 길병원이 IBM의 인공지능시스템인 '왓슨 (Watson)'을 도입한 후 지난 2개월간 암환자 85명에 대한 진료결과를 발표했기 때문이다. 의료진의 처방과 왓슨의 처방이 다를 경우 대부분의 환자가 왓슨의 처방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환자들이 인간 의사보다 인공지능 의사를 더 신뢰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산업혁명 시대에 기계가 '블루칼라' 노동자들을 일자리에서 밀어냈듯이 앞으로는 의사와 같은 '화이트칼라' 전문가들도 인공지능에 의해 대체될 것이라는 공포감이 커지고 있다. 일부 의사들은 인공지능과 경쟁하기 위해서 여러 분야의 의사들이 협동으로 진료하는 집단지성방식을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지난 해 구글의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이 벌인 바둑 대국 이후 인공지능은 인간의 경쟁상대라는 인식이 강하게 뿌리내린 듯 하다. 하지만 의료분야에서 왓슨과 같은 인공지능은 인간 의사의 대결상대가 아니라 환자의 치료효과를 높여줄 협업대상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왓슨은 지난 5년간 의학학술지 300여 종과 의학교과서 200여 권, 1500만 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분량의 정형·비정형 의료데이터를 학습시킨 시스템이다.
인공지능은 인간이 처리할 수 없는 수많은 데이터를 빠른 속도로 검색하고 정리해 의사결정의 근거를 제시해 준다. 왓슨은 진료과정에서 인간 의사가 간과하거나 실수할 수 있는 문제점들을 찾아내는 조력자이지 결코 경쟁상대가 아니다. 산업혁명 초기, 공장용 기계인 굴착기가 개발됐을 때 힘깨나 쓰는 남자들이 굴착기와 땅을 파는 경쟁을 벌이다가 초죽음이 된 것과 같은 우를 다시 범해선 안된다. 우리는 자동차와 달리기 경쟁을 하지 않고 컴퓨터와 암산시합을 하지 않는다. 대신 이들을 조력자로 이용해 편리하게 공간을 이동하고 수많은 계산을 신속하게 처리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미래의 의사는 인공지능으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달라지는 것이다. 최종적인 의료적 의사 결정을 내릴 때 인공지능이 의사를 대체할 수 없고, 대체해서도 안 된다.
인공지능 의사의 등장은 의과대학 교육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단순암기는 컴퓨터가 훨씬 잘 할 수 있기 때문에 암기보다는 새로운 분야에 대한 연구 능력이나 창의성을 길러주는 교육이 강조되어야 한다. 컴퓨터를 활용할 수 있는 교육도 확대할 필요가 있는데, 인공지능이나 디지털 기술의 기초 원리를 알면 이를 의료분야에 활용하기가 훨씬 용이하기 때문이다. 최근에 하버드 의과대학에서는 '바이오메디컬 인포매틱스 학과'를 신설해 인공지능의 기초가 되는 기계학습의 원리를 가르치고 있다. 모든 의사가 인공지능 전문가가 될 필요는 없지만, 기본적인 프로그래밍이나, 통계학, 인공지능의 작동 원리 등은 의과대학생들이 배워야 할 새로운 지식이 됐다. 인공지능을 활용해 환자를 진료하는 협업과정 자체를 배우는 것도 바람직해 보인다. 미래의 의료 현장에서 인공지능을 활용해야만 한다면, 이를 이용해서 환자를 더 효과적으로 치료하고 돌볼 수 있는 방법을 배우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겠다.
미래에는 히포크라테스의 선서가 더욱 중요해질 것으로 보인다. 인공지능이 발전할수록 환자를 직접 대면해서 신체의 질병뿐만 아니라 마음의 병까지 낫게 해 주는 역할은 인간 의사의 몫이기 때문이다. '인간으로서' 환자를 대할 수 있는 인문학적 소양과 커뮤니케이션 역량 등이 의학 교육에서 더욱 강조되어야 하는 이유다. 인공지능 의사와 함께 일하는 4차 산업혁명시대는 인간 의사가 보다 더 인간다워지기를 요구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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