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용 6000억·15년 이상 기간 필요
폐기물 처분장 마련 등 서둘러야
폐기물 처분장 마련 등 서둘러야
![[이덕환의 과학세상] (606) 원전 폐로](http://contents.dt.co.kr/images/201706/2017062102101276650001[1].jpg "[이덕환의 과학세상] (606) 원전 폐로")
원전 시대를 열어주었던 고리원자력발전소 1호기가 전력 생산을 완전히 중단하고 영구정지 상태에 들어갔다. 오일쇼크 직후인 1977년에 가동을 시작한 587㎿ 규모의 고리 1호기는 지난 40년 동안 15만 기가와트시(GWh)의 전력을 생산해서 국민 생활과 산업발전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원전 수출의 꿈을 꿀 수 있도록 해준 것도 고리 1호기였다. 이제 세상이 달라졌다고 완전히 뜯어 없애버려야만 할 것인지에 대한 심각한 고민이 필요하다.
수명을 다한 원전을 해체하는 폐로는 새 원전을 건설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다. 6000억원 이상의 비용과 15년 이상의 기간이 필요하다. 1954년 구소련이 세계 최초로 오브닌스크 원전을 건설한 이후 지금까지 30여 개국에 건설된 611기의 상업용 원전 중 160기가 영구정지 됐지만 지금까지 폐로를 완료한 원전은 19기뿐이다.
섭씨 300도 이상으로 달아오른 원자로를 완전히 식힌 후에 핵연료와 강한 방사선에 노출되어 오염된 시설물을 제거하고, 원자로 등의 시설물을 절단·해체한다. 폐로 과정에서 수거한 핵연료와 방사성 폐기물을 안전한 처분장으로 옮겨서 저장해야 한다. 원전 부지의 환경도 복원시켜야 한다.
현재 수준으로 3조원 이상의 비용과 10년 이상의 노력으로 건설해야 하는 원전을 쉽게 포기할 수는 없다. 설계수명이 다하면 정밀진단과 대대적인 보수를 통해 수명을 연장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원전을 무한정 가동할 수는 없다. 세월이 흐르면 고장이 잦아지고, 사고의 가능성도 커질 수밖에 없다. 건설 당시에 설정했던 안전 기준이 사회적으로 더 이상 만족스럽지 못한 경우도 생기고, 건설 이후 새로 개발된 기술을 적용할 수 없는 경우도 생긴다.
원전의 폐로는 숙명과도 같은 일이다. 전 세계적으로 2030년대까지 설계수명을 다하는 원전이 무려 499기에 이를 것이라고 한다. 우리의 형편도 절박하다. 지금까지 건설한 24기의 원자로 중 8기가 2030년까지 설계수명을 마치게 된다.
고리 1호기의 폐로 작업이 순조롭게 진행될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려운 형편이다. 40년 전부터 예견됐던 폐로에 대한 우리의 준비가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정부와 원자력계의 심각한 정책적 실패라고 할 수밖에 없다. 2021년까지 폐로에 필요한 기술력을 완전히 갖출 수 있을 것이라는 원자력계의 주장은 신뢰하기 어렵다.
폐로에 꼭 필요한 고준위방사성폐기물 처분장을 마련하지 못한 것도 심각한 문제다. 2028년까지 부지를 선정하고, 2035년부터 중간저장 시설을 운영할 것이라는 정부의 계획도 현실적이라고 할 수 없다. 고리 1호기의 핵연료를 언제까지나 가동 중인 다른 원전의 임시 저장시설에 보관할 수는 없는 일이다.
고리 1호기의 폐로 결정은 새 정부의 '탈원전' 의지와도 밀접하게 연계돼 있다. 물론 원전 의존율이 30%에 이르는 우리에게 탈원전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아무도 가능성을 보장할 수 없는 친환경 신재생 에너지를 대안이라고 볼 수는 없다. 전력 생산은 꿈과 희망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함부로 무시할 수 없는 현실의 문제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위험하다는 이유만으로 탈원전을 선택할 수는 없다. 비행기도 매우 위험할 수 있지만 아무도 비행기를 포기하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 항공기의 정비와 운항에 대한 엄격한 규제와 관리로 위험을 극복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전 세계가 원전을 포기해버린 것도 아니다. 지금도 전 세계적으로 441기의 원전이 380기가와트의 전력을 생산하고 있다. 건설 중인 원전도 67기에 이른다. 기후변화당사국패널(IPCC)의 평가에 따르면, 원전은 현재 개발하고 있는 신재생 에너지 기술 중 이산화탄소를 가장 적게 배출하는 친환경 에너지다.
원전의 안전 운전을 책임지는 정부와 원자력계에 대한 사회적 신뢰 회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원전의 '규제'와 '진흥'을 모두 특정학과 출신들이 독점하는 폐쇄적인 인력 구조를 확실하게 개혁해야 한다. 원전의 안전 운전에도 '융합'과 '견제'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덕환 서강대 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 탄소문화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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