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규 성균관대 하이브리드 미래문화연구소 연구위원
![[디지털산책] `인간 vs AI`, 협력으로 가야 미래 있다](http://contents.dt.co.kr/images/201711/2017111402102251607002[1].jpg "[디지털산책] `인간 vs AI`, 협력으로 가야 미래 있다")
바라던 승전보였을 것이다. 인공지능(AI)과 인간이 벌인 스타크래프트 게임 대결 이야기다. 지난 대결의 패배로 인한 당혹감과 자괴감은 매우 컸으며, 이런 상황에서 또 다른 분야에서 열린 인공지능과 인간의 대결에 높은 관심이 쏟아지던 터였다. 마음 한 편에 자리했던 우려와 달리, 이 대결에서 거둔 인간의 승리는 지난 느낌들을 모두 지울 정도로 압도적인 것이었다. 항간의 평가처럼 '인공지능을 갖고 놀았다.' 분명 성공한 이벤트였다. 대결의 결과뿐 아니라, 미래 기술시대에 대한 어느 정도의 희망도 엿볼 수 있어 승리의 여운도 컸다. 창의적 게임 전략과 같이 기계가 따라오지 못할 인간의 우월한 능력을 재확인했다는 점에서, 어떻게 살아야하는지를 늘 고민해야 하는 우리에게 이 승리는 무척이나 반가운 일이었다.
그렇지만 한 편으로, 우려와 반가움의 교차가 '대결'로 인한 것이었음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게임이라는 색다른 영역에서 치러진 것이었지만, 실상 이 대결은 그리 색다른 이벤트가 아니었다. 잘 알려진 것처럼, 이에 앞서 딥블루와 게리 카스파로프의 체스 대결, 알파고와 이세돌, 알파고마스터와 커제의 바둑 대결 등 유사한 이벤트들이 이미 열렸던 터이다. 물론 다른 점도 있다. 아픈 기억이지만, 지난 대결에서 인간은 모두 패하고 말았다. 기계와 대결한 이들은 범인(凡人)인 우리가 범접할 수 없는 능력을 소유한 개인들이었지만, 그들이 한갓 개인은 아니었다. 우리 모두가 투영된 존재였기 때문이다. 이 대결들에서 그들의 패배는 곧 인간의 패배였으며, 어떤 다른 이가 했다면 그 결과가 달라질 것이라는 가정은 그저 무의미할 뿐이다.
패배는 그저 패배로 그치지 않았다. 당혹감의 다른 한 편에서, 우리는 이세돌의 패배에 대해 아낌없는 박수와 응원을 보냈다. 이는 커제와 인공지능 간의 대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 박수는 경의의 표현일 수는 있으나 패배의 인정은 결코 아니었다. 그것은 외려 패배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담백한 태도의 발로일 따름이었다. 이 같은 태도는 응당 또 다른 대결을 촉진하기 마련이다. 그 대결의 대상이 기계기술이었다는 점에서, 이 태도는 기술에 대한 통제의 욕구와도 매우 흡사하다. 통제의 욕구는 통제되지 않음에 기인하며, 그 욕구는 통제의 가능성에 반비례한다.
슈퍼컴퓨터와 인공지능으로 이어진 기술 발전의 지난 시간 속에서, 반복된 패배가 확인시켜 온 것은 기술에 대한 인간의 한계상황이었다. 기술은 줄곧 인간의 통제 대상으로 간주돼왔다. 이 통제의 가능 조건은 기술이 인간의 한계 내에 놓여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만, 문제는 이 조건이 충족될 수 없는 것이었다. 기술과 인간의 대결을 통해, 기술의 성장 수준이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고 있었던 것이 명확히 확인됐기 때문이다. 이로써 기술에 대한 통제의 가능성은 매우 의심스러운 것이 됐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 상황을 그저 수동적으로 수용하려 하지 않았다. 도리어 우리는 그 확인 작업을 반복해서 수행하고자 해왔다. 그것은 단순한 상황의 재인식 아니라, 그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끈질긴 도전의 연속이었다.
만일 이번 대결에서의 승리를 이 같은 도전의 연속적 과정으로 이해한다면, 이 승리는 하나의 역사적 사건으로도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대결에서도 우리는 한 게이머에게 우리 자신을 투영했으며, 이를 통해 기술에 대한 인간의 도전을 이어나갔다. 도전의 목표는 분명하다. 그것은 인간의 한계를 기술 너머에 갖다 둠으로써 기술에 대한 인간의 통제 가능성을 재확인하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점에서 우리 자신이 투영된 이번 대결에서의 승리는 그간 인간의 한계지점 밖에 있는 것처럼 보인 인공지능 기술을 인간의 한계 내로 돌려놓는 역사적 사건인 셈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해 기술을 통제하려는 욕구를 해소할 수 있을까?
아쉽게도 그 욕구의 해소는 어려워 보인다. 이번 대결에 나선 인공지능이 알파고나 알파고마스터 수준의 학습 기능을 갖추고 있지 못한 까닭에서다. 물론 이번의 승리를 폄훼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다. 하지만 그 기능이 보완된 상태의 대결에서 지금과 같은 승리를 거둘 것이라는 예상은 좀처럼 쉽지 않다. 이렇게 완전한 승리일 수 없다면, 우리의 욕구는 계속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는 인공지능이 넘볼 수 없는 인간 능력을 확인해 그것을 자신의 한계 내에 가둘 때까지 또 다른 대결을 반복해 갈 공산이 크다. 어떤 모습의 대결까지 상상할 수 있을까? 인공지능이 법률 서류를 처리하고 신문 기사도 작성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지금, 인공지능과 인간의 시 짓기 대결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무척 엉뚱해 보이는 이 같은 상상은 사실 '대결'을 전제하기에 가능한 것이다. 대결은 다름을 인정하는 태도 속에서는 이뤄지지 않는다. 인공지능과 인간의 여러 대결에서도 이는 마찬가지이다. 대결은 비교될 수 있음을 전제로 하며, 비교를 위해서는 공통의 기준이 설정돼야 한다. 우리는 이미 이 같은 경험을 꽤 오랫동안 해오고 있다. 효율성은 기계만이 아닌 인간에게도 적용되는 공통의 기준이 됐으며, 이로써 인간과 기계는 대결의 관계를 맺게 됐다. 이 대결 관계의 문제는 인간의 활동 역시 기계적 기능으로서 환원(reduction)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진정 엉뚱한 것은 이 관계 속에서 바라는 인간의 승리다. 지금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문제의 재(再)정의다. 차이의 지양 대신 다름의 인정이 요구되는 시대다. 그 인정에서 우리는 대결 대신 협력에 기초한 새로운 삶을 시작해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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