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함 연세대 명예교수
![[시론] 보수 혁신, 원론으로 돌아가야](http://contents.dt.co.kr/images/201807/2018072602102269660001[1].jpg "[시론] 보수 혁신, 원론으로 돌아가야")
자유한국당 난파선이 김병준 호로 새로운 출발을 시도하고 있다. 일단 시작은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가치와 이념을 재정립하고 그 기치 아래 당을 혁신하겠다는 것이다. 보수의 새로운 기치로 당을 재정비하겠다는 것은 그동안 계파 갈등으로 보수궤멸을 자초한 보수정당의 비전과 철학을 새롭게 하고 이를 지표로 하여 인사 및 제도를 개혁하겠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한국 보수는 그동안 상당한 수준에서 왜곡되고 시대착오적으로 수구화 돼있어 보수 가치를 새롭게 정립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보수 원류의 사상과 조류를 이해하고 그것을 어떻게 한국적 보수 이념으로 정착시킬 것인지 그리고 그것을 통해 새로운 보수를 결집시켜야 하는 과제는 지난하기만 하다. 더구나 사사로운 계파 권력과 사적 이해관계에 사로잡힌 한국당 국회의원들을 설득하는 일은 일반 보수 세력을 통합하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울 것이다.
한국의 보수주의는 민주화 이후 퇴화의 길을 걸어왔다. 산업화 시대까지는 권위주의적 보수주의가 나름대로 정권적 정통성을 부여했다. 소위 '한강의 기적'으로 일컬어지는 경제발전을 이룩함으로써 박정희 정권은 군사쿠데타의 비정통성을 극복하고 산업화 성과를 바탕으로 한국 역사의 중요한 획을 그었다. 현대 한국의 보수주의가 안정과 질서, 국가주도의 경제성장, 반공 애국을 주요 가치로 수용한 순간이었다.
국민의 기본권은 고속 성장과 반공의 명분 아래 제한되었지만 경제발전이 민주화의 원동력이 될 때까지는 용인되었다. 한국 보수는 독재 대 민주의 대결구도 속에서 진화하지 못하고 석화되었다.
한국의 보수주의는 이명박 정부 시절 신자유주의로 진화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었다. 그러나 기업 친화적 정책들은 재벌과 대기업 중심으로 전개되어 시장의 결실은 소수에게 편중 배분되었으며 부정부패는 사회 전반에 확산돼 보수주의의 부정적 측면만 확대 재생산되었다. 국민들은 정권교체 차원에서 박근혜 대통령에게 기대를 모았으나 박정희 대통령 시대의 국가주의에 천착해 복고적 정치에 몰두하는 대통령에 그쳤다.
사회경제 발전이 지체되는 가운데 대통령 비호세력들이 패권적 권력투쟁을 전개하며 불미스러운 공천 갈등을 벌이자 20대 총선에서 국민들은 혹독한 심판을 했다. 대통령은 국정농단 사태에 휘말리고 초유의 탄핵을 받을 때까지 보수 세력 어느 누구도 책임지려 하지 않았다. 심지어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 인용과 법원의 재판 과정을 부정하는 행위는 일반 보수 국민들마저도 등 돌리게 했다. 오로지 반공 애국과 색깔론 그리고 탄핵 반대만이 보수의 가치를 대변하게 되었다. 한국 보수는 보수주의의 수많은 긍정적 덕목을 상실하고 부정적이고 왜곡된 행태를 보여 왔다.
본래 보수주의는 인간이 이기적이며 불완전하다고 믿는다. 그래서 어떤 이념이나 자유 평등 정의와 같은 추상적 원칙에 집착하기보다는 역사 전통 그리고 현실적 경험과 지혜를 통해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따라서 특정 이념에 고착되지 않으며 굳이 이념이 있다면 실용주의다. 사회 공동체를 위계질서가 있는 유기체로 보기 때문에 사회 구성원들은 상호 책임과 의무를 완수해야 하고 권위를 존중한다. 보수주의자들에게 사유재산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개인의 안전을 위하고 정부로부터 자율성을 지니기 위해서 사유재산은 반드시 보호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 법치주의와 시장의 자율성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국 보수주의가 이상과 같은 보수주의의 원론적 가치에 근접한 적도 없지만 또 진보와 보수란 사회적 배경을 반영해서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에 굳이 그 가치를 따라야 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보수 이념이라 할지라도 사회발전에 따라서 변화 적응되어야만 그 사회에서 생명력 있는 비전과 철학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보수는 진보에 대한 적개심에서 벗어나 관용과 포용의 자세로 보수의 진정한 가치를 수용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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