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호 한국화학연구원 자문위원 前 원장
![[기고] 시대의 `집현전` 돼야 할 출연硏](http://contents.dt.co.kr/images/201809/2018092102102369640002[1].jpg "[기고] 시대의 `집현전` 돼야 할 출연硏")
첫째, 높은 위상이다. 좌의정, 우의정이 영선사, 예문관 대제학, 예조판서가 대제학, 종2품 제학이 겸임으로 맡고 실제 녹관으로 정3품 부제학이하 정 9품까지 녹관 경연관을 맡았다. 조회에서 같은 품계 중에서 가장 앞서는 반두가 되게 했고 궐위가 생기면 집현전 이조의 당상관과 의정부에서 후보자를 추천하였다. 집현전 학사는 궁궐 안에서 근무하고 아침저녁은 궁중에서 공급하였다.
둘째, 우수 인재를 유치하였다. 집현전 학사는 과거에 장원 급제자들을 중심으로 선발하고 근무지를 경복궁에 두었다. 학사들은 수시로 세종과 재상들을 만나 자신의 의견을 개진할 수 있었다. 방대한 자료를 집적한 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었다. 또한 자율적인 연구 분위기와 자기를 성장시킬 학습기회가 많다는 점은 집현전만의 큰 장점이었다. 출퇴근 시간에 대한 사헌부의 규찰요청을 세종이 거절하였는데 집현전 학사들은 사헌부 차원에서 관리할 대상이 아니라는 게 세종의 판단이었다. 한마디로 집현전은 일하고 싶은 직장이었다.
셋째, 집현전이 싱크탱크로 성장하는 걸림돌을 방지 하였다. 다양한 분야 전공자를 뽑아 오랜 기간 연구하게 했다. '힘 있는 자리'로 옮겨가려는 권력지향형 학사들에게 세종은 마음을 태만하게 갖지 말고 학술을 전업으로 하여 종신토록 종사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세종 사후 이런 내규가 무너지게 되고 집현전 학사들이 정치에 점차 관여하게 되었고 마침내 세조 2년에 사육신 사건에 연루되어 집현전이 문을 닫게 된다.
넷째, 세종과 집현전 학사들 사이의 깊은 신뢰가 있다. '인재에게 일을 맡겨서 성과를 책임지게' 하는 원칙에 따라 학사들을 믿고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또한 집현전 학사들 역시 세종을 신뢰하고 존중했다.
그렇다면 이 시대의 출연연구기관(출연(연))들이 어떻게 집현전이 될 수 있을까?
우선 출연연의 위상을 높여야한다. 대통령이 임명하는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이사장은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부의장을 겸임하고 과학기술장관회의에 참석해야한다. 기관장이 비전을 설정하고 리더십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출연연 기관장의 임기는 최소 5년으로 하고 연임이 가능해야 한다. 영년직, 석좌연구원, 특임연구원제의 도입, 임금 피크제, 정년, PBS 개선 등 우수인재를 모을 수 있는 방안을 정부와 출연(연)이 함께 마련한다. 출연(연)이 씽크탱크로 발전하는데 걸림돌을 막기 위해 연구개발 자율규제로의 전환확대, 자율적 감사시스템 구축과 출연(연)의 정치적 독립성이 유지되어야한다.
정부와 출연(연)의 상호 신뢰를 높여야한다. 출연(연)은 정부 탓하기보다 자성(自省)의 시간이 먼저 있어야 한다. 우수한 인력 확보와 역동적 연구활동을 위한 게임의 규칙을 스스로 만드는 등 자발적 혁신을 실천해야한다. 정부는 출연연을 통제하고 관리하려 하지 말고 믿고 지원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출연(연)과 긴밀한 소통을 통해 자율적 연구환경을 조성하는데 역점을 둬야 한다.
세종 즉위 600주년을 맞아 출연(연)의 새로운 출발을 위해 집현전 프로젝트를 시작하자. 세종의 리더십과 집현전을 살펴보고 출연(연)이 오늘날의 집현전이 되기 위한 제반조건과 적용가능성을 논의하는 것은 매우 의미가 크다.
집현전의 시스템을 실증적으로 적용함으로써 이 시대의 집현전으로서 출연(연)의 새로운 출발을 모색하자. 무엇보다 '출연(연)이 인재들이 가고 싶은 곳'이 되어야 하고 국가연구개발비를 효율적으로 쓰기 위한 규제정비와 연구자의 열정을 끌어내기 위한 국가R&D 혁신과 과학기술체제가 마련되어야한다. 출연(연)이 이 시대의 집현전을 되기 위한 집념과 용기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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