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탈원전 정책때문" 비난
'기관장 물갈이' 연구자 사기↓
'기관장 물갈이' 연구자 사기↓
국내 유일 원자력 종합 연구개발 기관인 한국원자력연구원 하재주 원장(사진)이 임기를 절반 가량 남겨둔 상황에서 돌연 사퇴했다.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따른 압박 때문이란 지적이 많다. 특히 원자력연구원 노조까지 정부의 탈원전 정책 때문이라고 정부를 비난하면서 논란이 확산될 전망이다.
14일 원자력연구원에 따르면 하 원장은 최근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과 연구원 주요 간부진에 자진 사퇴 의사를 밝힌 것으로 나타났다. NST는 한국원자력연구원장 임면권을 갖고 있다.
하재주 원장은 "혼신의 힘을 다해 기관을 위해 노력했지만 능력이 부족했다"면서 "많은 숙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떠나게 돼 조직 구성원들에게 미안한 마음 뿐"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문재인 정부 출범 직전인 지난해 3월 원장에 취임한 하 원장은 지난주부터 정부로부터 사퇴 압박을 받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25개 출연연 상위 기관인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원광연 이사장과도 만나 자신의 거취에 대해 상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원 이사장은 "하 원장과 만나기는 했지만, 사퇴 종용과 같은 거취 문제에 대한 얘기는 나누지 않았다"고 부인했다.
과학기술연구전문노조 원자력연구원 지부는 이날 성명을 내고 "정부는 명확한 사유나 공식적 의견 표명 없이 정무적 판단을 이유로 원장의 사퇴를 집요하게 강요했다"며 "이는 점차 현실화되는 탈원전 정책과 관련 연구원을 흔들어 국민의 목소리를 외면하기 위한 시도"라고 정부를 비난했다. 노조는 이어 "문재인 정부는 여야정 국정상설협의체 합의문을 준수해 국가와 국민을 위해 안전하고 평화적으로 원자력에너지를 이용할 수 있도록 모든 역량을 다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 원장은 취임 이후 방사성폐기물 무단 폐기, '하나로' 장기간 가동 중지, 파이로프로세싱 및 소듐냉각고속로(SFR) 기술개발 논란 등 각종 현안과 사고에 대처하느라 제대로 된 기관 경영을 수행할 수 없었다. 특히 탈원전 정책과 충돌하면서 현 정부와 갈등을 빚어온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최근에는 국정감사 에서 각종 안전사고와 연구부정 행위까지 불거지면서 큰 곤혹을 치뤘다.
박근혜 정권 때 임명된 일부 출연연 기관장이 올 초 사퇴한 데 이어 하 원장까지 갑자기 물러나면서 대한민국 R&D(연구개발) 심장부인 대덕 연구단지 전체가 뒤숭숭한 상황이다. 나머지 연구기관장들도 "거취를 알아서 결정하라는 정부의 경고성 메시지 아니겠느냐"는 시각이다.
현장에서는 매번 '기관장 물갈이'가 반복되면서 가뜩이나 열악해져 가고 있는 R&D 생태계를 더 악화시키고, 연구자들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있다는 반응이다. 당장, 대덕연구단지내 출연연들은 하 원장의 중도 사퇴 불똥이 어디로 튈 지 노심초사하는 분위기다. 다음달 13일 임기가 끝나는 이상훈 ETRI 원장을 제외하곤 이광식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장, 곽병성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장, 박상열 한국표준과학연구원장, 박천홍 한국기계연구원장, 문길주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UST) 총장, 김두철 기초과학연구원(IBS) 원장 등 전 정권 때 선임된 기관장들의 임기가 아직 남아 있어 향후 이들의 거취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앞서 임기철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 원장, 조무제 한국연구재단 이사장, 신중호 한국지질자원연구원장 등이 정부의 감사나 감찰 등을 받고 중도 퇴진한 바 있다. 원자력연구원 관계자는 "원장 취임 이후 연구원을 둘러싼 각종 현안과 이슈에 대응하느라 부임 때 약속했던 국민 생명과 안전 중심의 선도형 연구개발을 해 보겠다는 꿈도 펼쳐 보이지 못한 채 그만 두게 돼 매우 안타깝다"고 말했다. 한편 하 원장의 이임식은 오는 20일 예정돼 있다.
대전=이준기기자 bongchu@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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