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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케스트라가 곧 교향악단은 아닙니다. 오케스트라의 역사는 오페라의 역사와 함께 합니다. 오페라가 탄생하기 전에도 교회나 궁정에 여러 악기들이 함께 모여 음악을 연주하는 관현악단이 있었지만 그것을 두고 오케스트라라고 부르지는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오페라 극장에서 무대 앞에 악단을 위해 마련한 자리를 오케스트라라고 했지만 나중에는 장소가 아니라 악단 자체를 오케스트라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다 결국에는 오페라 극장을 벗어나서도 그 이름이 널리 쓰이게 된 것입니다.오케스트라는 고대 그리스의 말입니다. 원형극장에서 연극을 공연할 때 코러스가 노래하고 춤출 수 있도록 무대 앞에 따로 마련한 반원형의 공간을 오케스트라라고 했습니다. 오늘날 합창단을 일컫는 코러스라는 말 역시 그 시대 연극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고대 그리스 연극에서 코러스는 극중에서 군중의 역할을 하는 무리로 무대에서 펼쳐지는 사건의 전후와 배경을 설명하거나 주인공이 처한 상황에 공감하여 그 감정을 대사와 외침으로, 혹은 노래와 춤으로 표현했습니다.
르네상스 시대 피렌체의 바르디 백작의 집에서는 날마다 문인, 예술가, 학자들이 모여 고대 그리스의 문헌을 연구하는 모임을 가졌는데 그들이 그리스 시대의 연극을 재현하고자 새롭게 만든 것이 오페라 역사의 시작입니다. 그렇게 1597년 세상에 처음 모습을 보인 최초의 오페라가 바로 '다프네'입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다프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리누치니가 대본을 쓰고 페리가 곡을 붙여 만들었습니다.
오케스트라의 역사
이처럼 고대 그리스의 연극을 되살려 무대에 올리고자 했던 것이 오페라의 시작이었으니 오케스트라나 코러스와 같은 그 시대의 용어를 오페라에 그대로 가져다 쓴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이름만 가져다 쓴 것이 아니라 고대 그리스의 연극에서 그랬던 것처럼 오페라에서도 점점 오케스트라와 코러스의 역할과 비중이 커져갔습니다. 오페라가 시작하기 전과 중간에 오케스트라가 따로 연주하는 서곡과 간주곡을 넣기 시작했고 그것이 점점 인기를 끌면서 점점 길어지는가 싶더니 훗날 오케스트라의 연주회가 생겼을 때 그것들만 따로 연주하는 일이 벌어지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오페라의 서곡은 교향곡 탄생에 있어 결정적인 계기가 됩니다.
18세기 유럽에서 일어난 변화는 오케스트라의 운명까지 바꾸어놓았습니다. 기술과 산업의 발전으로 경제적, 시간적 여유를 가지게 된 중산층과 시민 계급이 급격하게 늘어나면서 어떻게든 삶의 질을 높이려는 그들의 욕구가 공개연주회를 탄생시켰습니다. 어차피 왕족이나 귀족들처럼 음악가들을 고용해서 집에 두고 날마다 음악을 들을 수 있는 형편이 아니라면 미리 정한 시간과 장소에 음악가들을 불러 연주를 부탁하고 그들에게 지불할 대가와 여타 비용은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이 서로 나누어 부담을 줄이자는 생각이 공개연주회로 이어졌습니다.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공개연주회를 찾게 되면서 보다 많은 사람들을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을 따로 만들어야 했고 그렇게 넓어진 공간을 구석까지 채울 수 있을 만큼 큰 소리를 내는 대규모 악단과 음악이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연주회장, 즉 콘서트홀을 짓게 되었고 연주회를 위한 오케스트라를 따로 만들게 되었으며 교향곡이 중요하게 되었습니다 .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오케스트라의 이름에는 전에 없던 새로운 단어가 덧붙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날 우리가 들어서 아는 대부분 오케스트라의 이름 가운데서 찾을 수 있는 '심포니(Symphony)'와 '필하모니(Philharmony)'입니다.
심포니는 교향곡입니다. 심포니 오케스트라, 혹은 심포닉 오케스트라를 직역하면 교향곡 오케스트라이니 이것이 바로 교향악단입니다.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공개연주회가 자리 잡으면서 연주곡목 가운데는 교향곡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됩니다. 심포니 오케스트라라는 것은 교향곡을 전문으로 연주하는 오케스트라라는 것이고 연주회 전문 오케스트라라는 뜻입니다. 말하자면 오페라 극장이나 교회, 혹은 궁정의 오케스트라와는 다르다는 구별인 셈입니다.
필하모니의 어원
필하모니는 그리스어에서 비롯된 말로 음악을 사랑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필하모니 오케스트라, 혹은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직역하면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인 오케스트라가 됩니다. 아무리 공개연주회가 잘된다고 해도 오케스트라를 만들어 운영을 한다는 것은 무척이나 어렵고 힘든 일입니다. 많은 사람의 수고와 큰 비용은 물론이고 오랜 시간이 필요한 일이기에 진정 음악을 사랑하여 그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뜻을 모아야 가능한 일입니다. 그렇게 뜻을 함께 한 사람들의 모임을 '필하모닉 소사이어티(Philharmonic Society)', 즉 '음악애호가 협회'라 했으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음악애호가 협회가 만든 오케스트라라는 뜻입니다.
누구는 심포니를 앞세웠고 누구는 필하모니를 앞세웠지만 그 둘은 서로 다르지 않습니다. 오히려 서로가 서로를 품고 있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필하모니 오케스트라 역시 연주회를 전문으로 하는 오케스트라임에는 틀림이 없고 심포니 오케스트라라고 해서 음악을 사랑하는 여러 사람들의 정성과 헌신 없이 존재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결국 이들 오케스트라는 모두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함께 만들고 이끌어가는 연주회 전문 오케스트라인 셈입니다.
그래서 한 나라, 혹은 한 도시의 문화적 수준은 그 나라, 혹은 그 도시를 대표하는 오케스트라의 수준으로 가늠할 수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행위든 지식이든, 아니면 가치나 신념이든 사람이 만든 그 무엇이 바람직한 문화가 되려면 한 공동체를 이루고 사는 사람들 사이에 그것이 널리 공유되고 오래도록 전승되어야 합니다. 공개연주회의 시작은 음악을 널리 공유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그것을 보다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마음에서, 또 대대로 전하려는 마음에서 서로 마음과 힘을 보태어 오케스트라를 만들고 연주회장을 지어서 잘 가꾸었던 것입니다.
오케스트라를 떠나서 심포니와 필하모니는 그 말에 담긴 뜻만으로도 가슴이 뭉클합니다. 교향곡을 심포니라고 하지만 원래 이 말은 여러 다른 소리를 하나로 모은다는 뜻입니다. 하모니는 음악 이전에 조화라는 뜻이니 필하모니는 조화를 사랑하는 마음, 혹은 조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렇습니다. 음악은 조화입니다. 서로 전혀 다른 음색을 가진 여러 악기들의 소리가 어울려 조화를 이루는 것이 오케스트라입니다. 필하모니와 심포니를 붙여서 읽어봅니다. 조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여러 다른 의견과 주장을 서로가 보듬어서, 다르지만 하나인 듯 멋들어지게 어우러지는 참으로 아름다운 세상이 눈 앞에 보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정말로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글=홍승찬 (음악평론가,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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