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근 문화평론가
![[하재근의 족집게로 문화집기] `알라딘`의 여성주의](http://contents.dt.co.kr/images/201907/2019071702102269660001[1].jpg "[하재근의 족집게로 문화집기] `알라딘`의 여성주의")
램프의 요정 지니 역할에 윌 스미스가 캐스팅된 것과 함께 주인공 알라딘 역할에 신인인 메나 마수드가 캐스팅된 것에 영화팬들이 크게 실망했다. 특히 메나 마수드는 헐리우드 블록버스터 주인공치고는 존재감이 상당히 약해서 '알라딘'을 마치 B급 영화처럼 느껴지게 했다. B급 영화는 저예산으로 적당히 만든 일반적 오락영화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러니 영화에 대한 기대치가 낮아졌던 것이다.
그런데 여주인공 캐릭터가 예상 외로 부각되며 관객에게 깊은 인상을 심었다. 바로 알라딘이 사랑하는 자스민 공주다. 실사판 '알라딘'에서 자스민 공주는 스스로 술탄이 되려 할 정도로 주체적 의지를 드러낸다. 영화는 과거 애니메이션에 없던 새로운 싱글곡 '스피치리스'(Speechless)를 추가해 하이라이트 부분에 배치했는데, 노래를 부르는 주인공이 알라딘이 아닌 자스민 공주다. 자스민은 원래 남주인공이 사랑하는 미인 정도의 위상이었다. 하지만 이번 '알라딘'에선 주인공 알라딘을 밀어내고 자스민 공주가 중심에 섰다. 남주인공을 존재감이 강하지 않은 인물로 캐스팅한 것도 자스민 공주 위상 강화와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알라딘'에서 알라딘을 밀어내고 공주가 중심에 선 것은 헐리우드에서 최근 나타나는 여성주의 열풍과 무관하지 않다. 미투운동 후 전개된 여성주의 운동은 여성을 주체적이고 적극적인 캐릭터로 부각시킨다. 과거 헐리우드 블록버스터에서 여성은 흔히 남성 히어로가 온갖 고난을 이겨내고 마침내 위기를 해결한 후 획득하는 전리품 정도로 그려졌다. 헐리우드가 그런 관행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마블 '어벤져스' 시리즈에서 가장 강한 히어로로 올 상반기에 등장한 '캡틴 마블'도 여성이다. '슈퍼맨', '배트맨' 등이 속한 '저스티스 리그'를 만드는 DC는, TV 시리즈물에서 섹시미가 부각됐던 '원더우먼'을 강인한 전사 캐릭터로 재탄생시켰다. 하지만 '원더우먼'의 원래 캐릭터 성격상 비키니 수영복과 같은 의상을 피할 수 없었는데, '캡틴 마블'은 아예 노출이 없는 의상으로 한 걸음 더 나갔다. 배우도 흔히 블록버스터에 여주인공으로 나오는 전형적인 금발 미인형이 아닌 인물로 선택했다. 영화 속에서 캡틴 마블은 남성들의 억압 속에 자신의 힘을 봉인하고 살다 마침내 억압을 이겨내고 자유를 선택한다. 그러자 그녀의 잠재력이 폭발해 최강의 전사로 거듭난다. '알라딘'에서도 자스민 공주는 여성이 국가 중대사에 말을 해서도, 권력을 탐해서도 안 된다는 금기를 이겨내고 '스피치리스'를 부르며 목소리를 낸다. 페미니즘 운동과 함께 나타나는 여성들의 자각을 형상화한 것이다. '어벤져스:엔드게임'은 난전 중에 여성 히어로들이 뭉치는 씬을 내보내 페미니즘에 동참했다.
아카데미 영화상에도 이런 흐름이 나타난다. 아카데미상 수상자는 약 6,000명에 달하는 아카데미 위원들의 투표에 의해서 결정된다. 이 위원단이 백인 남성 위주라서 시상 결과에 영향을 미친다는 지적이 있어왔다. 올해엔 아카데미 위원 중 유색인종 비율이 38%로 증가했고, 여성 비율은 49%가 됐다. 그 때문인지 2019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10년 만에 여성이 감독상 후보에 올랐다. 미국 대중음악계를 대표하는 그래미상도 투표인단에 여성, 유색인종 비율을 늘렸고 2019 그래미 시상식에선 사회자와 오프닝 세리머니 출연자들을 모두 여성으로 배치했다.
이렇게 여성의 존재감이 강화되는 가운데 '알라딘'에서 자스민 공주가 알라딘을 밀어내기에 이른 것이다. 사실 이 영화에서 자스민의 위상 강화는 작위적이고 억지스러운 면이 있다. 그럼에도 자스민을 전면에 세울 만큼 헐리우드의 여성주의 열풍이 뜨거운 것이다. 부차적인 지위에 있었던 여성캐릭터에 상전벽해의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현실의 여권향상에도 영향을 미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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