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 국회' 논란을 낳았던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충돌을 주도했던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13일 검찰 수사가 시작된 지 두 달여 만에 검찰에 출석해 조사를 받았다.
패스트트랙 사건과 관련해 나 원내대표가 고발된 지 201일 만이자 함께 고발된 한국당 의원 60명 가운데는 처음이다. 한국당이 검찰 출석을 거부하면서 중단되다시피 했던 패스트트랙 수사가 나 원내대표 출석을 계기로 급물살을 탈 수 있을지 주목된다.
나 원내대표는 이날 오후 2시쯤 서울 남부지검에 출석했다. 나 원내대표는 이날 검찰 출석에 앞서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와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통한 권력을 장악하려는 여권의 무도함에 대해 역사는 똑똑히 기억하고 심판할 것"이라며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의회민주주의를 저와 한국당은 반드시 지켜내겠다"고 했다. 패스트트랙 처리 당시 채이배 바른미래당 의원의 감금을 지시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는 답하지 않고 검찰청 안으로 들어갔다.
나 원내대표는 지난 4월30일 선거제도 개혁안과 공수처 설치 법안, 검경수사권 조정 법안 등이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될 당시 야당의 물리력 행사를 지시하고, 회의 진행과 법안 접수 등을 방해한 혐의로 고발당했다. 특히 나 원내대표는 한국당 의원들에게 채 의원의 사법개혁특별위원회 참석을 막도록 채 의원을 의원실에 붙잡아두도록 지시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그러나 나 원내대표는 그동안 정기국회 일정 등을 이유로 검찰 출석을 미뤄왔으며, 한국당 의원들에게도 검찰 소환에 불응하도록 했다. 나 원내대표는 바른미래당이 사법개혁안에 반대하는 사개특위 소속 의원을 불법으로 사보임하고, 문희상 국회의장이 불법 사보임을 승인했다는 주장을 펴며 패스트트랙의 부당성을 명분으로 삼아 수사를 피해왔다. 이날 나 원내대표가 검찰에 출석한 것도 사실상 패스트트랙 충돌이 '불법을 저지하는 정당행위'였다는 기존 주장을 되풀이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나 원내대표는 지난 4일에도 무혐의를 주장하는 변호인 의견서를 검찰에 미리 제출한 바 있다. 또 내년 총선을 앞두고 검찰의 수사 칼날이 한국당을 죄어올 경우 패스트트랙 충돌을 진두지휘했던 원내대표로서 책임론을 피하기 어렵다는 압박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만희 한국당 원내대변인도 이날 논평을 내고 "현 정권이 자행한 패스트트랙 폭거는 명백한 불법이며, 그 절차는 물론 지정된 법안의 내용이 헌법에 어긋난다는 지적도 수차례 제기됐다"며 "그럼에도 나 원내대표가 검찰에 출석하는 것은 패스트트랙의 불법성을 알리는 동시에 책임질 일이 있다면 원내대표가 책임지겠다는 것을 분명히 하기 위한 것"이라고 책임감을 앞세웠다. 이 원내대변인은 이어 "현 정권의 패스트트랙은 당시 사개특위 위원이었던 국회의원의 명시적 반대를 묵살한 불법 사보임 강행과 게임의 룰인 선거제를 여야 합의 없이 일부 정치세력의 담합을 위한 거래 대상으로 전락시키는 등 헌법정신에 완전히 위배되는 것"이라며 "살아있는 권력에 빌붙어 잿밥이나 따내면 그만이라는 소수 야당들과, 이를 이용해 대통령의 무소불위 공수처를 만들려는 현 정권의 헌법 파괴, 민주주의 파괴에 맞선 한국당의 저항은 사법처리의 대상이 아니라, 훗날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를 지켜낸 뜻깊은 항거로 기록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나 원내대표의 검찰 출석이 한국당 의원들의 줄소환이나 줄조사로 이어질지는 불투명하다. 나 원내대표가 자신의 선에서 조사를 마무리 지어야 한다는 의사를 표명하고 있는 터라 또 다시 한국당 의원들의 검찰 출석을 막을 가능성도 있다. 앞서 황교안 한국당 대표가 자진 출석해 조사를 받았으나 황 대표는 사건에 직접 개입한 정황이 없어 수사대상으로 올라있지 않았기 때문에 참고인 조사 정도에 그쳤다.
한편 패스트트랙 충돌 사건으로 수사 대상에 오른 한국당 의원은 총 60명이며, 더불어민주당 40명, 바른미래당 6명, 정의당 3명, 문희상 국회의장 등 모두 110명에 달한다. 민주당을 비롯한 소수 야당 의원들은 대부분 조사를 받았다. 김미경기자 the13ook@dt.co.kr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가 13일 '패스트트랙 충돌 사건'과 관련해 서울남부지검에 출석하기에 앞서 취재진을 향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