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 제공
이성엽 한국데이터법정책학회장
"혁신산업 관련 정책이슈와 이해갈등이 있을 때마다 기업도 정부도 국회만 바라보고 있어서는 안 된다. 민간과 행정부의 자율성을 강화하고, 대통령이 힘을 실어주는 강력한 거버넌스를 구축해 국가 디지털·비대면 경제·사회 전략을 밀어붙여야 한다."
이성엽 한국데이터법정책학회장(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사진)은 2일 서울 중구 정보통신기획평가원 사무실에서 "정치가 지나치게 행정과 경제에 관여해 혁신경제와 디지털전환을 막고 있다"면서 "국회의 역할을 줄이고, 정부 역시 국가 비전을 제시하고 산업계를 지원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밝혔다.
행정학 석사, 법학 박사이면서 미국 변호사인 이 교수는 국내 대표적인 ICT 분야 법·제도 전문가로, 과기정통부 규제심사위원장과 방통위 인터넷상생발전협의회 위원을 맡고 있다. 93년부터 12년간 정보통신부와 국무조정실에서 재직하면서 통신·인터넷 정책을 담당했다. 이후 김앤장 미국변호사를 거쳐 대학으로 자리를 옮겼다. 대통령 직속 지식재산위원회 전문위원, 행안부 전자정부 민관협력포럼 위원, 금융위 혁신금융심사위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기술·산업 이슈가 지나치게 정치적으로 확대돼 민간의 활력을 저해해선 안 된다는 게 이 교수의 지적이다. 데이터·모빌리티·원격의료 등 미래 산업이 기업 경쟁력과 소비자 이익에 반하도록 설계돼선 안 된다는 것.
이 교수는 "코로나19를 계기로 온라인이 대세이자 일상이 됐다"면서 "IT와 온라인이 사회변화를 이끌고, 이를 기회로 기업들이 국내·외에서 성장하도록 국가 거버넌스부터 이해갈등 조정체계, 분야별 법·제도를 재설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원격의료·혁신 모빌리티·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등을 둘러싼 갈등을 조정하고 국가전략을 밀어붙이려면 대통령이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면서 "민간위원장이 이끄는 자문기구인 4차산업혁명위원회로는 한계가 있다"고 밝혔다. 특히 모빌리티 분야에서 겪은 전철을 되풀이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세계 최초로 상용화한 5G 서비스 위에 원격의료·자율차 등 혁신기술을 연결해 국내외 시장으로 나아가려면 산업간 협업질서가 필수"라면서 "포털과 통신사업 간 협력이 필요하고, 구글·넷플릭스 등 글로벌 기업이 막강한 힘을 가진 상황에서 국내 법제도와 정책이 국내 기업을 지원할 수 있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유럽은 GDPR(개인정보보호법), 디지털세 등을 통해 미국 거대 기업들을 견제하고, 넷플릭스를 방송사업에 포함시키는 한편 유럽에서 제작한 콘텐츠 비중을 30% 정도 확보하도록 규제하고 있다"면서 우리도 이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부연했다.
다만, 망이용료를 둘러싼 CP(콘텐츠제공사업자)와 ISP(통신사업자)간 갈등과 관련해선, CP가 성장한 만큼 사회적 책임을 더 지고, ISP와 대립보다는 협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게 이 교수의 의견이다.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와 관련해서는 별도의 법률 제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그는 "OTT는 전통적인 방송과 다르고 통신도 아닌 만큼 제3의 법을 마련하고, 추후 기술발전과 사회적 합의에 따라 방송통신법 체계로 편입하는 게 현실적"이라 면서 "공정경쟁이나 이용자 보호 차원에서 최소한의 사전·사후규제를 도입하되, 글로벌 OTT도 규제대상에 포함시켜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과거 IPTV가 방송법이나 통신법이 아닌 별개의 법률에 의해 탄생한 것과 유사한 방식이다.
데이터 3법과 관련해서는 "기업의 개인정보 비식별화 조치 절차에 대해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관리하겠다는 게 정부 계획인데, 가이드라인은 법적 근거가 없고 면책이 안 된다"면서 "과거 시민단체의 고발로 기업의 비식별화 시도가 중단된 사례를 재연하지 않으려면 가이드라인에 법적 추정력을 부여하고, 법 시행 1년 정도는 가이드라인을 따랐을 경우, 법적 책임을 안 지우는 유예기간을 두는 것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한 이 교수는 신용정보법에 비해 복잡하고 까다로운 개인정보법의 가명정보 결합절차를 개선하고, 개인정보보호위원회의 법 유권해석 기능을 대폭 확대해 기업의 우려를 해소해 줄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모빌리티와 원격의료 분야도 기술과 사회 변화에 맞는 유연한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는 게 이 교수의 지적이다.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개정으로 타다와 유사한 운송사업을 하려면 일정 기여금을 내고, 정해진 택시 대수 한도 내에서 택시가 줄어든 만큼 차량을 운영할 수 있다. 혁신산업을 과거 산업의 틀에 맞춘 것이다. 이 교수는 "경쟁을 통한 소비자 효용 확대가 어려워졌다"면서 "하위법령 작업 과정에서 보완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어 "원격의료는 그동안 의사들이 반대한 이유가 오진 가능성과 대형병원 쏠림 가능성이었던 만큼 이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면서 "팬데믹 상황에 원격의료가 임시 허용돼 효과가 증명됐듯이, 당뇨·고혈압 등 만성질환 재진을 비롯해 필요한 부분부터 제한적으로 도입하는 게 현실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안경애기자 naturean@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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