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 분석해 사업전략에 활용
언택트 시대 투자가치도 높아져
거대한 개방 데이터 도서관 구축
고객정보에 마케팅 툴 이용 가능
언택트 시대 투자가치도 높아져
거대한 개방 데이터 도서관 구축
고객정보에 마케팅 툴 이용 가능
아모레퍼시픽 제공
홍성봉 아모레퍼시픽 최고디지털기술책임자
"필요할 때 손에 쥐지 못 하는 데이터는 가지지 못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고객과 시장이 어디에 있든 수요와 변화를 실시간으로 읽어냄으로써, 데이터에서 새로운 사업과 성장 기회를 찾아내겠다."
국내 대표 화장품 기업인 아모레퍼시픽이 '데이터 기업'을 선언하고 나섰다. 전사적으로 데이터 전문조직을 구성하고 데이터 활용비전과 마스터플랜을 수립한 데 이어 영업 일선과 고객 접점에서 나오는 모든 데이터를 수집, 분석해 사업전략에 활용하기 시작했다.
클라우드 도입 등 디지털 혁신은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의 강한 의지 덕분이다. 회사는 전통적인 CIO(최고정보화책임자) 조직과 새로운 데이터·디지털혁신 조직을 결합한 CDO(최고디지털책임자) 부문을 만들고 전사적 혁신전략을 실행에 옮기고 있다.
최근 서울 용산구 본사에서 만난 홍성봉 아모레퍼시픽 CDTO(최고디지털기술책임자·상무)는 "CEO가 사내 ERP(전사적자원관리)에 쌓인 월간·주간 실적자료만 보며 경영하던 시대는 끝났다"면서 "세상이 생산자가 아닌 소비자 중심으로 바뀌고, 소비자가 온·오프라인 곳곳에서 매우 다양한 실시간 데이터를 만들어내는 시대에, 데이터를 제대로 모으고 관리하고 다스리는 '데이터 리터러시'(data literacy)를 갖추지 못한 기업은 살아남기 힘들어졌다"고 말했다.
매순간 쏟아지는 수많은 데이터에서 상황 변화와 의미를 재빨리 파악하고 목적에 맞게 활용하는 능력이 코로나19, 기후변화 같은 다중 리스크 시대에 기업의 필수 생존요건이라는 것이다.
홍 상무는 네이버, 스마일게이트 출신의 IT 전문가로, 지난 2018년 말 아모레퍼시픽에 합류해 데이터 전략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역시 네이버, 스마일게이트 출신인 박종만 CDO(디지털전략유닛장)가 전사 IT 전략과 데이터 혁신을 총괄한다.
아모레퍼시픽은 연구개발·제조·영업·고객관리 등 방대한 업무를 뒷받침하기 위해 800개가 넘는 IT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이중 제품 판매와 직접 연결되는 영업 관련 시스템에 쌓인 데이터만 80테라바이트(TB)가 넘는다. 그러나 각각의 애플리케이션과 데이터 운영·관리를 아웃소싱하다 보니 시스템별 데이터 구조나 운영방식이 제각각이고, 원하는 시점에 필요한 데이터를 확보하기 힘든 구조였다. 어디에 무슨 데이터가 어떤 형태로 있는지 파악하고 분석할 내부 조직도 없었다.
아모레퍼시픽은 이를 전면 개편, 내부 데이터 전문조직을 만들고 전사를 아우르는 데이터 플랫폼과 활용체계를 만드는 투자를 2018년부터 시작했다. CDO 조직에 약 190명, 이중 CDTO 조직에 80여 명이 포진해 변화를 이끌고 있다. 회사는 작년초 데이터 컨설팅·솔루션 기업인 엔코아를 파트너로 선정하고 데이터 관리 비전과 원칙, 프로세스, 아키텍처, 표준화, 모델링, 품질, 관리시스템, 조직별 R&R(역할과 책임)을 아우르는 데이터 거버넌스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이미 지난해에 1단계 사업을 마무리하고, 올해 2단계를 진행 중이다. 특히 이 과정에서 내부 데이터 아키텍트와 모델러 조직을 구성, 데이터 설계·표준화·모델링 작업을 외부에 맡기지 않고 자체 수행하는 체계를 갖췄다. 필요한 시점에 원하는 데이터를 적기에 분석해 실시간 의사결정을 내리는 기반을 확보한 것. 내년까지 큰 틀의 거버넌스 체계와 데이터 플랫폼을 완성하는 게 목표다. 먼저 영업 영역에 이를 적용해 영업 경쟁력을 업그레이드하고, 이어 R&D, SCM(공급망관리) 등으로 확장할 계획이다.
홍 상무는 "데이터는 매우 다루기 힘든 요물 같아서 잘 다루려면 많은 투자가 필요하고, 이를 비즈니스 가치와 연결하는 과정도 매우 어렵다. 이 때문에 성공한 기업이 많지 않다"면서 "그러나 흩어진 데이터를 자체적으로 분석하고 다루는 환경이 안 되면 데이터 기반 영업과 마케팅이 근본적으로 불가능한 시대가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데이터 활용에 성공하려면 조직이 데이터 리터러시(분석능력)를 갖고 하부 데이터에 대한 제어권을 직접 갖는 게 핵심"이라면서 "당장 필요한 마케팅 정보를 아웃소싱 기업에 의뢰해 2~3일 만에 받는 것과 이를 직접 분석해 한 시간 만에 얻는 것의 차이는 물리적 시간 차이가 아니라 '된다, 안 된다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과거에는 데이터에 투자해도 가성비가 제대로 안 나왔지만, 언택트·모바일·e커머스 시대가 되면서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는 물건이 됐다는 게 홍 상무의 판단이다. 그는 "급변하는 세상에서 서울에 사는 20대 후반 여성의 어제 구매행태를 알고 싶다거나, 지난번 마케팅 이벤트에 참여한 사람들의 이후 행동과 매출성과를 바로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면서 "궁극적으로는 데이터 전문조직 뿐만 아니라 현장의 영업, 마케팅, 생산자가 데이터를 직접 써서 의사결정과 업무에 활용하게 하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
이를 위해, 데이터가 잘 정리된 일종의 거대한 개방형 데이터 도서관을 만들었다. 영업, 고객 관련 전사 데이터를 모은 데이터 레이크도 구축했다. 개방형 도서관을 통해 현업 담당자들은 다양하게 구분된 고객정보, 영업 관련 데이터와 함께, 영업 및 마케팅 툴까지 이용할 수 있게 됐다.
홍 상무는 "데이터 전략의 핵심은 결국 이용자 손에 데이터를 쥐어 주는 것"이라면서 "올 연말 사내 데이터포털을 완성하고 현업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들을 양성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의지만 가지고 시작했는데, 전문인력 확보부터 조직 구성, 플랫폼 구축까지 성공적으로 해 왔다. 운이 좋았고 파트너도 잘 만났다"는 홍 상무는 "기존 데이터 외에 고객 피부상태 등 새로운 데이터까지 결합해 초개인화 서비스, 맞춤형 화장품 등 사업 진화를 뒷받침하겠다"고 강조했다.
안경애기자 naturean@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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