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필하모닉 상임지휘자 장윤성
서울대 음대 작곡·지휘 전공 빈에서 공부 마쳐
부천필 오랜 공석 깨고 2024년 5월까지 임기
2023년 부천아트센터 클래식 전용홀 등 선봬
"바그너의 작품 부천필과 함께 도전해보고파"
서울대 음대 작곡·지휘 전공 빈에서 공부 마쳐
부천필 오랜 공석 깨고 2024년 5월까지 임기
2023년 부천아트센터 클래식 전용홀 등 선봬
"바그너의 작품 부천필과 함께 도전해보고파"
![[객석] 부천필하모닉 새 항해의 돛을 들어 올리다](http://contents.dt.co.kr/images/202107/2021072302101919807001[1].jpg "[객석] 부천필하모닉 새 항해의 돛을 들어 올리다")
'풍문'을 멈추고 새 '풍랑'과 함께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 장윤성
오랜 공석의 침묵을 깨고 취임한 지휘자의 부천필 청사진
지난 4월 교향악축제에서 장윤성은 부천필과 오랜만에 호흡을 맞췄다. 리스트의 '마제파', 바버의 바이올린 협주곡(협연 에스더 유), 라흐마니노프의 교향곡 2번을 연주한 이 무대는 다른 악단과 구별되는 독특한 선곡에, 단단한 연주로 버무려진 시간이었다.
당시 객원지휘를 맡았던 장윤성이 지난 6월 부천필 상임지휘자로 취임했다. 초대 상임지휘자 서훈(1988), 제1대 상임지휘자 임헌정(1988~2014), 제2대 박영민(2015~2020)에 이은 제3대 상임지휘자이다.
장윤성(1963~)은 서울대 음악대학과 동대학원에서 각각 작곡과 지휘를 전공한 후 빈 국립음대에서 지휘를 공부했다. 그 시절 지휘자의 꿈을 꾼 이들은 대부분 유학지에 발을 내디딤으로써 제대로 된 지휘 공부를 시작할 수 있었다.
그는 유학 중이던 1993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제1회 프로코피예프 지휘자 콩쿠르에서 2위에 입상하며 본격적인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후 오사카 칼리지 오페라하우스 전임지휘자, 울산시향·창원시향·대전시향 상임지휘자, 군포프라임필의 전임지휘자 등을 역임하며 꾸준히 활동해왔다. 부천필에서 그의 임기는 6월 1일부터 2024년 5월 31일까지다.
악단의 재단 법인화가 화두고, 2023년에 준공될 부천아트센터도 앞둔 상황이기에 지난 여름부터 시작된 상임지휘자의 공석은 더욱 커 보이기만 했다. 물론 이러한 과제가 그가 풀어야 할 것들이라고 취임 보도자료 어느 곳에도 적혀 있진 않았다. 하지만 그는 이 많은 것을 안고 가야하는 입장이다. 그래서 자칫 '음악'보다 '행정'에 대해 더 물을 수 있는 인터뷰가 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묻지 않았다. 언제 어떻게 바뀔지 모를 국내 오케스트라 행정에, 그것도 취임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수장에게 항로 끝에 닿을 섬에 대한 풍경을 먼저 그려봐달라는 것은 우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다만 그가 가장 잘 그려낼 수 있는 음악 이야기로 부천필과의 밑그림을 보여달라고 했다. 그 안에는 행정적인 난제를 문제를 풀어낼 '정답'까지는 아니어도, 함께 할 단원과 관객의 마음을 움직일 어느 정도의 '해답'이 될 수는 있겠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교향악축제에서 부천필과 오랜만의 호흡이었다.
-"객원지휘를 가면 10분 만에 악단의 내력과 상황은 물론 어떤 지휘자와 함께 연주해왔을지도 파악된다. 그 뒤에는 내가 이 악단과 '어떤 음악'을 '어떻게' 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정리된다. 당시 부천필은 객원지휘자 체제였다. 장점도 있지만, 객원지휘자들과의 시간을 오래 갖게 되면 악단은 뭔지 모르게 경직된다. 그래서 단원들 사이에 음악적인 대화가 오가게 만들어 보이지 않는 벽을 허물고 싶었다. 교향악축제에서 선택한 곡들은 이러한 생각으로 선곡한 곡들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부천필을 바라보는 시선이 있다면?
-"대곡을 아우를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수의 정단원을 확보한 악단이다. 늘 함께 연습·연주하던 단원들이어서 그들이 일군 부천필 특유의 호흡이 살아 있다. 객원단원이 많은 악단에서는 느낄 수 없는 특징이다."
△특히 어떤 지점에서 이러한 점을 느꼇나?
-"모든 파트의 실력이 우수한데, 그중에서도 현악군의 색채가 고급스럽고 중후하다. 라흐마니노프의 교향곡 2번은 이러한 조건이 갖춰져야 제대로 된 소리를 낼 수 있는 곡이다."
△그렇다면 부천필과의 인상을 간단하게 정리한다면? "중후함과 생동감 넘치는 악단!"
◇음악의 변화가 곧 악단의 변화
장윤성의 취임연주회는 부천시민회관(6월 25일)과 서울 롯데콘서트홀(6월 30일)에서 진행된다. 협연자 없이 진행되는 이번 공연에는 1·2부를 교향곡으로만 채웠다. 생상스(1835~1921)의 프랑스적 색채가 펼쳐질 교향곡 3번 '오르간', 오페라 왕국으로만 인식되는 이탈리아의 숨은 교향곡을 보여줄 카셀라(1883~1947)의 교향곡 2번이다. 두 곡 모두 교향악단과 오르간이 함께 하는 곡이다. 오르간을 통해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음악가가 엮어지고, 잘 알려지지 않은 카셀라 작품의 미학을 발견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취임 연주회에 두 곡의 교향곡만 올리는 이유는 무엇인가?
-"나의 취임 연주회지만, 결국 주인공은 부천필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선곡한 두 곡이다."
△두 곡 모두 오르간이 들어가는데.
-"2023년에 준공될 부천아트센터는 부천필의 상주홀이다. 공공기관이 짓는 클래식 음악홀 최초로 파이프오르간이 설치된다. 그래서 앞으로 만들어나갈 오케스트라 사운드에 대한 결의를 담고 싶었다."
△카셀라의 교향곡 2번은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았다. 어떤 곡인가?
-"비장하게 시작하며, 5악장(Epilogo)은 단테의 '신곡'에서 모티프를 얻어 역경을 극복하고 구원을 향해 나아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새 항해를 위해 돛을 올리는 시간이다. 그 음악을 통해 부천필과의 새 항해와 새로운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다."
음악은 추상의 예술이다. 하지만 어떤 구체적인 상황과 맞물릴 때 음악은 그 안에 숨긴 메시지를 끄집어낸다. 지난 2015년, 법인화 과정의 내홍과 상처를 넘어 재도약을 하겠다는 의미에서 요엘 레비/KBS교향악단은 제700회 정기연주회에서 말러의 교향곡 2번을 올렸다. 작품의 부제 '부활'이 많은 것을 상징하고 대변한 시간이었다.
장윤성은 "음악은 추상예술이지만, 그 안에는 많은 스토리가 담겨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어떻게' 해석하고 지휘할지에 대한 고민도 중요하지만, '무엇을' 연주할지도 늘 고민한다.
창원시향 재직 시절이던 2004년, 그는 3월 통영국제음악제 폐막공연과 4월 서울 교향악축제에 쇤베르크 '구레의 노래'를 올림으로써 아시아초연이라는 기록에 중요한 획을 그었다. 이 기록은 지금도 창원시향의 연혁과 보도자료에 중요한 문구로 등장하곤 한다. 전임(前任) 군포프라임필과는 2017년부터 2019년까지 카셀라를 비롯하여 윌리엄 월튼(1902~1983), 에르네스트 블로흐(1880~1959) 작품들을 초연 시리즈로 이어나가기도 했다.
국내에 교향악단은 많지만, 연주곡목이 한정된 현주소에 그가 부천필과 함께 틔어놓을 숨구멍을 기대하는 이유다.
△새로운 곡을 준비할 적에 어떤 고민과 노력을 하는가?
-"교향악단의 내실과 환경, 음악적인 기준을 고려한다. 지휘자로서의 선곡과 선택도 중요하지만, 연주의 중심은 교향악단이다. 합의가 끝나면 음악 내에서 스토리를 찾기 위해 노력한다. 작곡가와 연관된 모든 정보가 도움이 된다. 작품도 중요하지만, 곡을 쓸 무렵 작곡가와 작품을 둘러싼 사회적 환경과 이슈도 중요한 자료가 된다."
△훌륭한 연주는 감동을 일으키는 기본 원칙이지만, 때로는 연주가 미흡했어도 훌륭한 선곡이 감동을 줄 때도 있다. 개인적으로 가장 아쉬울 때가 실험적인 정신으로 무장한 지휘자지만, 단원들과의 합의의 초점을 찾지 못해 흔할 정도의 유명곡으로만 시즌을 꾸릴 때이다. 그런 점에서, 앞서 말한 "중후함과 생동감을 겸비한 부천필"과 함께 하고 싶은 곡을 고른다면?
-"부천필은 1988년 창단 이후 업적을 많이 세운 악단이다. 지휘자로서의 의지도 중요하지만, 악단의 전통과 역사는 물론 현재의 제반 환경을 고려하며 선곡의 묘미를 발휘하는 게 중요하다. 지금은 정통 레퍼토리로 구축된 독일의 카테고리를 좀 넘어볼까 생각 중이다. 월튼·본 윌리엄스의 영국, 프로코피예프·스크리아빈 등의 러시아 색으로 말이다. 시벨리우스의 교향곡도 자주 연주되는 교향곡 1번·2번 말고 다른 교향곡으로 선회해볼까도 생각 중이다."
△모차르트·로시니·훔퍼딩크·도니체티·베르디·푸치니·비제는 물론 브리튼(1913~1976)의 '한여름밤의 꿈', 오네게르(1892~1955)의 '화형대 위의 잔다르크' 등 고전·현대 오페라 지휘도 여럿 맡았다. 오늘날 부천필은 콘서트 전문 오케스트라로 자리매김했지만, 여러 오페라를 이끌어온 본인의 경력을 토대로 오페라 오케스트라로의 확장을 생각해 본 적은 없나. 부천필은 말러로 키운 체력을 바탕으로 '바그너의 향연 시리즈'를 진행하고, '탄호이저'를 콘서트 버전으로 선보이기도 했는데.
-"콘서트홀 무대에서 조명을 받던 오케스트라가 오페라 극장의 어두운 피트로 들어가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먼저 단원들의 동의가 필요한 부분이다."
△그렇다면 오케스트라가 오페라 반주를 맡게 되면 오케스트라에 도움이 되는 이점은 무엇인가?
-"오페라는 언어가 함께 하는 음악이다. '도레미파솔라시'로 연주되는 소리의 텍스트도 중요하지만, 언어가 있는 음악과 함께 하는 경험도 단원들에겐 상당히 중요하다. 교향곡은 추상적인 음악이다. 그래서 지휘자는 이 음악에 스토리를 입히고, 구조를 만들어 관객에게 전달한다. 하지만 오페라에는 이러한 스토리적 감각이 내재되었기에 이러한 감성과 감각을 배울 수 있다."
△기회가 온다면 부천필과 함께 하고 싶은 오페라는 무엇인가?
-"바그너의 작품들이다. 이젠 우리의 음악가만으로도 바그너의 오페라를 제작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 '니벨룽의 반지'는 오페라든, 콘서트 버전이든 부천필과 함께 도전해보고 싶은 음악 중 하나다."
◇새 공간, 새 작품, 새 관계를 찾아서
2023년에 모습을 드러낼 부천아트센터는 클래식 전용홀(1,444석)과 다목적소극장(304석) 외에 전시실, 아카데미실, 편의시설 등을 갖춘다. 전용홀에는 오르간이 설치되고, 합창단석은 벤치형으로 설계될 예정이다.
△대외적으로는 '부천아트센터'로 알려졌지만, 음악계에선 '부천필하모닉 상주홀'로 알려져 있다. 새 둥지에 안착할 계획도 임기 중에 중요할텐데.
-"높은 수준을 지닌 오케스트라 전용홀이다. 부천의 예술가와 단체를 위한 공연장이지만, 부천필이 편안하고 자유롭게 오를 수 있는 기회가 잘 보장된 상주홀로 안착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전용홀이 생기면 계획도 많아질 것 같다.
-"지금은 일단 연습실 중간에 위치한 두 개의 거대한 벽이 최고의 난제다. 마치 처음부터 악단의 현악파트와 관악파트를 나누겠다는 듯, 두 벽이 두 파트를 정확히 가르고 있다. 솔직히 전용 홀도 기대되지만, 이러한 벽이 없는 연습실로 간다는 설렘도 있다. 부천아트센터는 공연 공간이기도 하지만, 부천필만의 녹음공간으로도 사용할 예정이다."
"음반에 어떤 곡을 담고 싶은가?"라고 물으니 펜데레츠키의 교향곡 5번이라 답한다. 한국 정부가 위촉한 이 곡은 1991~1992년에 걸쳐 작곡된 단악장 교향곡이다. 1995년 폴란드 크라쿠프에서 장윤성의 지휘로 초연되었다. 부제가 'KOREA'라서 펜데레츠키(1933~2005)를 친한파 작곡가로 회자할 때 늘 등장하는 곡이다.
△이 곡을 녹음하고 싶은 이유는 무엇인가?
-"사실 한국의 지휘자와 교향악단이 해외 공연에서 선보일 수 있는 동시대 음악은 매우 한정적이다. 러시아만 보아도 자국의 작품으로 문화적 깊이감을 자랑하지 않나. 부천필의 국제화를 위해서라도 이러한 곡의 녹음과 연주는 전략적으로 중요하다고 본다."
서울 외곽의 교향악단으로서 부천필이 일군 업적 중 하나가 국내 말러 연주사에 길이 남을 전곡 시리즈(1999~2003)였다면, 또 다른 하나는 해외 순회공연이다. 2014년 빈 무지크페라인, 프라하 스메타나홀, 뮌헨 헤라클레스홀에 올랐고, 2016년 프랑스 축제(La Folle Journee Festival), 2019년 베를린 필하모니와 쾰른 필하모니에서 공연을 갖기도 했다.
때마침 인터뷰 당시 국가원수는 오스트리아에 방문 중이었다. 장윤성은 오스트리아의 헤르베르트 빌리(1956~)가 작곡한 작품을 거론했다. 한국인의 정(情)을 소재로 한 곡이다. 원래 두다멜 지휘로 빈 필하모닉이 초연할 계획이었으나 코로나로 무산되었다고 한다. 빈 필의 초연 후, 그 곡을 부천필과 한국에서 선보여 부천필의 음악적 자원으로 끌어오는 게 그의 계획 중 하나다. 부천필이 세계 여러 작곡가와 만나는 교각을 놓는 게 그의 또 다른 목표인 것이다.
△고전곡이든, 현대곡이든 초연은 지휘자·단원·청중을 새로운 소리의 세계로 이끈다. 새로운 곡을 악단과 함께 할 때 좋은 연주를 만들어가기 위한 본인만의 방식이 있다면 무엇인가?
-"연주회에 올릴 작품으로 결정되었을 때, 그 곡은 단지 아름다운 선율로만 구성되었다는 이유만 지니진 않는다. 낯선 분위기의 작품이라 할지라도 살펴보면 모두가 공감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작품성이 안에 담겨 있고, 그것이 지휘자·단원·청중의 음악적 공감대를 형성한다. 그래서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요소가 있는지, 보편적인 이해를 끌어낼 수 있는 곡인지 고민한다. 그렇게 선곡하고 나면 나머지는 작품의 힘이 끌어내는 것 같다."
그의 말처럼 '좋은 작품'이 끌어내는 설득과 납득의 힘은 곧 '좋은 오케스트라'의 조건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십 명의 음악가가 '좋은 소리'가 무엇인지를 알았을 때, 혹은 그 순간에 흠뻑 빠져본 적이 있을 때에 그들은 그때의 감정과 기분을 복기하기 위해서라도 소리의 끝과 각을 기분 좋게 맞춘다. 좋은 지휘자란 그 순간으로 단원들을 인도하고, 행복하게 몰아넣어 그 순간을 선사하는 벗이다. 장윤성은 그 순간이 음악을 통해 이뤄진다는 것을 알고 있다.
부천필이 항해의 돛을 새로 올리는 시간이다. 곳곳에서 악단을 둘러싸고 들려온 '풍문'에 사로잡히지 않고, 난항의 바다를 가로지를 '풍랑'이 그들에게 불어오기를 바랄 뿐이다.
글=송현민(음악평론가·편집장)·사진=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
![[객석] 부천필하모닉 새 항해의 돛을 들어 올리다](http://contents.dt.co.kr/images/202107/2021072302101919807001[2].jpg "[객석] 부천필하모닉 새 항해의 돛을 들어 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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