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병일 플루토미디어 대표
![[예병일 칼럼] 脫청와대, 전근대에서 현대 대의정치로](http://contents.dt.co.kr/images/202203/2022030702102269660001[1].jpg "[예병일 칼럼] 脫청와대, 전근대에서 현대 대의정치로")
청와대는 민주공화정 대한민국에 남아 있는 '궁궐'이다. 집무실 이전은 한국정치가 '사실상의 전근대적 왕정 문화'에서 비로소 '현대적 대의정치 문화'로 진입할 수 있는 변화의 기폭제가 될 수 있다. 그간 구중궁궐(九重宮闕) 청와대는 한국정치를 국민과 괴리시켰고 정치를 추락시켰으며 그 결과 국민과 대통령 모두를 불행하게 만들어왔다.
'외딴 섬' 청와대 건물은 한국정치를 왕정의 퇴행적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해온 마지막 걸림돌의 상징이다. '의욕 넘치던 직선 대통령'들은 하나 같이 구중심처(九重深處)로 걸어 들어가 '불행한 왕'이 되어 나왔다. 국민과 자주 만나겠다고 약속했지만 청와대에만 들어가면 측근들의 장막에 둘러싸여 모습을 보기 힘들어졌다. 혼밥을 한다느니 혼술을 했다느니, 씁쓸한 소문만 들려오곤 했다. 기자회견조차 꺼렸다. 신년 기자회견을 빼면 국민은 기껏해야 국무회의 모두발언이나 대변인의 발표를 통해 대통령의 생각을 들을 수 있었다. 선진 국가의 대통령 이나 총리의 모습이 아니라 후진국 독재자나 조선시대 왕과 비슷하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 존슨 영국 총리,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등은 하루가 멀다 하고 기자들 앞에 서서 현안에 대한 생각을 국민에게 이야기한다.
경제규모 세계 10위로 반도체, 스마트폰, 조선 등 주요 산업을 선도하는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 국민이 언제까지 이런 전근대적인 정치문화를 두고 보아야 하나. '변화의 계기'가 필요하다. 의지 부족이 원인이라면 '환경'을 바꿔 국민을 만나기 쉬운 구조로 만들 필요가 있다. 원래 인간의 의지란 약하니, 그게 대통령 개인을 위해서도 좋다. 경호 등의 문제 때문에 어렵다는 말은 이제 그만하자. 안 할 이유는 찾으려 하면 한 없이 나오는 게 세상 일이다.
핵심은 두 가지, 위치와 공간 배치다. 우선 집무실과 관저를 국민이 오가는 삶의 공간 안에 위치하게 해 심리적 거리를 줄여야 한다. 그래서 자의반 타의반 기자들이나 국민과 만나기 쉬운 환경으로 만들어야 한다. 한국도 트럼프나 바이든처럼 수시로 집무실 건물의 브리핑룸이나 이동 중 잠시 서서 기자들과 대화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공간 배치도 바꿔야 한다. 청와대는 집무실인 본관과 참모들이 근무하는 여민관이 무려 500m나 떨어져 있다. 차를 타거나 10분을 걸어가야 한다. 참모들을 소외시키는 건지 대통령을 유폐시키는 건지, 말이 안 되는 모습이다. 백악관처럼 집무실과 비서실이 같은 건물에 있는 게 당연하다. 영국 총리의 관저 겸 집무실(다우닝가 10번지)도 2, 3층에 관저가 있고, 1층으로 연결되어 붙어 있는 5층 건물에 직원들이 근무한다.
파격적으로, '블룸버그의 불펜'을 참고해 대통령이 직원들과 커다란 홀에서 같이 일하는 '대통령 워크존'을 만드는 건 어떤가.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은 넓은 홀을 직원 51명과 함께 사용했다. 블룸버그가 홀의 중앙에 직원과 같은 크기의 책상에 앉았고 부시장 등이 각각 1~2미터 정도 떨어져 옆에 앉아 일했다. 숙고할 시간이 필요하거나 보안이 요구되는 회의를 할 때는 별도의 전용 회의실에 가면 된다.
이번에도 준비 부족을 핑계로 일단 청와대에 들어간 뒤 이전을 추진한다면, 과거처럼 실패할 것이다. 국민은 '궁궐 속에 틀어박혀 있는 왕'을 원하지 않는다. 누가 되든지 새 대통령은 임기 첫날부터 청와대라 부르는 궁궐을 버려라. 국민 속 집무실과 관저에서 일하라.
민주공화정은 '불행한 왕'이 아니라 '멋진 현대 대의민주정의 정치인'을 원한다. 혹시 아나, 머지않아 한 서구의 총리처럼 '슈퍼에서 줄을 서 장을 보는 대통령'이 우연히 사진에 찍혀 미디어에 나와도 "그러려니" 하는 쿨한 선진 민주정치를 우리가 보게 될지. 대통령의 집무 환경이 불편하면 국민이 편해진다. 대통령도 5년은 불편하겠지만 퇴임 후가 편해진다.
[ 저작권자 ⓒ디지털타임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