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준모 고려대 교수, 유연한 R&D 플랫폼 필요
긴 호흡과 비선형적 R&D 파이프라인 구축해야
"미국의 양자기술은 40년 간, mRNA(메신저 리보핵산) 백신 개발은 30년 간 긴 호흡을 갖고 꾸준히 지원서 탄생한 것이다. 우리나라는 선형적인 낡은 R&D 기획 시스템을 버리고,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우리만의 독자적인 R&D 모델이 필요한 시점이다."
안준모 고려대 교수는 12일 한국과총이 서울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개최한 열린 '과학기술 중시 토론회-3'에서 불확실성을 효과적으로 줄여 나갈 수 있는 새롭고 유연한 'R&D 기획 플랫폼' 구축을 제시했다.
안 교수는 이날 '과학기술주권 시대를 위한 R&D 정책의 시스템적 전환'을 주제로 한 발표에서 "기술, 산업 간 융복합, 기초와 응용 간 통합적 R&D 등 혁신의 양상이 복잡하게 진화하고 있는데, 우리의 R&D 시스템은 초기 단계의 복잡성과 불확실성을 반영하지 못한 선형적 R&D 기획 시스템을 고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5∼10년을 내다보고 기획하는 대형 R&D의 경우 사전에 목표를 상세하게 수립하고, 이를 토대로 예산을 받는 시스템인 현재의 상황에서 도전적인 연구개발을 추진하기 힘들다는 주장이다.
그는 "초기단계 R&D일수록 목적과 방법 등을 수시로 변경해야 하는 유연한 기획과 추진체계가 요구된다"며 "현재의 단년도 예산체계와 선형적 기획시스템에선 이런 기민하고 유연한 R&D 기획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부 R&D 30조 시대를 맞아 개도국의 추격형 전략과 선진국의 퍼스트 무버 전략과 차별화되는 우리만의 R&D 모델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R&D 정책은 투입을 늘리는 '투입 부가성'을 유지하고 있다. 정부가 투입을 늘리면, 당연히 성과도 좋을 것이라는 믿음이 깔린 것이다. 하지만, 단순한 자원 투입 증가보다는 연구현장의 연구자 행동 변화를 촉발하는 '행동 부가성' 정책으로 R&D 시스템이 재정립돼야 한다는 게 안 교수의 설명이다.
일례로, 미국 양자기술은 미국 국립과학재단이 실리콘 기반 컴퓨팅의 한계를 예측하고, 차세대 컴퓨팅 기술개발에 대한 기초연구를 지난 40년 간 수행한 결과, 양자컴퓨팅의 가능성을 확인하고, 국가 차원에서 지속적으로 집중하고 있다.
mRNA 백신 개발도 미국 국립보건원(NIH)이 30년 전 백신 개발에 필요한 다양한 기초연구를 지원하는 과정에서 1989년 mRNA 백신 개발 가능성을 확인하고, 불확실성을 해소한 뒤 2012년 미국 국방고등연구계획(DARPA)이 모더나 등에 mRNA 백신 기술개발을 지원한 끝에 결실을 맺을 수 있었다.
안 교수는 "두 사례처럼 30∼40년에 걸친 긴 흐홉과 안정적인 R&D 파이프라인, 기획과 탐색을 반복하는 유연한 R&D 모델, 연구자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 등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앞으로 낡은 선형적 R&D 시스템에서 벗어나 다양한 R&D 모델을 추진하면서 동시에 긴 호흡으로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K-R&D 스마트 무버 플랫폼 구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편, 패널 토론에선 산학연 R&D 전문가들은 우리나라가 과학기술 추격국가에서 선도국가로 발돋움하기 위한 전략과 국가 과학기술 정책 방향 등을 제시했다.이준기기자 bongchu@dt.co.kr
안준모 고려대 교수가 12일 서울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열린 '과학기술 중시 토론회'에서 우리만의 새롭고 유연한 R&D 기획 시스템 구축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유튜브 캡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