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무편성 OTT·VOD 적용안돼
장애인 등 디지털 격차 더 키워
국내업체 비용·저작권 이유 더뎌
장애인 등 디지털 격차 더 키워
국내업체 비용·저작권 이유 더뎌
"코로나19를 계기로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와 인터넷 스트리밍이 디지털 콘텐츠 소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졌지만 소외계층을 위한 영상자막과 화면해설 서비스는 눈감고 있다. 이들이 디지털 격차를 키워 장애인들의 콘텐츠 소비 길이 막히면 사회활동 참여가 힘들어지고 더 큰 사회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지난달 박윤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2 차관 주재로 열린 현장 간담회에서 나온 지적이다.
미디어 소비가 텔레비전으로 대표되는 전통적인 미디어에서 OTT 중심으로 변화하면서 미디어 콘텐츠 시장의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지만 신흥 사업자들이 장애인이나 소외계층의 미디어 접근성에는 뒷짐을 지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가 적용하는 장애인 방송접근권 대상을 지상파, 종편 등 기존 방송사업자에서 OTT로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18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방송통신위원회는 지난달 수어방송의 의무 편성 비율을 현행 5%에서 7%로 확대하고 화면해설방송 재방송 비율을 축소해 화면해설방송이 실질적으로 확대되도록 하는 내용의 '장애인방송 편성 및 제공 등 장애인 방송접근권 보장에 관한 고시 일부개정안'을 입법예고 했다. 현재 규제심사 단계로, 최종안이 나오면 이르면 연내 시행될 예정이다. 그러나 현행 방송법이 규제하는 대상은 지상파·종편PP·보도PP로 제한돼 OTT 시대에 맞는 실효성 있는 가이드라인이 아니다. 비실시간 방송을 제공하는 OTT, VOD(주문형비디오)에는 의무 편성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에 따르면, 2020년 약 9935억원 규모였던 국내 OTT 시장은 2025년 1조9104억원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다. OTT가 '대세'로 떠오르고 있지만, OTT에서는 자막, 수어 서비스 등이 필수가 아니다 보니 OTT 시장이 커질수록 장애인들의 콘텐츠 접근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올해 방통위 국정감사에서 다뤄질 이슈 중 하나로 '국내 OTT의 배리어프리 활성화'를 꼽는다. 배리어프리는 장벽을 뜻하는 '배리어(Barrier)'와 자유로움을 뜻하는 '프리(Free)'가 합쳐진 말로, 장애인이나 고령자 등 사회적 약자도 편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물리적·제도적 장벽을 제거하자는 뜻이다. 콘텐츠 부문에서는 대사부터 음악, 효과음 등 모든 소리를 활자로 구현한 '폐쇄형 자막(CC)'이 대표적이다.
전문가들은 방통위가 새로운 미디어 환경 변화에 맞는 지원과 규제를 병행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장애인의 OTT 폐쇄형 자막 구매 비용을 지원하거나 배리어프리 콘텐츠 확대를 위해 서비스 제공 의무비율을 제시하는 등 실효성 있는 가이드라인을 정립해야 한다는 것.
국내와 달리 해외 선진국들은 배리어프리 콘텐츠 제작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글로벌 OTT 넷플릭스가 대표적이다. FCC(미국연방통신위원회)는 폐쇄형 자막 품질 규정도 마련해 이를 위반할 경우 최소 10만 달러, 최대 100만 달러의 벌금을 지불하도록 하고 있다.
넷플릭스에서 자체 제작 오리지널 작품에 폐쇄형 자막과 화면 음성해설(AD) 등을 지원하는 이유다. 영국 또한 2003년 커뮤니케이션법을 통해 일정 비율 이상 프로그램에 장애인 지원 기능을 추가하도록 법제화했다. 2010년에는 VOD 등 신규 서비스에도 해당 규정을 도입하도록 법과 제도를 강화했다. 특히 방송통신 규제기구 오프콤(OFCOM)은 VOD도 방송사와 유사한 책임을 져야 한다며 매년 VOD 업체들이 오프콤에 자막, 오디오 해설 서비스 등 장애인 접근성 개선 보고서를 제출토록 했다.
우리나라 OTT 기업들도 배리어프리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미흡한 상황이다. 티빙은 오리지널 콘텐츠와 CJ ENM 채널 콘텐츠에 배리어프리 한글 자막 서비스를 제공한다. 자막이 적용된 콘텐츠는 총 84개 작품으로, 에피소드 기준으로는 약 1200편이다. 왓챠는 현재 240여 편의 한글자막 콘텐츠를 지원한다. 이는 지난해 8월 말보다 70% 이상 늘어난 규모다. 웨이브는 청각 장애인을 지원하는 자막 서비스 34개를 제공한다. 웨이브 관계자는 "수어 및 화면 해설 도입도 검토 중"이라며 "자막 서비스 또한 추가 제작해 확대 지원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국내 OTT 업체의 배리어프리 콘텐츠 제공이 더딘 이유는 비용과 저작권 문제 때문이다. 현재 막대한 콘텐츠 투자가 이뤄지는 상황에서 자막을 입히려면 비용이 늘어나는 만큼 부담이 크다는 입장이다. 자체 제작 콘텐츠가 아닌 경우 저작권 문제도 있다.
한 OTT 업계 관계자는 "우리가 권한이 있는 오리지널 콘텐츠는 자막을 입히면 이후 계속 가지만 수급하는 콘텐츠는 비용을 들여 자막을 입혔는데 콘텐츠 계약이 끝나면 효용이 없어지니 현실적인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방통위 관계자는 "당장 장애인 접근권과 관련해 OTT를 규제하는 것은 비용이나 저작권 문제로 어려운 상황"이라며며 "배리어콘텐츠와 관련해 방송사 VOD에는 일부 지원을 하고 있지만 전체 지원에 대해서는 장기적으로 검토를 해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나인기자 silkni@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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