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금리와 집값 상승기에 자기 돈을 조금 얹어 큰 수익을 내던 갭 투자자들이 최근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 이들이 정반대의 금리·부동산상황에 몰린 최근에는 원금은 커녕 이자도 감당하지 못하는 최악에 몰리자 '부동산 투자 새옹지마'라는 말이 회자된다.
#서울에 빌라와 오피스텔 약 400채를 갭투자 방식으로 구입했던 A씨가 대표적인 사례다,그는 올해 중순 모든 주택을 세무당국에 압류당했다. 수십억원에 달하는 종합부동산세를 내지 못한 것.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세입자의 전세보증금에 약간의 돈을 더해 주택을 샀던 '갭투자'여서 집값이 전세보증금에 육박할 정도로 떨어져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자 '전세보증금 먹튀'로 낙인찍혀 도망다니는 채무자 신세로 전락했다.
#몇달 전 인천 미추홀구에서 아파트를 짓는 건설사 대표가 빌라와 오피스텔 수천 채를 갭투자했다가 이자를 감당하지 못한 대규모 '깡통전세' 사건이 발생했다. 무려 2700여 채를 사들였는데, 문제는 대출금리가 뛰고 집값이 떨어지면서 발생했다. 집이 팔리지 않아 은행 이자를 못갚았고, 세입자의 전세금을 돌려주지 못해 일부는 경매까지 넘어간 것. 게다가 그렇게 자금줄이 막히면서 해당 건설사가 짓는 아파트마저 건설을 중단해야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저금리 시기에 집값이 상승기였던 최근 몇년간 갭 투자를 통해 일명 '재미'를 봤던 이들의 곡소리가 커지고 있다. 2~3채가 아닌 몇백채 이상을 사들이며 자산가가 된 듯 했지만, 최근 금리인상과 집값하락의 이중고를 동시에 겪으면서 '부동산 투자 새옹지마'란 말을 실감하고 있다.
갭투자를 시도하다가 최근 7억원 이상을 날릴 상황에 처한 사례도 있다. 2021년 말 B씨는 서울 송파구 대단지인 헬리오시티 전용면적 84㎡를 22억원 초반에 매수했다. 당시 집값이 상승하던 추세라 30억원대 진입도 어렵지 않겠다는 기대감에 기존 세입자의 전세보증금 12억원과 현금 7억원, 대출 4억 5000만원으로 가까스로 매매 자금을 맞췄다. 시세 15억원을 초과한 아파트라 금융권을 가리지 않고 마이너스통장과 신용대출까지 동원해 어렵게 자금을 끌어모았다.
B씨는 최근 금리 상승의 폭풍을 직격탄으로 맞았다. 한달에 내야 할 이자만 300만원 수준으로 불어나면서 이자 부담에 지금이라도 팔아야 하나 고민이 커졌지만, 이미 취득세와 중개수수료 등으로 8000만원 이상 들어간데다 매매도 쉽지 않고 무엇보다 거래절벽 시기인지라 팔기도 쉽지 않은 상태다.
헬리오시티는 9510가구의 미니 신도시급 규모라 부동산 시장 하락기에도 선방할 것으로 예상됐던 단지 중 한 곳이다. 올해 이 단지의 전용 84㎡ 실거래가격은 지난 1월 23억 7000만원(25층 기준)으로 신고된 후 21억원대까지 내려가기도 했지만 꾸준히 22억원 선을 유지해왔다.
그러나 지난 10월 중순 전용 84㎡의 20억원대를 깨트린 실거래가 나오며 시장에 충격을 안겼다. 5층 매물이 17억 8500만원에 손바뀜된 것. 이런 분위기를 반영한 듯 11월 중순 현재 이 평형대의 최저 호가는 '갭투'와 '급매'를 강조하며 16억 9000만만원까지 떨어진 상태다.
헬리오시티 단지 내 상가의 한 공인중개사는 "올해 상반기까지만해도 단지 시세는 20억~22억선이 꾸준히 유지됐고, 8월에도 전용 84㎡를 22억원 선에 거래를 성사시켰다"면서 "이 단지에 국민평형(전용 84㎡)만 5000가구가 넘는데도 최근 급급매 1~2건 거래로 인해 시장 분위기에 찬물이 끼얹져 있는 상태"라고 전했다.
갭투자족의 비명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전세 시세 하락으로 인한 역전세난까지 겹쳤기 때문이다. 금리 상승 영향으로 전세보다 월세를 찾는 수요가 늘면서 새로운 전세입자를 구하기도 힘든 시기라 기존 세입자를 잡기 위해 시세 하락분만큼 전세보증금을 내주는 사례도 발생하고 있다.
16일 기준 헬리오시티의 전용 84㎡ 전세 최저 호가는 8억 3000만원이다. 만약 A씨의 집에서 12억원에 거주하고 있는 현 전세입자를 붙잡으려면 3억 7000만원을 내줘야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
권일 부동산인포 리서치팀장은 "일각에서 전세가율이 높아지면 투자금액이 적게 들어가기 때문에 '갭투자하기 좋다'고 알려져 있지만, 매매가격과 전세가격이 동반 하락하는 요즘같은 시기에는 '깡통전세' 위험만 더 커진다"며 "최근처럼 전세가격이 꾸준하게 하락했던 장이 없었기 때문에 갭투자를 과하게 했다면 충분히 이자 부담 등 난처한 상황에 빠지게 된다. 그런 매물들이 급급매로 나와서 시세를 더 떨어뜨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미연기자 enero20@dt.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