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실의 서가] `판소리`보다 재미있는 소리는 없다](http://contents.dt.co.kr/images/202212/2022122602102369061001[1].jpg "[논설실의 서가] `판소리`보다 재미있는 소리는 없다")
김흥식 지음 / 어젠다 펴냄
"도련님 춘향 옷을 벗기려 할 제 넘놀면서 어룬다. 만첩청산(萬疊靑山) 늙은 범이 살찐 암캐를 물어다 놓고 이는 빠져서 먹진 못하고 흐르릉 흐르릉 아웅 어루는듯, 북해 흑룡이 여의주를 물고 채운(彩雲) 간에 넘노는 듯, (중략) 춘향이 부끄러워 한편으로 잡치고 앉았을 제, 도련님 답답하여 가만히 살펴보니 얼굴이 복짐하여 구슬땀이 송실송실 앉았구나."
판소리 '춘향가' 중 춘향이와 이몽룡이 첫날 밤을 지내는 장면을 묘사한 대목이다. 표현이 비유적이고 다양하다. 직설적으로 묘사했다면 재미가 없었을 것이다. 판소리의 매력은 바로 이런 것이다.
판소리는 재미있다. 알아도 재미있고 몰라도 재미있다. 즐겁고 해학적이고 감동도 준다. 익살스럽고도 품위가 있는 해학은 순간적인 웃음만 주는 요즘의 개그와는 차원이 다른다. 이런 해학을 담은 판소리는 접해볼 기회가 별로 없고, 들어도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많아 즐기지 못할 뿐이다. 하지만 주위를 보면 판소리는 널려 있다. 흥보가의 '제비 몰러 나오는 대목'은 광고에 쓰였다. '흥보가 좋아라고'는 이미 랩음악으로 승화(?)된 상태다. 심청이 배를 타고 인당수로 가는 여정을 담은 '범피중류'(泛彼中流)는 윤대녕의 단편소설 '천지간'의 주요 모티브로 차용됐다.
책은 판소리의 이모저모를 알기 쉽게 풀어내어 좀 더 가깝게 느낄 수 있도록 도와준다. 춘향가, 심청가, 수궁가, 흥부가 등 판소리를 옛 이야기 들려주듯 쉽고 흥미진진하게 소개한다. 저자는 대학 입학 후 우연히 '육자배기'를 접한 후 우리 음악에 매료되어 판소리를 가까이 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저자는 소리꾼의 전통이 다시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 판소리 대중화를 위해 무슨 일이라도 하겠다고 결심했다. 그 결실로 이 책이 나온 것이다.
오래됐지만 새로운 예술,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소리와 판이 책에서 펼쳐진다. 책을 읽다보면 이전까지는 무슨 소리인지 전혀 안 들리던 내용이 다 들릴 것이다. 그 내용이 얼마나 우리 마음을 울리고 웃기는 지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박영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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