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가운데 국내 AI 반도체 스타트업 리벨리온이 국내 처음 '챗GPT'의 원천 기술인 '트랜스포머' 계열 자연어 처리기술을 지원하는 AI 반도체를 선보여 주목받고 있다. 지난해 6월 설계를 마치고 삼성전자 파운드리 5나노 극자외선 공정을 통해 생산된 AI 반도체칩 '아톰'(ATOM)은 이 회사의 두번째 '작품'이다. 아톰은 KT의 초거대 인공지능 서비스 '믿음' 경량화 모델에 탑재될 예정이다.
"맞아 죽어도 세계 시장에서 맞아 죽는다는 각오로 도전하고 있습니다. 많이 응원해 주십시오. 원래 '언더독' 응원이 훨씬 재미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유쾌한 언더독(Underdog·상대적 약자라는 뜻) 박성현 리벨리온 대표(38)의 말이다. 그는 얼마 전 윤석열 대통령이 참석한 금융위원회 새해 업무보고에 테크 관련 스타트업 중 유일하게 참가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리벨리온은 설계를 주력으로 하고 생산은 하지 않은 반도체 팹리스다. 자율주행, 클라우드 서버, 핀테크, 의료 등 분야별로 적합한 맞춤형 AI 반도체를 사용자 중심으로 설계한다. 지난 2020년 9월 설립 후 두 번의 테이프 아웃(Tape-Out·팹리스에서 제품 설계를 마치고 파운드리 회사로 설계도가 전달되는 것)을 마쳤다.
창업 1년 만에 내놓은 첫번째 AI칩은 '아이온'(ION)이었다. 미국 월가의 금융업체들을 위해 만든 파이낸스용 반도체로, 가로, 세로 크기가 각 2㎜에 불과한 초소형 칩이다. 업계 강자 인텔의 '고야'보다 처리 속도가 빠르고 전력 소비 효율은 높다. 대만의 TSMC가 아이온 제조를 맡았다.
글로벌 빅테크 기업에서 화려한 경력을 가졌을 것이란 예상과 달리 박 대표는 울산 출신으로 국내에서 대학까지 공부했다. 경남과학고를 2년 만에 마치고 카이스트를 전체 수석으로 졸업한 그는 미국 대학원 진학을 목표로 한 뒤 전자공학 명문인 버클리와 스탠포드, MIT 대학원의 합격증을 받아들었다. 그는 장학금까지 받고 MIT 유학길에 올랐다.
"공부를 아주 잘한 것도 아니었고 집안에 과학 관련 일을 하는 사람도 없는 평범한 지방 학생이었습니다. 하지만 수학은 잘했고, 잘하니까 재미를 붙였죠."
대학원에서 반도체 설계로 석,박사 학위를 받은 뒤 인텔연구소에서 사물인터넷(IoT)용 중앙처리장치(CPU)를 설계했으며, 이후 우주개발업체 스페이스X에서 인공위성용 반도체를 개발했다. 엔지니어로서는 이례적이지만 미국 대형 투자은행(IB) 모건스탠리에서 임원을 지내며 고빈도(High Frequency) 트레이딩 업무를 맡기도 했다.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알고 지내던 오진욱 기술총괄(CTO), 김효은 제품총괄(CPO) 등과 의기투합했다. 카이스트에서 그래픽처리장치(GPU) 설계로 박사 학위를 받은 김 CPO는 앞서 의료기술 스타트업 루닛에서 CTO를 지냈고, 오 CTO 역시 카이스트에서 박사를 하고 IBM에서 클라우드 서버용 반도체를 설계했다. 반도체 칩과 이를 구동하는 소프트웨어 개발까지 모두하는 '풀 스택 솔루션 업체'를 만들자는 뜻이 모였다. 겨우 업력 2.7년의 리벨리온은 이미 1120억원의 누적 투자금액을 확보했다. 기업 가치는 지난해 3000억원 이상으로 뛰었다. 시제품이 나오기 전부터 투자자들은 리벨리온의 '맨파워'를 믿고 자금을 집행할 정도였다.
그는 리벨리온의 빠른 성장 역시 전문 개발 인력이 모여 만들어낸 성과라고 자부한다.
"스타트업은 '기세'가 중요합니다. 리벨리온은 자타공인 기세가 무척 좋은 팀입니다. 업계 최고의 분들로 팀 빌딩이 이루어졌고, 애플, 베인앤컴퍼니, 하버드대, MIT, 포항공대 등 다양한 배경의 글로벌 인력들이 계속 모이고 있습니다. 리벨리온에게 2023년은 기대감을 실체로 바꾸는 해가 될 것니다." 진부하지만 마지막으로 포부를 묻자 했더니 "삼성전자 같은 기업을 세우는 것이죠. 이제 시스템 반도체에서도 그런 기업이 나와야 하니까요" 라고 웃었다.
이윤희기자 stels@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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