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현직 은행장 SVB서 벤치마킹
IBK벤처대출 1000억 지원 계획
금융당국 '챌린지뱅크' 구상 제동
IBK벤처대출 1000억 지원 계획
금융당국 '챌린지뱅크' 구상 제동
◇SVB에서 배워온 기업은행의 실리콘밸리식 벤처대출= 14일 금융권에 따르면 기업은행은 SVB 은행에서 배워온 'IBK벤처대출'을 지난해 12월부터 시범 운영 중이다. 기업은행은 시범운영을 거쳐 올해 중 정식 출시한다는 방침이다.
IBK벤처대출은 재무성과와 담보가 부족한 유망 스타트업에게 후속투자 유치 때까지 자금을 지원해주는 브릿지론이다. 기업은행이 미국 실리콘밸리식 벤처대출을 국내 환경에 맞게 수정·보완한 상품이다. 벤처투자기관으로부터 투자받은 유망 스타트업에게 저리로 대출을 지원해주고, 은행은 신주인수권부사채의 워런트(발행회사의 신주를 인수할 권리)를 활용해 향후 기업가치 상승이익을 공유할 수 있다.
기업은행은 최근 기업의 자금수요가 많은 점을 감안해 올해 1000억원 규모로 IBK벤처대출을 지원할 계획이며, 자금소진 시 지원 규모를 확대할 예정이다. 기업은행은 현재까지 적정규모로만 운용되고 있다고 전했다.
IBK벤처대출은 윤종원 전 기업은행장의 마지막 작품으로 꼽힌다. 윤 전 행장은 지난해 4월 미국 실리콘밸리 출장에서 SVB를 직접 방문해 벤처대출 노하우를 전수받았다. 출장에서 돌아온 직후 상품 출시를 준비했고, 지난해 12월 퇴임을 한 달 앞두고 상품을 출시했다.
김성태 현 행장도 IBK벤처대출에 높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김 행장은 지난 1월 벤처캐피털, 액셀러레이터 등 총 16개 벤처투자기관과 'IBK벤처대출 지원 및 초기창업 생태계 조성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김 행장은 협약식에서 "대부분의 스타트업들이 가장 자금이 필요한 시기에, 자금조달이 어려워 데스밸리를 겪는다"면서 "벤처투자기관과 협업을 통해 혁신기업들이 데스밸리를 극복하고 지속성장 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IBK벤처대출은 최근까지도 SVB의 노하우를 전수받은 선진 벤처금융으로 평가됐지만, SVB가 영업정지를 당하면서 기업은행 입장에서도 적극적으로 내세우기 곤란한 처지가 됐다. 기업은행 관계자는 "SVB가 파산한 이유와 벤처대출 금융모델은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아직까지 IBK벤처대출 실행 자금도 크지 않고 기업은행 포트폴리오 자체가 워낙 다양하기 때문에 향후에도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챌린저 뱅크 도입하려던 금융당국 구상도 제동= SVB의 영업정지로 특화은행을 도입하려는 금융당국의 구상에도 제동이 걸리게 됐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2일 금융감독원 등과 '은행권 경영·영업·관행 제도 개선' 실무작업반 1차 회의에서 신규 은행 추가 인가와 관련해 논의했다. 은행권 경쟁 촉진을 위해 인가 세분화(스몰 라이센스), 소규모 특화은행(챌린저 뱅크), 저축은행의 지방은행 전환, 지방은행의 시중은행 전환 등으로 은행 수를 늘리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특히 금융당국은 특화은행의 대표 사례로 SVB를 제시한 바 있다. 당시 금융위는 "미국 SVB는 별도 인가 단위에 따른 특화은행은 아니지만 사실상 고위험 벤처기업만을 고객으로 상대하는 특화은행처럼 기능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SVB가 영업정지를 당하면서 특화은행 도입에 대한 '신중론'이 대두되고 있다. 특화은행 도입뿐 아니라 은행권 과점 완화 논의 자체가 유야무야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은행의 건전성과 소비자 보호가 우선이라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는 탓이다.
정보기술(IT)을 바탕으로 특화 소매 금융 상품을 제공하는 챌린저 뱅크가 위기 시 뱅크런(대규모 예금 인출)에 취약하다는 사실도 SVB를 통해 증명됐다. SVB의 뱅크런을 유발한 대표적인 원인으로 스마트폰으로 은행 거래를 하면서 손쉬워진 예금 인출이 꼽힌다. 미 월스트리트 저널(WSJ)은 12일(현지시간) '스마트폰 뱅크런으로 비운을 맞은 SVB'라는 기사에서 "이 은행 주고객인 실리콘밸리 스타트업 사업가들은 거래 은행의 위기 소식을 듣자마자 스마트폰으로 예금을 대거 인출하면서 빠른 속도로 뱅크런이 발생했다"고 보도했다.
강길홍기자 slize@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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