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도 AI 법제화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다만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방송위원회(과방위) 법안소위가 1년 넘게 계류돼 있던 AI기본법안을 통과시켰지만 황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또다른 법안을 발의하고 시민단체가 이견을 내면서 법안소위를 한 차례 더 열어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AI 산업 육성과 신뢰성 확보를 위한 기본 법제도 틀을 서둘러 만들자는 접근과, 관련 처벌규정을 구체적으로 담아야 한다는 일부의 주장이 부딪히고 있다.
국회에는 2021년 정필모 의원 대표 발의로 'AI 육성 및 신뢰 기반 조성 등에 관한 법률안'이 제출됐다. 여기에 최근 법안소위에서 AI 관련 7개 법률안을 병합 심의해 통과시켰다. 이 법안에는 국민 생명·신체, 기본권 보호를 위협할 수 있는 부분은 고위험 영역으로 분류해 규제하는 방안이 담겼다. 고위험 영역에는 △에너지, 먹는물 등의 공급 △보건의료의 제공 및 이용체계 △의료기기 △핵물질과 원자력시설 △범죄 수사나 체포 업무에 있어 생체정보의 분석·활용 △채용, 대출 심사 등 개인의 권리·의무 관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판단 또는 평가 △교통수단, 교통시설, 교통체계의 주요한 작동 및 운영 △공공기관 등의 국민에게 영향을 미치는 의사결정 △그 밖에 국민의 안전·건강 및 기본권 보호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AI가 포함된다. 이들 영역에서 사용되는 AI 기술에는 고지와 신뢰성 확보 조치를 마련하도록 의무화했다. 논의 결과에 따라 고위험AI 범위가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 또 범죄 목적의 AI 등 고위험AI보다 더 위험성이 높은 분야는 아예 금지되도록 법제화될 여지도 있다. AI 산업 발전을 위해 민간이 자율적으로 신뢰성을 검·인증할 수 있도록 규제 당국이 지원하는 내용도 담겼다.
EU와 유사하게 AI 위험성을 구체적 기준으로 분류했지만 AI 발전에 따라 단계적으로 규제하자는 게 우리의 접근이다. 강력한 AI규제안을 추진 중인 EU와, 느슨한 규제를 고려하는 미국·일본의 중간 단계다. 지금은 AI 발전의 초기 단계인 만큼 처음부터 해선 안되는 것을 일일이 규정하기보다는 먼저 허용한 후 모니터링해서 발견되는 문제에 빠르게 대응하자는 접근이다.
황종성 NIA(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 원장은 "한창 발전하고 있는 AI 관련 규제를 한꺼번에 만드는 것은 비현실적이다"라면서 "법적 근거와 추진체계부터 만든 후 여러 문제를 풀어가려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유럽만큼 사전에 강하게 규제하는 것도 문제지만 미국처럼 사후에 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 실제로는 촉진하지만 다른 측면에선 모니터링을 철저히 하고 고위험 AI는 특별하게 관리하는 게 필요하다"고 밝혔다.
김형준 NIA 지능화법제도센터장은 "AI 법제도화가 늦어지면 산업계는 불안감이 커지고 기술개발과 사업을 자신감 있게 하기 힘들다. 먼저 기본적인 규율체계를 서둘러 만드는 게 중요하다"면서 "AI는 기술의 특성상 의료, 자율주행 등 다양한 영역에서 쓰이는 만큼 각 영역의 특수성과 위험성은 각 분야별로 접근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이어 "총괄적인 규제를 너무 타이트하게 하면 활용 자체가 쉽지 않을 수 있다국가 정책방향을 만들기 위해 통일된 법을 만드는 게 필요하지만 개별적 영역은 각각의 법령을 통해 규율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안경애기자 naturean@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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