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상의, 입법시스템 분석
21대 출범 3년 2만1700건
20대 국회 5년의 90% 넘어
"사전 입법영향 분석 강화해
입법 효율성 제고" 지적도
21대 출범 3년 2만1700건
20대 국회 5년의 90% 넘어
"사전 입법영향 분석 강화해
입법 효율성 제고" 지적도
![[입법권 남용하는 국회] `4류 정치`의 품질낮은 입법남발… 21대 국회 가결률 9.4% 뿐](http://contents.dt.co.kr/images/202306/2023061502100332057001[1].jpg "[입법권 남용하는 국회] `4류 정치`의 품질낮은 입법남발… 21대 국회 가결률 9.4% 뿐")
지난 1995년 4월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은 중국 베이징 주재 한국 특파원들과의 간담회에서 "솔직히 얘기하면우리나라는 행정력은 3류, 정치력은 4류, 기업경쟁력은 2류로 보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발언은 당시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키면서 대한민국의 경쟁력을 한단계 끌어올린 '화두'로 작용했다. 30년 가까이 지난 지금 기업과 행정의 경쟁력은 높아졌지만 정치의 경쟁력은 여전히 4류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국회가 사회를 선도하는 게 아니라 시대착오적인 입법을 일삼으면서 오히려 경쟁력을 후퇴시키고 있다는 지적이다.
◇가파르게 늘어나는 의원 과잉 입법안 = 대한상공회의소는 14일 '주요국 입법시스템 비교와 시사점' 보고서를 통해 국회 발의법안이 크게 늘었지만 법안가결율이 하락하고 임기 만료로 버려지는 폐기법안이 늘어나는 등 '입법권 남용'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고 밝혔다. 따라서 법 제정의 영향 분석을 시행하는 주요국처럼 한국도 입법영향분석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회에 제출된 법안은 16대 국회(2000~2004년) 2507건에서 20대 국회 2만4141건(2016~2020년)으로 5회기 만에 10배 이상 늘었다. 21대 국회도 출범 3년 만에 20대 국회발의 법안의 90%를 넘는 2만1763건을 기록하며 증가세를 이어가고 있다. 미국, 일본, 독일 등 주요국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가파른 급증세다. 주요국별로 최근 5회기 동안 발의법안 추이를 보면 미국(9091→1만5242건), 독일(573→806건), 영국(167→191건)은 늘고, 일본(273→155건), 프랑스(563→330건)는 줄었다.
보고서는 이처럼 발의법안이 급증하면서 입법효율성은 오히려 떨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16대 국회에서 37.7%였던 법안가결율은 지속적으로 하락해 20대 13.2%, 21대 9.4%까지 떨어졌다. 10개 법안 중 1개에 채 못미치는 법안이 실제로 성립된 것이다. 독일(67%), 일본(43.8%)은 물론 영국(16.5%), 프랑스(12.7%) 등 주요국 가결율에 크게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다. 홍완식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법안발의가 활발하다는 것은 민의를 잘 반영한다는 긍정적이 측면이 있지만 한편으로는 법안심사 부담을 가중시키거나 입법품질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며 "실제 20대 국회 기준으로 보면 1개 법안에 대한 심사시간이 13분에 불과하다는 분석도 있다"고 말했다.
◇무더기 반시장·반기업 법안 쏟아내는 거대 야당 = 21대 국회에서 의원입법안이 이처럼 늘어난 것은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전략과 맞물려 있다. 민주당은 국민 생활의 질을 높이기 보다는 정부·여당에 대한 견제 수단으로 입법 권한을 활용하는 경향이 적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국회에서 야당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여 통과시킨 법률이 정부에 의해 거부되는 흔치 않은 사례가 반복되고 있다.
과잉 생산된 쌀을 정부가 의무적으로 매입토록 해 쌀 시장 왜곡 논란을 야기한 양곡관리법, 의사 간호사 간호조무사 등 직역간 갈등을 불러일으킨 간호법 등이 대표적이다. 민주당은 친노동 성향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 야당을 후원하는 친시민단체형 방송법 개정안도 힘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민주당은 일부 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한 윤석열 정부를 '행정 독재' '검찰 독재'라고 주장하는 반면 국민의힘은 '입법 독재' '의회 독재'라며 맞서고 있다.
◇"지금이라도 입법전 영향분석 확대해야" = 국회가 제정하는 법은 국민 생활을 규제하는 '규칙'이다.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만큼 입법전 반드시 법 제·개정시 그 영향을 분석하는 것이 필요하다. 대부분의 주요국들이 입법영향분석을 시행하며 복잡한 발의와 심의과정을 통해 입법 품질 제고와 효율화를 추구하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영국의 경우 정부안과 의원안 모두 입법영향분석을 실시하고 있다. 법률안의 종류나 적용범위와 관계없이 상·하위 법률 모두가 분석대상이다.
독일은 연방의회 요구에 따라 입법영향분석에 준하는 의견서를 제출하도록 하고 있다.
의원입법 가능 분야를 제한하는 프랑스는 상·하원의장의 요청에 따라 최고행정법원이 의견을 제출한다.
일본은 입법영향분석을 도입하고 있지는 않지만, 의원의 법안발의 전 당내심사가 의무화돼 있다.
미국은 법률안 제출 시 비용편익분석을 첨부하는 것이 일반화돼 있으며, 양원합의 전 입법영향 등에 관한 분석보고서를 첨부하도록 하고 있다.
대한상의는 우리도 의원발의 법안에 대한 입법영향분석을 도입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를 통해 발의법안이 늘면서 발생하는 비효율이나 규제법안과 유사·중복발의 증가, 법안 심사시간 부족으로 인한 입법품질저하를 최소화할 수 있다고 밝혔다. 또 지금이 입법영향분석을 도입할 적기라고 강조했다.
현재 21대 국회에는 김태년·신정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안, 윤재옥·이종배·정경희·홍석준 국민의힘 의원안 등 관련법 개정안이 6건 계류돼 있다.
18대 국회에서 의원발의 법안에 대한 입법영향분석을 제도화하려는 움직임은 시작된 이후 가장 많은 법안이 계류돼 국회 내 '입법품질 높이자'는 공감대가 확산했다.
강석구 대한상의 조사본부장은 "다양한 입법수요를 반영해 법안을 마련하는 것은 국회의 중요한 책무이자 권한"이라며 "하지만 법안이 많을수록 심사부담은 커지고, 입법품질에 대한 우려는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국회 내 공감대가 형성된 만큼 21대 국회에서 입법영향분석 도입 논의와 입법이 조속히 이뤄지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박은희기자 ehpark@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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