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GPT를 비롯한 생성형AI(인공지능)가 일으킬 혁신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는 반면, 잠재된 위험성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AI 관련 시각과 여건에 차이가 있는 만큼, 개인정보보호라는 원칙을 중심으로 세계 각국의 민·관을 아우르는 협력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아누팜 챈더(Anupam Chander) 미국 조지타운법대 교수는 개인정보보호위원회와 디지털플랫폼정부위원회가 지난 23일 서울에서 개최한 'AI와 데이터 프라이버시 국제 컨퍼런스' 기조강연에서 "AI 규제의 파편화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세계 각국의 입장과 가치관 차이가 이를 부추길 것"이라고 내다봤다.
개인정보보호 이슈로 챗GPT는 한때 이탈리아에서 접속이 차단된 바 있고, 구글 바드는 아직 EU(유럽연합) 지역에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 14일(현지시간) 유럽의회 본회의를 통과, EU 이사회 및 집행위원회(EC)와의 3자 협상을 거쳐 2026년 시행이 점쳐지는 EU AI법은 생체인식 등까지 포괄적인 규제를 추구한다. 반면 미국은 규제 범위를 좁히려는 입장이다. 중국의 경우 생성형AI 결과물이 사회주의 핵심가치에 부합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신기술 관련 법제 분야 세계적 석학인 챈더 교수는 "AI규제의 세계적 단일화는 어려울 것이다. 얼굴인식도 나라마다 합법적인 허용 수준이 다르고, 각 문화권의 인식이나 용어 정의에도 차이가 있다"고 짚었다. 이는 무역장벽으로 작용, 글로벌 AI기업들에 추가 비용 부담을 유발할 수 있다. 그는 "세계적인 컴퓨터 부품 업체들이 못 들어오는 것과 같다고 생각해보라"며 장벽 내 생태계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그럼에도 챈더 교수는 AI규제의 핵심원칙에 있어선 '브뤼셀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고 예상했다. EU의 규칙이 표준으로 자리잡는 등 세계적 영향을 끼치는 것을 뜻하는 말로, EU GDPR(일반개인정보보호보법)이 대표적 사례다. 그는 "개인정보보호법과 AI규제에는 명확한 유사성이 있다. 정보의 자동화 처리 관련 50년 역사를 거친 만큼 AI규제에도 그 교훈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라며 "다만 AI 규제에 있어선 파편화가 심해진 만큼 현지 사례에 맞는 집행이 중요하다"고 부연했다.
챈더 교수가 AI규제 파편화에 대해 해결책으로 제시한 것은 핵심원칙에 대한 합의를 기반으로 상호호환성을 갇도록 하는 것이다. 개인정보 국외 이전에 대해 국가 간 적정성 결정을 하는 것과 유사한 맥락이다. EU처럼 공통 규정과 관련해 절차상 통일성을 꾀하되 해석은 회원국 사정에 따라 맡기는 방안도 고려될 수도 있다. 이 과정에서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세계적인 민·관 협력이다. 그는 "과거 볼보가 3점식 안전벨트 특허를 경쟁사에도 무료로 제공했듯, AI분야에서도 성공·실패를 공유하며 함께 안전장치를 마련해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고진 디지털플랫폼정부위원장은 기조연설을 통해 "AI에 대한 낙관적인 기대와 더불어 오해·우려·두려움 등 부정적인 감정도 혼재할 것이고, 이런 혼란은 AI의 올바른 발전·이용에 장애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우려 때문에 AI 발전과 서비스에 유용한 개인정보 이용을 제한하기만 할 수는 없을 것"이라며 "AI의 발전과 개인정보보호가 조화롭게 양립할 수 있는 방안 마련이 필요하다"고 밝혔다.고학수 개인정보보호위원장은 패널토론에서 "기존 개인정보 보호 법률 원칙을 AI 영역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정보주체의 권익이 부당하게 침해되지 않도록 AI모델 개발·서비스 사업자의 안전장치 마련 △규정 중심에서 원칙 중심으로 규제 패러다임 전환해 각 상황에 맞게 적용 △민·관 합의에 따른 AI 리스크 기준 차등적인 규제 도입 등 정책방향을 제시했다.
주요국 개인정보 감독기구들도 개인정보보호법 원칙 중심의 AI규제를 위한 글로벌 협력 필요성에 공감을 표했다. 존 에드워즈 영국 정보위원장은 "영국은 EU를 떠났어도 AI규제 관련해선 공유·협력을 지속, 앞으로도 실질적인 보호 수준을 낮추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울리히 켈버 독일 연방데이터보호정보자유위원장은 "AI규제 집행뿐 아니라 기업·기관이 의미 있는 방식으로 AI를 도입할 수 있도록 함께 조언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유지 아사이 일본 개인정보보호위원회 위원의 경우 최근 일본 규제당국 회의에서 생성형AI 관련 성명서가 실행계획과 함께 채택됐다고 밝혔다.
김현종 삼성전자 개인정보 담당 상무를 비롯해 구글·메타·MS(마이크로소프트) 등 주요 기업 개인정보 담당자들도 AI윤리 및 개인정보보호 관련 각사의 노력을 소개하며 민·관 협력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이날 행사에는 이들과 함께 EU(유럽연합)·OECD(경제협력개발기구) 등 국제기구 정보보호 담당자와 최경진 한국인공지능법학회장 등이 패널로 참여했고 약 300여명의 산·학·연 관계자와 일반인이 현장을 찾았다.팽동현기자 dhp@dt.co.kr
아누팜 챈더 조지타운대 교수가 'AI와 데이터 프라이버시' 국제 컨퍼런스에서 기조강연하고 있다. 팽동현 기자
고학수(왼쪽 두 번째) 개인정보보호위원회 위원장이 23일 서울 중구 더플라자호텔에서 열린 'AI와 데이터 프라이버시 국제 컨퍼런스' 오후 세션에서 주요국 개인정보 감독기구 기관장 및 OECD 등 국제기구 고위급 대표들과 함께 토론하고 있다. 개인정보위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