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법 개정 여야 합의 불발로 '입법 공백' 사태 겹쳐
자극적 문구에 시민 불쾌감 극에 달해
기존 정당 현수막 난립 속 무질서와 혼란 가중
정치권에선 '정치적 자유 제한', 대다수 시민 '공해' 인식
자극적 문구에 시민 불쾌감 극에 달해
기존 정당 현수막 난립 속 무질서와 혼란 가중
정치권에선 '정치적 자유 제한', 대다수 시민 '공해' 인식
길거리의 정치 현수막들은 정제되지 않은 원색적인 비방이나 막말을 담고 있는 게 대부분이다. 그러잖아도 연일 지속되는 폭염으로 폭발 직전에 있는 국민들의 불쾌지수가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서울 강서구 발산역 사거리에는 1일 동서남북의 모든 방향에 13개의 정당 현수막이 걸려 있다. 국민의힘, 더불어민주당, 진보당이 앞다퉈 내건 현수막이 경쟁하듯이 빼곡하게 내걸려 오가는 시민들의 시야를 가렸다. 행인 A씨는 "상대 정당을 비방하는 자극적인 문구를 담고 있는 현수막이 보기에도 좋지 않다"며 짜증 섞인 반응을 보였다.
길거리를 지나던 대학생 이모(22)씨는 "한번도 현수막을 제대로 본 적이 없다"며 "별 관심도 없지만 보기에 지저분하고, 자원 낭비라는 생각만 든다"고 말했다.
현수막에 쓰인 문구는 대부분 노골적인 '편가르기'에 상대 정당이나 정치인을 비방하는 내용이 태반이다. 대전에선 민주당 대전시당이 시내 곳곳에 '시의원인가 업자인가'라는 내용의 현수막을 내걸었다. 국민의힘 시의원 일부가 겸직을 유지하는 것을 겨냥한 것으로, 시의회를 파행시키기는 단초가 됐다.
국민의힘 시의원들은 "입증도 안 됐는데 명예를 훼손시켰다"며 사과를 요구했다. 그러자 민주당 시의원들이 이에 맞서 지난달 31일까지 의사일정 참여를 거부한 채 농성했다.
광주에선 진보당이 만든 '윤석열 지우는 게 국익', '일본의힘이 진짜 반국가세력' 등의 현수막이 시내 곳곳에 걸렸다.
제주에선 '제주4·3사건은 대한민국 건국을 반대하여 김일성과 남로당이 일으킨 공산폭동'이란 현수막을 내걸려 제주시와 서귀포시가 철거에 나서는 등 갈등을 키웠다.
집중 호우에 24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청주 오송 지하차도 참사'와 관련해 민주당 충북도당이 국민의힘 소속 김영환 지사를 겨냥해 '김 지사는 도민 생명보다 땅이 더 소중합니까?'라는 현수막을 걸자, 국민의힘은 '민주당은 도정을 비판할 자격이 있는가'라는 현수막으로 맞대응했다. 진보당 충북도당은 '고속도로, 명품쇼핑…거니 몫!'이라는, 윤석열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여사를 비방하는 현수막을 게시했다.
울산에선 '바보야! 문제는 윤석열 대통령 무능이다', '법치부정 범죄옹호 이재명과 비겁한 138표' 등의 현수막이 걸려 지자체에 집단 민원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처럼 정치 현수막들이 무제한적으로 난립하게 된 것은 여야 간 선거법 개정 합의가 무산된 데 따른 '입법 공백'이 가장 큰 이유다. 헌법재판소는 지난해 선거법의 관련 조항들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그러면서 올해 7월 31일까지 법을 개정하라고 시한을 정했다.
하지만 여야간 합의 결렬로 시한내 선거법 개정이 무산됨으로써, 관련 조항들이 개정되기 전까지는 누구든지 아무 때나 선거 현수막을 내걸고 유인물을 뿌릴 수 있게 된 것.
여야 지도부는 8월 임시국회 내에 반드시 선거법 개정안을 처리하겠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여전히 일부 법 조항에 대한 이견이 있어, 처리 시점이 불투명한 상황이다.
주민들의 민원이 들끓자 지자체들이 정당현수막 강제철거에 나섰지만, 현실적인 한계가 존재한다.
전국 최초로 지난달 12일 정당현수막 강제철거에 나선 인천시는 같은 달 20일까지 불과 348개만 철거했을 뿐, 여전히 많은 정당현수막들이 시내 곳곳에 걸려 있다.
일선 현장에선 인천시 조례가 상위법과 충돌하는 데다, 정당이 현장 공무원에게 민형사상 책임을 물을 경우 마땅히 대처할 방법이 없어 적극적인 철거가 어려운 처지다.
인천시가 지난 5월 옥외광고물 조례를 개정, 지정 게시대에 걸 수 있는 정당현수막을 국회의원 선거구별 4개 이하로 제한했다. 하지만, 행정안전부는 상위법 위임이 없어 위법하다며 대법원에 제소했다.
김송원 인천경실련 사무처장은 "정치권에선 현수막 게시 금지에 대해 정치적 자유 제한이라고 주장하지만, 시민은 도시 미관을 해치는 공해로 인식한다"며 "여야는 현수막을 조정할 수 있는 입법을 조속히 추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양수기자 yspark@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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