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전북 남원경찰서에 따르면 택시 기사 양모씨(66)는 지난 6일 오후 4시40분께 남원 버스터미널 앞에서 손님 B씨(21·여)를 태웠다.
휴대폰 앱으로 택시를 잡은 B씨의 목적지는 대전 모처. 양씨는 흔치 않은 장거리 호출에 B씨에게 "대전 어디로 가느냐"고 물었다.
그러나 손님은 아무 말이 없었다. 양씨는 "무슨 일로 대전까지…"라고 되묻자 B씨는 "찍힌대로 가면 돼요"라고만 답했다.
이후 B씨는 고개를 숙인 채 휴대폰으로 연신 문자메시지만 보냈다. A씨는 구체적인 장소를 대답하지 못하는 B씨가 수상했다.
A씨는 백미러로 B씨를 살피던 중 B씨 옆에 있던 큰 가방을 발견했다. 문득 A씨는 2년 전 보이스피싱 현금 수거책인 줄 모르고 손님으로 태웠다가 참고인 신분으로 경찰 조사를 받았던 일이 생각났다. A씨는 그때 그 수거책을 잡지 못했던 게 늘 마음에 걸렸었다.
양씨는 승객과 가방을 한 번씩 바라보며 "학생, 나쁜 일로 가는 거 아니죠?"라고 다시 물었다. 그러자 대답 없던 승객은 놀란 표정을 짓더니 갑자기 문을 열고 택시에서 내리려고 했다.
기사는 곧장 차 문을 잠그고 인근 지구대로 택시를 몰았다. 지구대에서 나온 경찰관들은 양씨의 말을 듣더니 승객이 지닌 가방을 확인했다.
경찰 조사 결과 B씨는 예상대로 보이스피싱 조직의 지시를 받아 움직이는 현금 수거책이었다. 실제 B씨 가방에도 현금 2000만원이 있었다. B씨가 명확한 목적지를 답하지 못했던 것도 보이스피싱 조직이 앱을 통해 택시를 불러줬기 때문이었다.
경찰은 적극적인 대처로 범죄를 예방한 양씨에게 표창장과 신고 포상금을 수여했다.
양씨는 "과거에도 보이스피싱 범죄를 막을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해 죄책감이 항상 남아 있었다"며 "이번에는 억울한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수거책을 잡는 데 도움이 된 것 같아 뿌듯하다"고 말했다.
남원경찰서 관계자는 "시민의 적극적인 대처로 금융 사기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며 "보이스피싱 범죄가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으니 주의해달라"고 당부했다.
한편 경찰은 A씨를 사기 혐의로 입건하고 현금 수거를 지시한 보이스피싱 조직을 대상으로 수사를 확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조서현기자 rlayan7@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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